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 영화를 보았으면 한다. 여태까지 최고의 흥행실적인 1,700만의 관객수를 돌파했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사건의 디테일과 무관하게 역사적 사실장면들의 정감과 리얼리티, 그리고 생각의 흐름을 치열하게 담아내고 있다.

음악도 좋았다. 작가 김훈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정신과 감독 황동혁의 주제 파악능력과 고도의 추상화 능력이 결합하여 잔잔하면서 강렬한, 그리고 우리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화면들을 구성해 내고 있다. 역사에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식과 몰상식만 있다.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와 식량이 있으면 싸우는 것이 상식이요, 싸울 수 있는 아무런 기력이 없으면 화해하는 것이 상식이다. 생각해보라! 이 영화의 장면은 노량해전으로부터 불과 40년 후의 시점이다. 임진왜란으로 우리나라는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리고 광해군의 무리한 토목공사와 인조반정으로 국가는 혼란에 빠져있었다. 척화는 선이고 주화는 악이라는 윤리적 2원론은 역사를 보는 잣대가 될 수 없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파악하는 안목이 부족했으며 주자학의 도통관념에 사로잡혀 화이지분(華夷之分)으로 역사의 실상을 보지 않았다.

때는 이미 숭명(崇明)의 시대가 아니였다. 최명길의 입장은 상식일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자기들과 같은 뿌리의 고구려-발해 대제국의 정통후예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에도 홍타이지 인품의 한 측면이 묘사되어 있지만, 그들과는 얼마든지 영예로운 협상이 가능했고, 삼전도의 치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조선의 정벌이 아니라, 중원의 정벌을 앞두고 후방의 교란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 재빨리 외교적 협상에 응하여 정당한 전략을 폈으면 호란자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몽골제국과 대청제국이 모두 고구려제국을 흠모하여 흥기한 나라들이다. 징기스칸이나 홍타이지(청태종)도 당태종을 무찌른 연개소문의 카리스마에 직간접으로 훈도된 세계사적 인물들이다.

여진과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생각만 있었어도 민중은 호란의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고, 향후 북학파의 노력도 풍요로운 결실을 맺었을 것이고, 개화도 일본보다 빨랐을 것이다. 주화를 주장하는 최명길만 고립해서 생각하지 말고, 삼전도비를 쓴 이경석, 노자주를 단 박세당, 강화학파의 정제두, 원교 이광사, 초원 이충익의 사상 물줄기를 정확히 이해해야 최명길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김상헌의 우국심정도 존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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