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가무극 '금란방' "역사적 사실과 작가 상상력 덧대"
창작 가무극 '금란방' "역사적 사실과 작가 상상력 덧대"
  • 김상민 기자
  • 승인 2018.12.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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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클럽, 일렉트로닉, 국악, 클래식 음악의 ‘금란방’

[무비톡 김상민 기자]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창작가무극 <금란방>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금란방'은 서울예술단이 2000년 '대박' 이후 18년 만에 선보이는 희극이다.

18세기 조선 영조 시대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 '금주령'과 '전기수'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 정통 코미디 작품이다.

금주령은 조선시대의 기본정책이었으나 민가의 제사는 물론 종묘제례에서도 술을 쓰지 않은 임금은 영조가 유일했다. 그리고 소설을 대신 읽어주는 전기수를 소재로 엮어 만든 창작가무극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박해림 작가, ‘라흐마니노프’의 이진욱 작곡가 등 창작뮤지컬로 주목 받은 창작진이 참여했다. 연출은 연극 ‘날 보러와요’ ‘보도지침’, 뮤지컬 ‘판’ ‘아랑가’의 변정주 연출이 맡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품 전면에 내세운 파격이다. 조선이 배경이지만 역사적 고증을 따르기보다 현대적 재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은 밤마다 왕에게 연애소설을 대신 읽어주는 신하 김윤신과 그의 딸 매화, 매화의 몸종 영이, 금주단속반 대장이자 매화와 정략결혼을 앞둔 윤구연, 이들 가운데 있는 전기수 이자상 등 다채로운 인물이 벌이는 소동을 그린다.

서울예술단 권호성 예술감독은 '금란방' 프레스콜에서 "부임한 지 2주 정도 됐는데, '금란방'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게 돼 영광"이라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등을 집필한 박해림 작가는 "영조가 연애소설을 즐겨 들었고, 당시 전기수가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로 모았다"고 말했다. 이어 "금란방은 실제로 조선시대 밀주업자를 단속하던 수사대 이름이다. 역설적으로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밀주방이자 매설방인 금란방 안에서 신분·연령·성별의 차이를 뛰어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기는 짜릿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의 금기와 현재의 금기 중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를 먼저 정리했다.

당시 여자가 사회 활동을 할 수 없는 것,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것, 무조건 결혼해야 했던 것 등. 그 중에서도 아직 변하지 않는 금기는 무엇인가 찾아봤다. 당시의 금기가 아직도 금기인 것들이 너무 많더라"고 덧붙였다. 

박 작가에 따르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완성됐다. 박 작가는 “조선 영조 때 금주령이 성행했다는이야기에 그 시절 사람들도 음주가무를 즐겼을 텐데 어디서 즐겼을지 고민하며 글을 썼다”고 말했다.

또한 “영조가 밤마다 연애소설을 들었다는 이야기, 그 무렵 전기수가 밤마다 부녀자들 규방을 다니며 이야기를 했다는 역사 속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썼지만 대부분은 상상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변정주 연출은 "몰리에르의 단막극 시리즈 '날아다니는 의사'를 참고했다. 의사 가운을 통해 소동이 일어나는데, 이 장치로 서사를 진행시키면서 나올 수 있는 웃음이 스토리텔링의 포인트다.

그 외에도 남자가 여자 역살을 하고, 사랑이란 기분을 남자를 통해 느끼거나, 무뚝뚝한 남자가 여자 연기를 하면서 사랑에 대해 알게 되는 등 코믹한 요소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금기를 깨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금란방'의 매력을 살려 공연장 또한 180도 변화했다. 블랙박스시어터의 장점을 십분 발휘, 작품 속 비밀스럽고 은밀한 금란방이 마치 미국의 '스피크이지바(Speakeasy Bar,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비밀스러운 가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변정주 연출은 "금기를 뒤집으면 꼭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너무 당연시 하는 것 중에서도 깨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금기가 어느 정도 위반되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다 페스티벌이나 클럽이 떠올랐다.

조선시대 클럽이 어땠을까 상상하며 만들었다"며 "공간 전체를 금란방으로 느껴질 수있게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무대 위에 관객도 모셨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배우와 관객의 소통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붉은 정원', '살리에르' 등의 이진욱 작곡가가 음악을 맡았으며, 금란방의 온도와 분위기를 이끌 7인조 라이브 밴드에 그룹 고래야의 김동근(대금)과 잠비나이의 김보미(해금)이 합류해 더욱 신나는 축제의 현장을 만들어냈다.

이진욱 작곡가는 "처음 입장할 때 클럽 음악같은 노래가 흐른다. 사실 '금란방'의 테마들을 가지고 만든 거다. 장르적인 금기를 벗어나 새롭게 재구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정 테마가 일렉트로닉에도, 국악이나 다른 부분에도 사용된다. 키워드나 장르적인 고민에서 벗어나 그냥 자유롭게 어울리면 어울리는대로 놔두려고 했다. 

