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폭로될 때 인간의 본성은 폭발해"

 

[무비톡 김상민 기자] 뮤지컬 '미드나잇'은 공포정치로 사람들이 악마로 바뀌는 이야기다. 극의 주제는 인간 내면을 깊게 흔들어 인간 본연의 어두운 욕망을 들어나게 하는 아주 잔인하고 색다른 뮤지컬이다. 우리들은 각 자 자신에 비밀 이야기 한두 개씩 갖고 있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그 비밀이 폭로될 때 인간의 본성이 잘 드러난다.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미드나잇'은 1937년 러시아를 배경으로 어느 부부에게 일어난 끔직한 사건을 그려낸다.

12월 31일 자정, 잠시 전화를 한 통 빌리러 온 낯선 방문자(비지터)는 공포정치를 실현하는 비밀경찰 엔카베데 소속이다.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는 조금씩 부부의 비밀과 치부를 드러내며 두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들의 단단한 믿음과 사랑이 '비지터'를 통해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다. 

 

'쾅!쾅!쾅!' "엔카베데다 문 열어!" 1937년 12월 31일, 자정만을 기다리며 축배를 들려던 부부의 집에 낯선 비지터가 찾아왔다. 그의 등장과 함께 멈춰버린 시계.

비밀 경찰 동료들이 자신을 두고 가버렸다는 핑계로 불쑥 들어온 비지터는 "자정까지 채워야 할 할당량이 한 놈 남았다"는 소름끼치는 말로 부부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어 그는 나라에 충성하며 올바르게만 살아온 것 같은 부부의 비밀을 하나씩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국가에 지대한 공을 세워서 어떠한 의심도 피해갈 수 있는 '프로텍션(면책권)'을 받은 변호사 남편은, 사실 동료를 고발하며 자신의 실적을 쌓아온 끔찍한 사실을 감추고 있었다.

자상하고 가정적이던 남편의 또 다른 얼굴에 아내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치를 떤다. 그런 아내를 향해 "같이 춤을 추자"고 불길한 손길을 내미는 비지터. 그는 아내의 마음 깊숙이 자리한 욕망과 더불어 끔찍한 본능까지 자극한다.

 

서로의 치욕스러운 비밀들이 밝혀지자 부부는 두려움과 경멸에 떤다. 결국 아내는 도를 넘어버린 모욕감과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비지터를 공격한다.

죽었을 것이 분명한 비지터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지자 시계바늘은 다시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문밖에서 들려오는 '쾅!쾅!쾅!' 노크 소리.

감당하기 힘든 진실과 당황스러움에 괴로워하는 부부의 앞에 다시 나타난 비지터. '반역자'로 지목당한 남편은 창문 너머로 몸을 던져 공포에서 벗어나고, 오열하던 아내는 이내 덤덤한 목소리로 "무섭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뮤지컬의 묘미는 엔카베데마저도 단순한 악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지점에 있다. 영혼을 바쳐가며 죽도록 일했지만 보람을 찾지 못한 엔카베데는 ‘악’에 지친 ‘악’이다.

영원한 권력의 비호 아래 명령을 따르며 안락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엔카베데는 “새로운 시대가 날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인간 심연을 헤집는 문학적 작품으로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아제르바이잔을 대표하는 극작가 엘친 아판디예프의 희곡 <시티즌즈 오브 헬(Citizens of Hell)>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작곡·작사가 로런스 마크 위스와 극작가 티모시 납맨이 뮤지컬로 만들었다. 두 사람의 뮤지컬은 국내에도 <투모로우 모닝>과 <쓰루 더 도어>가 공연된 바 있다.

아제르바이잔을 대표하는 극작가 엘친의 희곡 ‘시티즌스 오브 헬’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영국 작사·작곡가 로런스 마크 위스와 극작가 티머시 냅맨이 만나 재탄생했다.

 

국내 초연작으로 뮤지컬 ‘아가사’의 김지호 연출·한지안 작가가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부부를 공포에 떨게 하는 비지터는 정원영·고상호가 연기한다.

남편은 ‘고래고래’ 등에서 호연한 배두훈과 최근 남성 4중창 그룹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에 출연하며 노래 실력을 뽐낸 백형훈, 아내는 ‘넥스트투노멀’의 전성민과 일본 극단 시키에서 활약한 김리가 맡았다.

아시아 최초 공연이다. 무대 한쪽,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통해 라이브로 연주되는 배경음악은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2월 26일까지 한다. 문의: 1666-8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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