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처음 제작하는 오페라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라인의 황금>의 완성된 무대가 드디어 공개됐다. 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리허설을 마친 이 작품은 14일부터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독일의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84)가 한국의 공연제작사 월드아트오페라와 손잡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라인의 황금'이 14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2019년 5월 '발퀴레', 12월 '지그프리트', 2020년 '신들의 황혼'까지 3년 동안 4편을 서울에서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편당 30억원씩 총 12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다. 

'니벨룽의 반지-라인의 황금'은 프라이어의 작품답게 은유로 가득했다. 독일 서사극의 거장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마지막 제자이자 화가, 무대미술가인 프라이어는 과연 상징적이었다. 여러 신, 거인족, 난쟁이족 등이 동화적 판타지를 입었다.   

오페라의 살아있는 역사인 천재 무대감독 아힘 프라이어가 총 지휘하고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들이 동원된 대작이다.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들어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무대장치로 고전을 재해석했다. 

내용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화려한 무대이지만 서사 흐름에 인생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황금 반지를 훔치고, 빼앗고, 다시 쫓는 악순환과 비극을 그렸다. 황금을 손에 얻어도 끝없이 욕심을 부리고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공연은 환상 동화를 보는 듯 하다. 등장인물들은 고전적인 의상 대신에 지극히 현대적이고 동화적인 의상을 입는다. 얼굴이 두 개인 거인도 있고, 높은 힐과 거대한 복면을 쓴 도깨비도 있다.

프라이어가 하나하나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의상은 관객들의 상상에 힘을 보탠다. 무대 장치도 압도적이다. 약 7m 높이의 철제 구조물에 등장인물들이 오르내리며 무대를 활용한다.

황금 반지를 타고 오르는 무용수의 몸짓과 화려한 조명, 소품들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인터미션 없이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대작이다. 그럼에도 작품 집중도가 이어지는 것은 수준높은 배우들의 노래와 오페라 연주 때문이다. 

남성 배우들 중에는 주연 '보탄' 역의 김동섭은 극을 묵직하게 이끌어가고, 반지를 빼앗기고 저주를 남기는 '알베리히' 역의 세르게이 레퍼쿠스와 오스카 힐레브란트가 큰 가면을 쓰고 열연을 펼친다.  

'돈너' 역의 마르쿠스 아이헤와 '파졸트'역의 전승현, '로게' 역의 아놀드 베츠옌, '프로' 역의 탄젤아키자벡의 노래도 무대를 꽉 채운다.  

여성 배우들의 실력도 가감없이 발휘됐다. '프리카'역의 미셸 브리드트, '프라이어'역의 에스더 리, 에르다역의 나디네 바이스만이 높은 음역대를 오가며 무대를 휘감았다. 

독특한 무대의상 때문에 배우들의 움직임이 약간 둔탁해지기는 했지만 오페라 연주와 배우들의 성악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프라이어는 "우리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보여줄 수는 없다"면서 "'니벨룽의 반지' 인물들은 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한다. 현실적이지 않지만, 우리를 보여주는 시대상"이라고 밝혔다. "어제가 아닌 오늘을 보여주려는 시도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미래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바그너의 대서사시 '니벨룽의 반지'는 오페라 사상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걸작으로 통한다. 바그너가 26년 만에 완성한 노작으로 푸치니를 비롯한 이후 작곡가 세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대 북유럽 전설인 라인강 속 황금, 초월적인 힘을 가진 니벨룽의 반지를 소재로 신과 인간의 권력에 대한 집착과 파멸 그리고 저주를 그린다.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등 전체 4부작에 연주시간만 16시간에 달한다. 프라이어는 "오래 전에 작곡을 마친 곡이지만 필립 글래스 같은 오늘날의 현대음악처럼 느껴졌다면 지휘자들의 노고 덕"이라고 했다. 

