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는 이종호 시댄스 예술감독과 더무브의 윤성은 안무가와 나이지리아의 아킨빌레 아율라 마이클, 콜롬비아의 로바디스 페레스, 캄보디아의 픽 소피어뷔, 필리핀의 사라마리아 사마니에고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21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종호 예술감독은 "무용도 사회·정치에 대해 발언해야하고 "무용도 사회·정치에 대해 발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어 없는 예술이라는 점이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지요." 이종호 시댄스 예술감독은 "작년 20회 축제를 치르고 올해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며 "그 변화의 시작을 '난민'이란 주제로 열어볼까 한다"고 말했다.

작년 스무 돌을 맞은 시댄스는 그간 현대무용의 보급과 확산, 인식 제고라는 목표에 집중했다. 시댄스는 작년을 기점으로 이 같은 목표들은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고 자평하며, 올해 21회 축제부터는 예술감독의 취향이나 신념을 더 부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감독은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인권, 환경, 난민 등과 같은 글로벌 이슈에 너무도 소극적"이라며 "더는 그래선 안 된다는 게 제 개인적 신념이고 그 신념을 '난민 특집'에 담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 개막 무대로 선정된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은 커다랗고 검은 오브제를 통해 유럽 난민 및 이주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전달한다. 이탈리아 출신 피에트로 마룰로가 이끄는 '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 작품이다.

한국 안무가 윤성은이 이끄는 '더 무브'의 '부유하는 이들의 시'에는 실제 국내에 체류하는 난민들이 참여한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자리한 윤성은은 "난민들의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철학적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며 "실제 국경을 넘을 때 신었던 신발 등 구체적 소품들로 무대를 연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예견한 작품이란 평을 듣는 프로틴 무용단의 '국경 이야기', 시리아 출신 안무가 미트칼 알즈가이르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품 '추방' 등도 관심을 끈다. 난민이란 주제 이외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무용 작품들이 소개된다.

이미 네 차례 한국 방문을 통해 국내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테로 사리넨 무용단의 '숨',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무용 부문 은사자상 수상작 '바쿠스-제거의 전주곡' 등도 무용팬들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 지난해 7월 시리아 난민 출신 무용수 아마드 주데(27)가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춘 춤이 세계 이목을 끌었다.

시리아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그는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ISIS의 표적이 됐다. 춤을 추면 출수록 시리아 내전의 참혹함, 그가 압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목 뒤에 산스크리트어로 '춤 아니면 죽음'이라는 글귀를 새겼다.세계가 난민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가운데, 무용계도 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국내에서도 제주로 들어온 예멘 난민으로 찬반 여론이 격렬해지고 있다.

이에 앞서 난민 문제를 톺아보고자 기획한 무용 축제가 국내에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해 핀란드, 포르투갈, 벨기에, 프랑스, 영국, 스페인, 독일, 룩셈부르크, 시리아, 중국, 일본 등 26국 60단체의 53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난민 특집'(Refugee Focus)이 눈길을 끈다.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2012년 난민법을 제정, 이듬해 7월부터 시행해왔다. 하지만 작년 12월31일 우리나라의 난민신청자는 9557명인데 반해, 난민 수용률은 4.2%에 불과하다. 난민협약국가의 평균인 38%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다.

윤 감독은 "난민들과 함께 나아가야 하는 방법을 같이 찾을 수 있지 않나 고민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나라의) 밸런스가 깨지면 어디로 가야 하는 상황일 될 수 있다. 난민의 인권을 떠나 같이 포용해서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가 힘들 때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타당성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부유하는 이들의 시'에는 올해 일우사진상 수상자이자 '난민 사진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성남훈이 참여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전시와 영상이 어우러진다.

이번에 참여하는 난민들은 프로 무용수가 아니다. 윤 감독은 "성남훈 선생님이 시리아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열차에서 난민들을 촬영한 사진 중에 눈에 띈 것은 전구"라면서 "전구가 대롱대롱 매달려 난민들을 안내하고 국경을 넘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바로 이 전구가 공연에서 주요 오브제로 사용될 예정이다. 또 다른 중요 오브제는 신발이다. "난민들이 새로운 땅의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고국에서 국경을 넘어올 때 마음을 담은 소품"이라는 설명했다. 이번 시댄스는 '부유하는 이들의 시' 등 난민 관련 작품 8개를 선보인다.

이탈리아와 벨기에의 합작인 피에트로 마룰로 & 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시리아와 프랑스의 합작인 미트칼 알즈가이르 '추방', 영국 프로틴 무용단 '국경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 합작인 최은희 & 헤수스 이달고 '망명', 콩고의 플로랑 마우쿠 '나의 배낭', 이란과프랑스 합작인 알리 모이니 '칼날의 역설', 독일 니키 리스타 & 박슈타인하우스 프로둑치온 '볼프강' 등이 라인업으로 꾸려졌다.

난민들은 무엇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는가, 국제 난민과 이주민이라는 이름으로 타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등의 내용을 담는다. 시댄스는 올해로 제21회를 맞았다. 그동안 신체 움직임을 톺아보는 공연을 주로 선보였다면 본격적으로 성년이 된 올해부터 정치, 사회 쪽으로도 관심을 쏟겠다는 계획이다.

이 감독은 "예술도 사회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데 국내에서 언어가 없는 무용은 그런 측면에서 약했던 부분이 있다"면서 "잠재적인 폭력 등에 관심이 있다. 매년은 아니고 2, 3년에 한번씩은 정치, 사회 관련 공연들을 선보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이번 시댄스에서는 국내 국립무용단과 작업한 '회오리'로 유명한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의 이끄는 테로 사리넨 무용단의 '숨' 등도 공연한다. 

세계 무용의 최신 경향과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댄스 프리미엄'과 '댄스 모자이크', 축제를 발판 삼아 우리 무용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을 꾀하는 '댄스 플랫폼'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제21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2018)다. 10월 1~1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KOCCA 콘텐츠문화광장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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