서양악기와 국악기가 이렇게 잘 어울리고, 클럽 음악으로도 잘 어울리는 걸 느껴줬으면 좋겠다. 정확한 장르를 꼽을 순 없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즐거움을 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금란방’은 ‘돈 후앙’ ‘인간 혐오자’ ‘타르튀프’ 등으로 유명한 17세기 프랑스 극작가이자 배우인 몰리에르(Moliere)의 ‘날아다니는 의사’(Le Medecin Volant)와 궤를 같이 한다.

연인 발레르가 있음에도 아버지로 인해 부유한 노인과 결혼할 위기에 처한 뤼실, 꾀병을 앓는 뤼실을 위해 의사로 위장 투입돼 가운을 입고 벗는 데 따라 다른 인물이 되는 발레르의 하인 스가나렐, 귀족들의 언어는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스가나렐에게 말로 완패한 뤼실의 아버지 고르쥐비스 등 인물 구성 역시 유사하다. 

밀주령을 내려놓고는 궁중에서 금기시하는 연애소설을 몰래 즐기는 임금, 그 임금에게 매일 밤 소설을 읽어주지만 “감정이 없다” 타박이나 당하는 서간관리자 김윤신(김백현·최정수, 이하 가나다 순)이 딸의 장옷을 훔쳐 입고 조선 최고의 전기수 이자상(김건혜)을 만나러 금란방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왁자지껄 소동극이다. 

얼굴도 모른 채 억지 결혼을 할 위기에 처한 김윤신의 딸 매화(송문선), 그의 충성스러운 하녀 영이(이혜수), 결혼 전에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획한 영이로 인해 장옷을 걸친 여인을 만나기 위해 금란방에 나타난 매화의 정혼자이자 금주단속반 수사팀장 윤구연(강상준·김용한) 등이 얽히고설키며 시대와 드잡이를 하며 난장을 친다. 

‘슬랩스틱’과 ‘웃음’으로 위장한 ‘금란방’은 그 시대와 다름없이 존재하는 금기, 사대부 김윤신이 장옷을 쓰고 소동을 겪으면서 깨닫는 진정한 부정(父情)과 사랑, 그런 남자로 인해 사랑에 빠지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 윤구연 등 진지해서 더 통쾌한 서사와 인물들을 배열하며 여전히 금기로 넘쳐나는 세상에 발차기를 날린다.

여자가 여자로서 설 수 없는 시대를 대변하는 전기수 이자상, 그가 우수 할머니에게서 들었다는 ‘빛나는 세상의 인연’을 인형극처럼 수행하는 정희(박혜정)와 해후(오현정), 장옷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슬랩스틱 코미디를 책임지는 김윤신 등의 상징과 성장이 서글픈 웃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국경의 남쪽’의 연화, ‘신과함께-저승편’의 덕춘 등 연약하고 애틋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던 배우 김건혜와 묵직하고 굵직한 역할에 최적화된 최정수의 기묘한 변신은 ‘금란방’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광경이다.

극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주춤하게 만드는 자유롭고 파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금란방’의 또 다른 매력은 전통예술과 현대적 요소가 기묘하게 어우러진 음악과 넘버다.

‘금란방’ 테마들을 엮은 ‘오프닝’ 넘버를 비롯한 클럽음악들, 극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모두를 위한 밤’,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놓는 그 시대 여자들의 넋두리와 한탄을 담은 ‘한양의 아녀자들’,

사대부라는 틀을 깨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김윤신과 그를 다그치는 이자상의 ‘용기’ 등은 극이 가진 메시지처럼 금기를 깨는 것들이다.

“프랑스 몰리에르, 예술단 측에서 강조하신 대금과 해금, 클럽 음악 등 이 작품을 구성하면서 들리는 너무 많은 키워드들 자체가 금기처럼 느껴졌다.

어울리면 어울리는 대로 놔둬보자”했다던 이진욱 작곡가의 의도대로 전통음악, 재즈, 모던록 등 각종 장르들이 합종연횡을 이룬다.

“일렉트로닉, 국악, 클래식 음악 등을 바탕으로 통일성을 준” ‘금란방’의 음악들은 “지금도 그 장르를 얘기하기 어렵지만 잘 어울리며” 기묘한 재미와 흥겨움을 더한다.

창작가무극 '금란방'의 매혹적인 전기수 '이자상' 역은 김건혜, 왕의 신하 '김윤신' 역은 김백현과 최정수, 그의 딸 '매화' 역은 송문선, 몸종 '영이' 역은 이혜수, '윤구연'은 김용한과 강상준, '마담' 역은 고미경이 맡는다.

음악은 국악그룹 고래야의 대금 연주가 김동근과 국악 록 밴드 잠비나이의 해금 연주가 김보미를 비롯한 7인조 라이브 밴드가 맡는다. 오는 30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