프라이어는 "예전에 작곡되고 만들어진 이야기를 현재로 데리고 와야 한다"면서 "무대 위 사건들을 삶 안에서 찾고 대비하고 비추는 시도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간 방의 극장'이라고 할까.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보면 안 되고 그 뒤에 숨은 것, 즉 행간을 봐야 한다. 현실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그는 이를 브레히트의 소외 기법(관객으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극을 바라보게 만드는 기법)과 바그너의 영속성·무시간성과 연관을 지어 설명했다. 그는 "무대 위 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 현재와 현실을 이야기하고, 비추고, 대조시키는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극도의 추상성과 상징성으로 유럽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프라이어식 판타지'가 한국 객석에 어떻게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인 데다가 인터미션 없는 약 3시간짜리 공연이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바그너 작품은 오케스트라 연주가 쉽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주축이 된 가운에 바이로이트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 6명이 가세해 약한 파트를 보강한다.

지휘를 밭은 랄프 바이커트는 "음악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프라임필하모닉의 열정과 의지가 확실했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라이어 감독은 "공연이 완성된 이 순간 매우 행복하다"며 "시간이 부족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이런 대작 공연을 하게 돼 의미가 깊다. 한국 공연을 계기로 많은 교류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프라이어 감독의 머릿속에서 나온 무대연출과 의상 등은 오페라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도 보기 힘든 파격적인 콘셉트이다.  

그는 "무대 위에 인물들은 매우 낯설게 보이지만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이 점차 익숙해지고 자신의 경험을 대입해가게 될 것"이라며 "이런 시도는 독일에서도 드문 시도이다. 바그너가 얘기한 '무시간성'처럼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라고 작품 콘셉트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무대는 국내 여건상 제작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거대한 무대 장치를 독일에서 들여오는 과정과 연습실 부족 등으로 실무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시리즈는 내년에는 대관을 구하지 못해 서울에서 막을 올리지 못하고 경기도 성남에서 무대를 올리게 된다고 한다. 월드아트오페라는 프라이어의 한국 출신 부인인 에스더 리 단장이 이번 '니벨룽의 반지'를 위해 설립한 제작사다.

주한독일문화원, BMW 코리아가 협력과 후원을 하고 독일 본 극장(Theater Bonn)이 공동제작했다. 그러나 규모가 작아 프로덕션 운영이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2편인 '발퀴레'는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이 아닌 성남아트센터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프라이어 역시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인력 부족을 절감한다. 독일에서 오는 장치들을 놓아둘 데도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조그마한 회사가 대단한 프로덕션을 할 수 있었다"고 긍정했다.  

월드아트오페라는 이번 '라인의 황금'에 북한 성악가 출연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주한독일문화원 등의 도움을 받아 다음 시즌에 북한 성악가 출연을 타진해나가겠다고 했다. 

공연팀은 실제 공연에 사용할 무대세트를 남산창작센터와 거리예술창작센터에 설치했다. 독일 성악가들도 입국해 본격적인 연습을 진행했다. 관객들을 만나는 실제 공연장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도 무대 장치와 조명, 의상, 소품 등 공연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월드아트오페라는 <니벨룽의 반지>의 1부 <라인의 황금>, 2부 <발퀴레>, 3부 <지그프리트>, 4부 <신들의 황혼> 공연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에서 초연 제작한다. 1부 <니벨룽의 반지-라인의 황금>은 14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총 120억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대작이다. 탄탄한 원작, 상상을 뛰어넘는 연출력,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성악가들로 구성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그 스스로가 반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끝없는 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이 반지의 운명이고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임을 시사한다.

아놀드 베츠옌, 나디네 바이스만, 마르쿠스 아이헤, 전승현, 김동섭, 양준모, 양송미, 김지선 등 바이로이트 성악가 9명, 한국 성악가 16명, 앙상블 9명, 프라임 오케스트라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단원(바그너악기연주자) 6명의 협연으로 공연된다.

공연은 오페라의 피카소, 세계적인 연출가 아힘프라이어가 바그너의 내공이 쌓인 <니벨룽의 반지-라인의 황금>를 재탄생 시킨 작품이다. 기존 무대미술의 개념을 뛰어 넘어 추상표현주의 화가 답게 무대의상, 분장, 무대미술을 상상을 뛰어넘는 연출력으로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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