-무료관람(자발적)등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방법이 필요해

이미지= 영화관 내부
이미지= 영화관 내부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처음으로 같이 극장에서 본 영화가‘말아톤’이었다며, 이제 만날 수 없는 아빠와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줘 고맙다고 말했다.

십 수 년 전의 영화로 갑자기 인사치례를 듣는 것도 쑥스러웠지만, 구태여 지금 또 얘기를 하는 것은 쓰잘떼기 없는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본다는 행위의 값어치와 그 중요성을 언급하고 싶어서이다.

모두가 불 꺼진 극장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수천 년 전 희랍에서 영화의 조상 뻘인 연극이 횃불이 비치는 조명을 받으며 탄생한 이래, 문명과 함께 이어진 대단히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집단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모르는 이들과 또는 지인 및 가족들과 함께 스크린에 투영되는 어떤 스토리에 함께 참여해 공감하며 감동하고 그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혼자가 아니라는 무의식적 안심을 가져다준다. 내가 웃을 때 남도 웃고, 울 때 남도 훌쩍이는 모습을 보며 이 외로운 우주에서 그래도 내가 유령이 아니구나 싶은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런 경험이 지인 및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라면 인생에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기억이 된다. 콘서트나 스포츠 관람을 하면서도 물론 추억을 쌓을 수 있겠지만, 극장이야말로 남녀노소 가장 접근하기 쉬우면서 값도 저렴한 온 국민의 문화 창고이자 공동의 쉼터이다.

아울러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배웠건 못 배웠건 그저 표 한 장에 공평히 어두운 극장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스크린에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를 함께 만나는 둘도 없는 민주적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는 이런 극장에 궤멸적인 타격을 안겨주며 영화 산업 자체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물론 문화보다 생명이 중요한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고, 또 넷플릭스 등의 OTT가 대안 매체로 부상하며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게 대세가 되기도 하였다. 집에 커다란 TV도 있고 스마트폰도 각각 있겠다,

영화를 어디서 뭘로 보든 무슨 상관이겠냐 싶기도 하지만, 극장에서의 관람 행위는 단순히 스토리를 즐기는 것을 넘어,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인생의 추억을 나누는 인간의 사회 문화적 활동이기 때문에 단순히 음악이 LP판에서 CD로, 다시 MP3로 바뀌듯 매체의 변화에 불과하다고 보기엔 잃을 것이 너무 크다.

물론 가까운 사람들, 가족과 모여 집에서 대형 TV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그것이 더 값쌀 수도 있겠지만, 과연 핸드폰을 다 끄고, 완벽히 깜깜한 어둠 속에서 집중하며, 그 어떤 층간 소음도 걱정 없이 빵빵한 사운드로 모두가 같이 꿈을 꾸듯 영화에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아울러 집에서 함께 시청하는 것은 극장 개봉한 영화를 나중에 같이 보면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인류의 소중한 공동의 추억을 생산해주던 꿈의 공장이자 놀이터인 극장이 사라지는 것은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경쟁자로 여겨지는 넷플릭스 직원들조차 말이다.

무엇보다 코로나가 잦아들고, 백신을 모두가 맞은 후, 국내 투자 배급사들이 망할까봐 무서워 재고로 쌓아둔 100여 편의 작품들이 극장에 풀려야 다시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할 것이다. 만약 사태가 지속되고 영화들이 OTT로 모두 가버린다면 극장 산업은 지금의 항공이나 여행 산업처럼 수렁에 빠져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극장에 가면 썰렁하기 이를 데 없고, 그 분위기가 예전과 비할 수가 없을 만치 적막강산이다. 극장의 게토화, 사람들이 극장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 문화 패턴, 그 트렌드의 변화가 무엇보다 두려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극장을 잊지 않게 만들 것인가. 극장업자들은, 영화인들은, 나아가 문화정책 담당자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엊그제 한 외화 수입배급사의 대표가 스스로 명을 달리했다. 로버트 드니로가 손자와 방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할아버지로 나온 코미디 영화‘워 위드 그랜파’를 코로나 시국에 용감히 풀었으나 결과는 역시 좋지 않았다.

앞날에 대한 전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더 두려웠을 것이다. 과연 극장과 영화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바닥은 오지 않았고 진짜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물론 희망을 가져야겠고, 언젠가 다시 극장으로 사람들이 몰릴 때가 오겠지만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뼈가 부러져 깁스를 두어 달 하고 푼다고 바로 정상이 될 순 없다. 근육이 굳거나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깁스 한 기간보다 더 길게 몇 개월 이상 재활을 해야 원래대로 뛰고 걸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극장에 사람들의 발길이 한번 끊기면 이를 다시 회복하는데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현재 1년 이상 코로나로 인해, 또 볼 영화가 없어 사람들이 극장에 거의 가지 않고 있다. 운이 좋아 올해 말 쯤부터 상황이 나아져도 다시 굳었던 근육이 풀리고 정상화되기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극장은 다시 끊겼던 관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한 재활 노력을 해야 한다.

