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눈빛, 손짓 하나 하나에 섬세한 감정을 담아내'

[2018 엘리자벳]EMK제공 (2)-1

[무비톡 김상민 기자]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공 엘리자벳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오스트리아 황우 자리에 올랐지만 끝나지 않는 죽음의 토드가 엘리자벳이 불행한 삶에서 자유을 갈망하며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엘리자벳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죽음의 사랑 이야기를 담는 뮤지컬 ‘엘리자벳’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 중이다.

‘모차르트!’, ‘레베카’를 탄생시킨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의 작품이다. 1992년 오스트리아의 씨어터 안 데르 빈에서 초연한 뒤 27년간 세계 12개국에서 누적 관객 수 1,100만을 돌파했다. 국내에는 2012년 첫 선을 보였고 올해 3년 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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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죽음(토드)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지만 이 작품에선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죽음을 통해 엘리자벳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의 유혹에도 자신의 힘으로 자유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외로움에 미쳐 아들의 마음속 상처와 민중의 배고픔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그런 엘리자벳의 모습은 연민을 유발한다. 극은 엘리자벳을 암살한 루케니의 시선으로 엘리자벳의 일대기를 따라간다.

역사적 인물에 환상 속 인물인 죽음을 결합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다만 엘리자벳과 소피의 대립, 결혼 생활의 불행한 면모가 강조돼 루돌프의 어머니이자 민중의 통치자로서의 엘리자벳의 내면은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2018 엘리자벳] EMK제공

공연은 어린 시절 '씨씨'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로 활발했던 황후 엘리자벳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하며 암살 당하기까지의 일대기를 그린다. 자유를 갈망하던 엘리자벳은 엄숙한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황제를 만나 누구보다 억압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아들 황태자 루돌프를 낳은 뒤 다소 이기적일 정도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며 떠돌았고, 동시에 헝가리 독립을 지지하는 등의 행보로 국민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럼에도 종국에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며 비운의 여인이었다. '엘리자벳'은 파란만장한 비운의 황후가 '죽음'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통해 독창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유럽 문화권에서 죽음은 다양한 작품에서 '토드(Der Tod)'라는 명칭으로 의인화된 바 있다. '엘리자벳'은 형이상학적인 죽음을 단순히 한 배우로 의인화하는 것을 넘어 극 중 타이틀 롤인 엘리자벳을 유혹하고, 함정에 빠트리기도 하며 사랑하는 적극적인 캐릭터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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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소화하는 넘버들 또한 매혹적이다. 엘리자벳의 최후의 연인이 되겠다는 갈망을 드러낸 '마지막 춤', 황후가 된 엘리자벳을 지켜보며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노래하는 '그림자는 길어지고' 등 극 중 죽음의 넘버들은 록 장르를 기반으로 찌를 듯한 고음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스케일 큰 합창 위주인 뮤지컬의 전형을 탈피한 곡 구성은 죽음의 판타지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동시에 강한 존재감을 발산하게 만든다.

버릴 게 없는 넘버는 이 작품의 무기다. ‘마지막 춤’, ‘나는 나만의 것’,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밀크’, ‘키치’, ‘엘젠’, ‘내가 춤추고 싶을 때’, ‘행복은 너무도 멀리에’, ‘그림자는 길어지고’ 등 극에 녹아들며 몰입을 높인다. 웅장한 스케일의 무대와 화려한 의상, 세트 등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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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현은 아빠처럼 자유롭고 싶어하는 말괄량이 소녀부터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의 결혼, 이후 구속된 삶에 괴로워하는 여자의 깊은 내면을 오간다. 초반 자유분방하고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 씨씨를 표현할 때 이질감이 들 법하지만 목소리 톤이나 표정 등으로 캐릭터와의 나이 차를 극복한다.

이후 나이를 먹고 고뇌하는 엘리자벳의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유부단한 남편과 시어머니인 대공비와의 갈등 속 괴로워할 때 옥주현의 감정 연기는 극대화된다. 시원하고 풍부한 가창력으로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르는 장면이 백미다.

자유롭고 활달했던 엘리자벳의 어린 시절, 죽음은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진 엘리자벳을 처음 만나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이후 평생 동안 엘리자벳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가 원하는 자유를 자신만이 줄 수 있다고 유혹한다.

엘리자벳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지만, 자신을 꼭 닮은 아들 루돌프가 세상을 떠난 뒤에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암살자 루케니의 칼에 찔려 운명을 달리하는 순간, 죽음을 다시 만나 진짜 자유를 얻게 된다.

박형식은 출연을 확정지은 후 죽음에 최적화된 연기와 발성, 가창력을 보여주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무대 위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미 '늑대의 유혹', '삼총사', '보니앤클라이드'로 뮤지컬 배우로서도 좋은 성과를 보여줬던 그는 이번 '엘리자벳'으로 그간 본 적 없던 박형식의 또 다른 매력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기대 이상의 섹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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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 이미지를 위해 회색빛 헤어스타일로 변신한 박형식은 연기하는 내내 표정, 눈빛, 손짓 하나 하나에 섬세한 감정을 담아내며 죽음의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인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여기에 고음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가창력, 상대 배우와의 케미스트리 등 2년 전보다 훨씬 성장한 박형식을 만날 수 있다. 박형식은 아이돌 출신 배우답게 가창력과 연기, 그리고 ‘마지막 춤’의 댄스까지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

전문적인 뮤지컬 배우는 아니지만 그런 편견을 깨며 무난하게 극을 이끈다. 다만 판타지적인 역할인 만큼 음산하고 몽환적인 매력을 더 배가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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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을 암살하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극을 서술하는 루이지 루케니 역의 박강현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다. 그는 오프닝부터 피날레까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객석을 넘나들고 빠른 변장과 태세전환으로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또한 루케니는 가난한 국민들을 외면한 채 외모 치장을 위해 사치를 일삼고, 병든 아들을 버려두고 개인의 자유만 찾았던 엘리자벳의 비판적인 현실을 꼬집는다. '엘리자벳'은 2012년 초연 당시 10주 연속 티켓 예매율 1위를 차지하며 총 120회에 걸쳐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제6회 더뮤지컬 어워즈'에서 12개 부문에 후보작으로 선정, 역대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올해의 뮤지컬상을 비롯해 총 8개 부문을 석권하여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이후 1년 만에 가진 앙코르 공연에서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예매율 1위에 올라 4주간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97%의 경이로운 객석 점유율을 기록, 누적 관객수 10만 명을 돌파했다. 2015년 공연에서도 10주간 예매율 1위의 자리를 고수해 레전드 뮤지컬로 등극했다.

죽음이 6명의 '죽음의 천사들'과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는 '마지막 춤', 자유와 사랑을 갈망하는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 멸망 직전에 놓인 합스부르크 시대를 그려낸 '키치', '그림자는 길어지고' 등 서사에 깊이를 더하는 매혹적인 넘버들은 '엘리자벳'을 최고의 뮤지컬로 평가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박형식을 비롯해 옥주현, 김소현, 신영숙, 김준수, 빅스 레오, 이지훈, 박강현, 강홍석 등이 출연하는 뮤지컬 '엘리자벳'은 내년 2월 10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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