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은 선량한 의사, 하이드는 무자비한 폭력성

[지킬앤하이드] 지금 이 순간_홍광호 2(제공.오디컴퍼니)

[무비톡 김상민 기자]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2010년 공연 이후 7년 만에 '지킬 엔 하이드'로 돌아왔다. 홍광호는 오디션 출신 주인공에서 베테랑 배우로 노련한 연기력을 갖추고 돌아왔다.

홍광호의 특기는 엄청난 가창력이라고 볼 수 있다. 공연장 곳곳을 울리는 가창력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공연 모습은 뮤지컬 배우 정성화와 많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지킬앤하이드’의 주인공 역은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해야하는 데다가 감정 연기에 깊이가 있고, 다양한 음역대의 노래를 관객의 기대감 속에서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지킬앤하이드] 살인,살인_전체 3(제공.오디컴퍼니)

그런 점에서 홍광호는 앞선 시즌에서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기에 오랜만에 더욱 성숙해져서 돌아올 홍지킬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이 높았다. 명불허전 홍지킬답게 1막의 명곡 ‘지금 이 순간’은 그의 풍부한 성량을 드러내기에 충분했고, 객석의 큰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지점은 하이드로 변신한 후였다. ‘지킬앤하이드’에서 관객들이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역시 지킬이 하이드로 바뀌는 부분인데,

홍지킬은 부드러운 음색에서 거칠고 야성적인 음색으로 단번에 무대 분위기를 바꾸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월드투어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화려한 실험실 장면이 더욱 극적으로 느끼게 했다.

[지킬앤하이드] 가면_홍광호, 전체(제공.오디컴퍼니)

하이드로 변신한 홍지킬이 무대를 휘저으며 타락한 귀족들을 응징하며 부르는 노래 ‘얼라이브’는 극 전체에서 홍지킬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며 스릴러 장르의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광기어린 명장면이었다.

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그 저력을 재확인할 기회. 특히 '지킬앤하이드'의 상징적 존재나 다름없는 조승우를 비롯해 홍광호, 박은태라는, 작품의 인기와 성공을 견인해 온 3명의 지킬/하이드를 내세워 팬들을 흥분케 했다.

루시 역 윤공주, 아이비, 해나, 엠마 역 이정화 민경아 역시 검증된 뮤지컬 스타들. 피튀기는 티켓팅 '피켓팅'이 실감 날 만큼 호응도 뜨거웠다.

[지킬앤하이드] 얼라이브_홍광호(제공.오디컴퍼니)

‘지킬앤하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앙상블이다. 1막에서는 여러 번 리프라이즈되는 ‘가면’과 2막 서두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살인, 살인’은 앙상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명장면들이다.

특히, 2막의 ‘살인, 살인’은 음산한 분위기에서 펼쳐지는 우산을 활용한 퍼포먼스가 중독적인 가사와 결합해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1막에서는 앙상블의 합이 좀 아쉬웠지만 2막의 ‘살인, 살인’은 지난 월드투어의 앙상블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만한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지킬 앤 하이드>에 대한 한국 관객의 애정은 각별하다. 누적 공연 횟수 1100회·누적 관객 수 120만명·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 95% 등 압도적인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2004년 한국 초연을 시작했다. 독일·일본·스웨덴 등 10여개국 무대에 올랐지만, 한국에서 유독 큰 성공을 거뒀다. 

[지킬앤하이드] 공연 하이라이트 영상 캡처_단체 2

'지킬 엔 하이드'은 1886년 처음 나온 로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사건'은 으레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로 불리는 극단의 1인2역 이야기다.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시킨다는 위험한 실험을 스스로에게 감행한 어느 의사 겸 과학자의 사연은 여러 형태로 변주됐다. 그 중에서도 뮤지컬에 대한 한국팬들의 사랑이 각별하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한국 뮤지컬의 성장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1997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처음 오른 '지킬앤하이드'는 2004년 한국 첫 공연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뮤지컬 스타들을 탄생시켰으며, 뮤지컬 시장의 저변을 확대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누적 회차 1100회, 누적 관람객은 무려 120만 명에 이른다. 평균 객석 점유율은 95%를 웃돈다. 라이선스 뮤지컬이지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팀이 극을 재구성할 수 있는 논 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선보인 건 그 성공을 가능케 한 신의 한 수다.

[지킬앤하이드] 지금 이 순간_홍광호 1(제공.오디컴퍼니)

극적인 조명이 함께하는 무대는 공간감에 집중한 느낌. 깊이가 더해진 다이아몬드형 무대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중앙의 배우들에게 온전히 시선을 집중시킨다. 주인공인 지킬/하이드의 비중이 압도적이고, 극적인 솔로 넘버로 이름높은 '지킬앤하이드'에는 더없는 선택이다.

5m 높이로 층층이 쌓아올린 시험관, 시약병이 무대를 가득 메우는 지킬 하이드의 실험실 세트가 그중 눈길을 끄는데, 총 1800개 가량의 매스 실린더가 쓰였다.

'지킬앤하이드' 대표곡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에 그만큼 힘을 실은 셈이다. 하지만 '지킬앤하이드'엔 그밖에도 하나하나 꼽기 어려울 만큼 주옥같은 넘버가 많다. 여전한 흡인력 덕에 3시간 가까운 시간이 언제 흘렀나 싶을 정도다. 

[지킬앤하이드] 뜨겁게 온 몸이 달았어_아이비(제공.오디컴퍼니) (2)

한 인물이 ‘지킬’과 ‘하이드’라는 두 가지 인격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다. 지킬과 하이드는 각각 선(善)과 악(惡)을 상징한다. 지킬은 선량한 의사이며, 하이드는 무자비한 폭력성을 표출하는 또 다른 인물이다.

극은 이 범상치 않은 주인공으로 인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친다. 지킬과 하이드가 부르는 넘버(뮤지컬 삽입곡) 역시 전혀 다른 분위기로 극과 극의 양면을 살린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킬 박사의 애처로움을 시작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 약혼녀 엠마와 자유분방한 루시의 소개를 마치면 극은 마침내 출발한다. 이를 알려주는 노래가 바로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이다. 

[지킬앤하이드] 살인,살인_박은태, 전체(제공.오디컴퍼니)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지킬은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을 한다.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처음 표현하는 장면이다. 작품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해서 여러 모로 놓치면 안 되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엠마에게 눈길을 떼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마음을 표현할 땐 뜻밖의 사랑스러움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지만 하이드를 표현할 땐 거칠다 못해 무시무시할 정도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하이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떼는 순간엔 스릴러 못잖은 긴장감이 돈다. 두 자아의 목소리에까지 다른 사람처럼 확연한 대비를 줘 하이드와 지킬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는 'Confrontation'이 더 짜릿하다.

[지킬앤하이드] 뜨겁게 온 몸이 달았어_윤공주 2(제공.오디컴퍼니) (2)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와 배우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2층 구조의 다이아몬드 형태 무대, 자신의 자리에서 알맞게 빛을 내준 배우들도 ‘지킬앤하이드’를 더욱 빛나게 했다.

지킬의 온화함을 끌어내며 청아하고 맑은 소리로 극을 풍성하게 만든 엠마 역 이정화의 새로운 시도와 매혹적인 자태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룹 마틸다의 해나도 눈에 띄었다. 내년 5월 19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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