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사람입니까?

스틸 컷= 좋은 사람
스틸 컷= 좋은 사람

'서스펜스(suspense)'에 대해 히치콕 감독은 이런 정의를 내렸다. 곧 터질 시한폭탄의 존재를 관객은 알고 있으나 등장인물은 전혀 모르는 상태의 조마조마한 감정이라고. 한국어로는 '쫄리는 기분'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미스터리(mystery)'라는 것은, 장르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둔 작품을 뜻한다.

영화 '좋은 사람'을 보며 이야미스(イヤミス) 장르의 여왕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을 떠올렸다. 이야미스란 '싫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いやだ(이야다)와 ミステリー(미스테리)를 합성한 신조어로 사건의 해결보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심리묘사에 촛점을 맞춘 장르이다.

사실 관객(독자)가 미스터리 서스펜스물을 보며 해소의 감각을 받게되는 순간은 사건이 '해결'된 순간이다. 그러나 이야미스 장르는 사실상 범인이, 혹은 사건의 전말이 재빨리 드러남에도 불구, 이야기의 끝에 가서도 시원한 마음이 들지 않고 매우 뒷맛이 쓰다. 

소설 <고백>의 첫 장면은 한 여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이 교실에 내 딸을 죽인 범인이 있다고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교사는 범인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있다. 싱글맘인 교사에게 딸(5세)은 세상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딸을 앗아간 범인은 10대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왜 그들은 아무런 죄 없는 어린 아이를 죽인 걸까?

그리고 교사는 어째서 경찰에 가지 않고 학생들에게 범인이 이 교실에 있다고 고백하는 걸까? 영화 '좋은 사람'속 '경석'은 사람 좋은 얼굴의 고등학교 교사로 학생들과의 관계도 원만해 보인다. 어느 학생에게나 공정한 태도를 취하며 중립을 지키려 애쓴다.

경식은 이혼남으로 7살난 딸 '윤희'는 전처가 키우고 있는데, 어느날 급히 출장이 잡힌 전처 대신 경식은 딸 윤희를 돌보게 된다. 그런데 그 딸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라진 딸은 트럭에 치여 중태에 빠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이를 친 건 트럭 운전수지만 얼마 전 같은 반 학우의 지갑을 훔친 범인으로 의심을 받은 '세익'이 아이의 사고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윤희는 어째서 늦은 밤 한적한 도로 위에서 트럭에 치인 걸까? 세익은 그 밤 왜 윤희의 손을 잡고 있었던 걸까?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고 불안을 느끼게 한다. 사고를 당한 아이는 다행히도 상태가 호전되어 가고 아이를 친 트럭 운전수도 악인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난 후 마음이 내내 불편한 건 어째서였을까?

그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날카로운 숙제를 내주기 때문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 입니까? 라는. 이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당연하지! 라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야미스의 뒷맛이 쓴 이유는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모두의 서사에 마음이 기울어서다.

가해자=나쁜 사람, 피해자=좋은(불쌍한) 사람, 이렇게 도식화 할 수 없어 혼란을 일으킨다. 검은 에스프레소 커피잔에 하얀 우유를 넣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블을 그리며 둘의 경계가 허물어지다 마침내 섞인다. 어느 쪽이 검었고 어느 쪽이 하얀색 이었는지 더 이상의 구분이 불가능해진다. 

누구나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할 뿐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현실 속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좋은 사람으로 살려 했으나 나쁜 사람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도 일어나고,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 공공의 이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렇듯 악이나 선은 100%의 순정한 것이 아니다. 거짓말이 정말 싫은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거짓말 밖에 할게 없었다는 세익의 말은 그러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초반 경석의 얼굴은 누가 보아도 '좋은 사람'이다.

밝고 온화한 미소, 부드러운 목소리, 단정한 모습의 교사. 퇴근 후 홀로 사는 아파트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딸 윤희의 동영상을 보며 웃는 모습은 여느 아빠와 다를 바 없다. 그런 그의 표정이 뒤로 갈수록 어떻게 바뀌는 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객의 시선을 대신하는 카메라는 속도에 조바심을 내지 않고 인물들을 가까이서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얼굴로부터 내 얼굴을 본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연약하다. 가려진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정의임에도 이를 두려워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진실과 마주하는 일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며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사실을 고백하는 일의 무게 쪽이 무거운 경우가 훨씬 많다. 거짓을 통해서라도 보호하고 싶은 존재는 나 자신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타인을 보호하고 싶다거나 평화를 지키고 싶다는 이유로도 거짓을 취한다. 또 누군가를 무너뜨리거나 내 이익을 위해 진실을 부러 밝히기도 한다. 얼마 전 있었던 한강공원 대학생 사망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것도 같다.

안타까운 사건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제 각각이었고 진실의 자태는 선명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고자 선택한 위선이 일으킨 '나비 효과'를 쫓으며 좋은 사람으로 사는 일의 가능성에 대해 영화는 울림이 큰 질문을 던진다. 

영화관을 나서며 나도 다시 묻고 싶어졌다.

나는 과연 좋은 사람입니까?

포스터= 좋은 사람
포스터= 좋은 사람

 

저작권자 © 무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