요는 틀어줄 영화가 없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당사자인 극장은 적극적으로 투자 배급사를 유인할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가만히 손가락만 빨며,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서 익어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최후를 맞기 전에 적극적으로 재활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넷플릭스나 다른 OTT들이 영화를 돈 주고 구입하는 것처럼, 투자배급사들 창고에 재고로 쌓여있는 100여 편의 영화를 전액 또는 일부 금액을 내고 구입하여 자신들의 극장에 풀어야 한다. 대신 극장 매출 수익은 (반반씩 나누지 말고) 전부 가져가거나 지금보다 더 많이 취하면 될 것이다.

이게 힘들다면 총제작비의 20~30프로를 좌우하는 영화의 마케팅 비용이라도 책임져서 투자 배급사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아울러 영화 상영 중간에 극장 임의로 관을 줄이거나, 퐁당퐁당 교차 상영하는 지금까지의 관행을 없애고 최소 한 달 이상 약속된 몇 백 개관에서 전회 상영해 주겠다는 계약서(아직 제대로 없었음)를 써줘야 한다.

이것도 힘들다면 현재의 부율(극장과 투자배급사가 나누는 방식)이라도 슬라이딩 방식으로 조정해 줘야 한다. 처음엔 투자배급사가 더 먹고 뒤로 갈수록 극장이 더 가져가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자구책이 없이 코로나가 사라지고, 재고로 쌓인 영화들이 다시 알아서 극장으로 쏟아져 들어오기만을 바라며 망연자실하고 있기엔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고 비상하다.

아울러 영화 산업 전체 그리고 국가차원으로도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마치 IMF 시대에 금모으기 캠페인을 했던 것처럼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당장 볼만한 신작 영화들이 우르르 극장에 쏟아져 들어올 순 없으므로, 관객들이 보러 올 컨텐츠를 어떻게든 채워야만 하는데 이런 방식은 어떨까?

다시 보고 싶은 한국 영화들을 관객 투표로 수십 편 선정해 무료로(!) 재 상영을 몇 달 간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몇 개월 간 언제든 공짜로 볼 수 있는 과거의 훌륭한 한국 영화들이 계속 스크린에서 돌아가고 있다면?

지나가다 시간이 남는 사람들, 또는 데이트 비용이 아쉬운 연인들, 그리고 외식을 하러 나왔던 가족들과 지인들끼리 자연스럽게 극장을 찾지 않겠는가. 옛날에 아쉽게 놓쳤던, 또는 다시 누군가와 보고 싶은 작품들을 그것도 공짜로 볼 수 있다니 정말 좋지 아니한가!

작품 수급은 투자 배급사들이 창고에 쌓인 옛 필름들(외장하드겠지만)을 빌려주면 되고, 극장은 어차피 텅텅 빈 극장에 관객이 들어오며 팝콘과 콜라 값으로 영사기 전기세와 청소비용 등을 보전하고,

국민들은 코로나로 지치고 우울한 이 시국에 한국 영화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다시 보며 힐링하고, 비록 공짜로 봤지만 뭔가 영화가 재밌고 좋았다면 알아서 백 원이든 천원이든 모금함(?)에 돈을 내고 가도 좋을 것이다. 즉, 내 맘대로 후불제인 것이다.

이 돈은 전액 독립영화 지원금으로 쓰여 질 수도 있을 것이고, 가장 좋은 그림은 정부에서 극장의 1인당 수익금 약 4천원(표 값의 절반)을 보전해 주는 것인데 이 경우 1000만 명 기준 4백억이 소요된다. 어떻게 보면 크고 어떻게 보면 작은 돈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원해주면 가뜩이나 어려운 극장업체들에게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고, 힘든 보릿고개의 구휼미가 충분히 될 것이다. 게다가 이 돈은 영화계에 주는 돈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선물해주는 문화지원금인 셈이니 충분히 세금을 투입할 의미가 있지 않은가.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방법이 필요한 법이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당면한 중요 과제는 당시의 상식만으론 결코 풀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로 모두가 괴로운 2021년, 초조히 백신을 맞는 걸 기다릴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극장에서 잠시 위안 받고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되찾고 싶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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