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온도는 몇도일까요?
정답: 그 아픔까지'도'.
아재개그 같은 질문과 답이지만 정답의 '도' 뒤에 생략된 말을 사십대의 칠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 중년의 나는 너무 잘 안다. 생략 된 말은 '아름답다'에 다름 아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로 치명적이다.
사랑에 빠진 나는 영원을 꿈꾸지만 이루어질 리 없음은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있다. 사랑 후(後) 이별 경험의 횟수가 헤어진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진 않았어도 어느덧 체념의 방식을 터득하게 했다. 그렇게 툭툭 털고 일어나며 점점 의젓한 어른이 된다.
이별이 초래한 고통마저 아름답게 되뇌일 수 있는 시절은 도리없이 첫사랑이라고 밖엔. 순정한 사랑이 풀무질한 뜨거운 에너지를 식히려 얼마나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가. 그 물이 차라리 너의 품이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발이 닿지 않는 물 속에서 차라리 익사하기를. 물 밖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온통 너만을 향한 그리움은 숨쉬기조차 어렵게 해 , 물 밖과 물 속의 호흡이 다를 것도 없었으니. 햇살의 영역이 깊은 만큼 그늘의 영토는 작아 숨을 곳이 없을 것만 같은 남부 이탈리아의 크레마, 엘리오에게 그 해 여름은 많은 '처음'을 겪게 한 계절이 된다.
처음, 첫, 고작 한 두 음절 뿐인 이 단어 안에 담긴 서사는 20만 음절로도 설명하기 불가능 해, 늘 처음에 관한 한 침묵을 택하고는 하지 않았던가. 첫사랑의 대상은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없고 누구도 예고하며 다가오지 않는다.
껍질채 씹는 갓 딴 복숭아의 맛 너머로 나는 너를 본다. 내 나침반의 바늘은 N극과 무관하게 너를 향해 있다. 엘리오가 그늘 아래 숨 죽이고 서서 올리버를 향한 깊은 마음을 숨기기엔 여름의 그늘은 좁았다. 첫사랑에 '첫' 이 붙어있는 이유는 이미 '지난' 사랑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고, 가장 많이 아팠고, 심장이 최대치로 고장났던 시기였다. '도' 다음에 생략된 말이 '아름답다' 임을 알게되는 건 유감스럽게도 훗날의 일이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나는, 너는, 무언가 다른 역사를 썼을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을 보며 이태리 모스카토 다스티를 홀짝인다. 글라스 표면에 맺히는 물방울이 If I should... 의 말줄임표 같다. 달고, 시고, 과즙미 넘치며, 혀의 미뢰를 피치피치 건드리는 차가운 모스카토 다스티의 맛은 첫사랑과 닮았다.
시원하고 스윗한 맛에 반해 홀짝이다 보면 어느새 취해 버리는. 간 밤에 마신 술 병이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그러나 사랑의 묘약은 이미 사라지고 잔은 비워졌다. 첫사랑의 달콤쌉싸름한 향기만 코 끝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맴돌고 있다.
사라지는 일의 안타까움이 심벽을 긋는다. 그러나 첫사랑의 숙취(hangover)도 언젠가는 과거시제가 된다. 모스카토는 아로마(향)이 강한 화이트 와인용 품종으로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의 '아스티'라는 곳이 특히 유명하다.
모스카토로 만든 와인은 달고 순하며 과실미가 풍부해 스위트한 디저트 와인을 비롯해 파씨토(일종의 아이스와인), 스푸만테(약발포성의 스파클링 와인), 주정강화와인(포트 와인) 등으로 주조 된다.
특히 모스카토 다스티는 와인을 마시는 동안 복숭아, 살구, 자두, 멜론, 하얀꽃 등이 담긴 바구니를 한아름 선물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봄을 액화시킨 와인이라고도 하는데 봄은 늘 기세좋게 달겨드는 여름에 금새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고는 했으니, 모스카토 아스티를 마시며 오래 전 봄을 추억하는 것도 가는 여름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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