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두산아트센터에서 연극 '비평가(연출 이영석)' 프레스리허설이 열렸다. '다윈의 거북이', '맨 끝줄 소년'의 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를 백현주, 김신록 두 여성 배우가 새롭게 선보인다. 

연극 '비평가-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는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2012년 작품으로 지난해 극단 신작로가 국내 초연한 후 올해 새롭게 다시 관객을 찾는다.

지난해 초연이 비교적 사실적인 스타일로 인물 내면 심리를 탐색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주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또 초연과는 달리 여성 배우가 남성 배역을 연기한다. 여성의 신체와 목소리로 구현하는 남성의 역할은 새로운 감각으로 연극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인물의 핵심을 관통해 개성 있는 인물을 창조해온 배우 백현주가 비평가 역을 맡았고, 지적인 존재감 속에서 인물 생각과 욕망을 표현해온 배우 김신록이 극작가 역을 맡았다. 원작자 후안 마요르카는 이 작품에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라는 부제를 붙였다.

대사로도 여러 번 반복되는 이 말은 극 중 인물에게는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내가 하고 싶은 노래는 무엇인가, 나는 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원로 비평가 볼로디아(백현주)가 보다 긴 비평을 원하는 극작가 스파르카(김신록)에게 무심한 듯 아니꼽게 던진 말이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극 초반 볼로디아의 고압적인 태독이 묻어난다.

스파르카 또한 기세가 만만치 않다. 10년 전 자신의 첫 작품에 혹평을 쏟은 볼로디아에게 앙금이 남은 스파르카는 신작 발표 후 곧장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는 다소 무례하게 작품에 대한 호평을 요구한다.

하지만 볼로디아는 흔들림이 없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설전이 오간다. 어느새 연극의 본질에 대해 고찰한다. 그 과정에서 무대 위 볼로디아의 집 현관문은 수차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책들이 놓여 있던 긴 탁자는 어느새 무대 속의 무대가 된다.

두 여성 배우의 옷 매무새에서는 남성의 느낌이 난다. 목소리 톤에서도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작품이 당초 남성 배우의 2인극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낯섦이 느껴질 수 있지만, 이내 두 배우의 연기에 묻히게 된다.

특히 스파르카가 탁자 위에서 자신의 작품 속 권투경기 장면을 직접 연기하는 장면은 무척 역동적이다. 권투 스승과 제자의 한 판 대결이지만, 사실은 자신과 볼로디아의 관계를 형상화했다. 성장 동력이 된 볼로디아에게 인정받기 위한 스파르카의 몸부림이 처절하다.

그럼에도 꿈쩍 않던 볼로디아는 종국에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스파르카의 작품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던 '맨발의 여인'이 알고 보니 자신의 과거 연인을 투영한 인물이었던 것.

연극의 '진실성'을 역설하던 볼로디아 입장에선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 설전은 스파르카의 승리일까. 그는 볼로디아에게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비평한다.

"우리는 연극에 바라는 것을 삶에는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극에는 진실을, 완전한 진실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라면 오늘 밤 우리가 본 작품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저만의 세계에 갇혀 소통이라고는 없는 이들은 비단 비평가, 극작가 뿐 아니다. “사람들이 제일 보기 싫어하는 부분을 보여준다.” 극 중 볼로디아의 말처럼 자신의 못나고, 모자라고, 비틀린 모습을 제대로 보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인정하거나 그를 보고 싶은 이는 또 얼마나 될까.  

남녀, 진보와 보수, 남북 등 선을 그어두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실상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혐오’만을 쏟아내는 시대다. 자기 방어나 자기 합리화가 아닌 현실에 제대로 발 딛고 서 있는가. 자신만의 논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옳다고 믿는 내 신념이 마냥 옳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극은 극작가 스카르파가 스스로의 극에 대한 비평을 전화로 신문 편집자에게 읽어주면서 마무리된다. 극작가 스카르파가 자신의 극 중 여성을 연기하면서 반복적으로 되뇌는 대사이지 이 연극의 부제인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 할 텐데’가 의미심장해지는 이유다. 연극 ‘비평가’는 그렇게 많은 자문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남성 캐릭터가 주는 어색함과 불편함은 분명 있다. 하지만 성공한 작가와 원로 비평가를 묘사함에 있어서 그들을 남성으로 간주하고 있는 원작의 내용은 여성 배우들에 의해 독특한 울림을 획득한다.

여성의 신체와 목소리로 구현하는 남성 역할은 우리에게 텍스트를 이해하는 새로운 감각을 부여한다. 예술과 삶의 가장 구체적인 지점에서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찾는 일이 중요함을 역설하는 이번 작품에서 백현주, 김신록이라는 두 여성 배우의 연기는 극의 핵심이다. 

초연 무대와 재연 무대는 완전 다른 연극이라 봐도 무방하다. 재미는 초연 무대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원작자의 의도는 재연 무대에 더 가까울 듯하다. 8월 17일~9월 1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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