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들이 있는 공간이라 노골적인 대사들이 꽤 많아'

더웨이브 제공

[무비톡 김상민 기자] 뮤지컬 '풍월주'는 신라시대 때 남자 기생들이 접대하는 '운루'를 배경으로 풀어지는 이야기로 이곳에 모여 있는 남자들, 그들은 바람과 달의 주인 '풍월주'로 불린다.

'운루'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열'은 신분 높은 수많은 여자 중 여왕 '진성'의 절대적인 애정을 받는 존재다. 열이는 운루 제일가는 풍월주로 가무는 물론 훌륭한 말솜씨까지 지녔다. 그렇지만 열이는 여왕의 사랑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오랜 친구 담이만 바라봤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련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중독성 있는 넘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들을수록 참 좋은 노래들이다. 그런데 <풍월주>의 노래들은 곱씹을수록 참 좋은데 작품 내용은 곱씹을수록 아쉬운 점이 늘어난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풍월주'는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분위기와 설정은 있는데 개연성이 없다. 입체감이 결여된 인물은 이미지에만 복속한다. 사극과 삼각관계에 동성애라는 요소가 버무려져 있으나 근본적으로 이야기를 구축하는 힘이 결여돼 있다.

더웨이브 제공

남자 기생인 사담과 열은 2시간 내내 한 겹 이미지만 걸치고 있다. 사담에게 부여된 캐릭터는 '열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이고, 열에게 부여된 캐릭터는 '사담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두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전혀 형상화하지 못한다.

둘이 어울리는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고 저절로 깊은 관계가 형성될까? 기생이라고 하는데, 작품 내내 보여주는 태도나 행동은 여느 귀족 자제와 다를 바 없다. 여왕을 임신시켜 왕이 될 수 있다면, 기생이라는 신분이 자극적인 장치 외에 극적 필연성을 갖느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평면적이고 밋밋한 인물들로 지탱하는 극의 부피는 뒤로 갈수록 얇아진다. 특히 사담이 결정적인 '선택'을 한 후의 5분은 작품 전개상 최고조로 마음을 흔들어야 하는 장면임에도 길고 지루하다.

슬픔은 그렇게 나열하거나 풀어놓아야 절절해지는 것이 아니고 타고 올라가 터뜨려야 하는 것이다. 공사장 가건물 뼈대를 엮은 듯한 4층 무대에는 기능과 상징만 남았다. 공간적 분할에 충실할 뿐, 미학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 재료 하나로도 우아함을 불어넣는 섬세함은 어디에도 없다.

더웨이브 제공

열이는 기생이었고 담이는 그의 몸종이자 운루에서 허드렛일을 담당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겉모습만 봐서는 대체 누가 제일가는 풍월주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의상이 허술하다. 투박한 디자인과 지나치게 수수한 옷 색깔은 매혹적인 열이의 춤선을 방해한다.

게다가 <풍월주>에 나오는 거의 의상들은 신라시대라는 설정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에서나 입을 법한 재킷을 입는가 하면 가죽 의상까지 나와 몰입을 깬다. 이외에도 몰입을 방해한 장면들이 많다. 열이와 담이는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만큼 애절한 사이다.

근데 작품 내내 이들의 관계가 우정인지 사랑인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나는 열이와 담이의 관계가 우정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무엇인지 보다도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토록 절절해졌는지가 궁금했다.

서로 눈물 쏟고 있는 결과만 있지 언제 처음 만났는지, 우정인지, 사랑인지, 가족애인지 등의 과정이 없다.열, 담, 진성 세 사람 개인의 서사를 들여다봐도 비어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서사가 부실한 캐릭터는 담이다.

오죽하면 공연을 보는 동안 열이를 간절히 원하는 진성에게 마음이 쏠려 속으로 진성 여왕과 열이의 행복한 앞날을 응원했을 정도로 담이의 눈물은 나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담이가 열이를 바라보고 쫓아다니는 행동만 나올 뿐 그의 마음이 자라난 이유를 알지 못해 공감할 수 없었다. 

더웨이브 제공

여왕은 얼굴과 몸에 커다란 흉터가 있다. 지금은 천하를 쥐고 있는 왕일지 몰라도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큰 고난이 있었는지, 또 왕이 된 이후에도 혼자서 얼마나 큰 상처를 견디고 있는지 이 흉터를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이 흉터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만 있고 과정이 없는 <풍월주>의 문제점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흉터 때문에 아파하는 장면만 있을 뿐 왜 흉터가 생겼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운장의 느닷없는 사랑 이야기는 군더더기처럼 느껴졌다. 알고 보니 운장은 오랜 세월 여왕을 곁에서 보필하면서 사랑을 키웠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본인 대신 여왕 옆에 열이를 세웠다.

사랑하는 진성의 오랜 소망인 임신을 위해서도 열이를 앞세웠다. 이렇게 갑자기 나오는 운장의 이야기에 놀랐다. 인물 한 명씩 각자의 사연과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좋으나 주인공 열이와 담이의 서사도 부족해서 공감이 안 되는데 운장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더웨이브 제공

기생들이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노골적인 대사들이 꽤 많았다. 열이와 여왕이 주고받는 대사나 운루를 찾는 여자들과 풍월주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들이 그랬다. 재치 있는 농담식이 아니라 대부분 비유적으로 표현한 어휘들이었다.

수위가 불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놀랄 만은 했다. 더 불쾌한 부분은 이 대사들이 아니고 귀족 부인들이 '주령구 놀이'를 하는 장면이었다. 주령구 놀이는 지금 시대로 따지면 술게임인데 주사위를 던져 해당하는 벌칙을 수행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부인들은 기생도 아닌 담이를 강제로 데려와 몸을 만지려 하거나 강제로 술을 먹이려 하는 등 성희롱을 했다. 작품에서 꼭 있어야 할 중요 장면인지 의문이 들만큼 불쾌했다. 풍월주를 채우는 많은 배우들 중 '사담'역의 배우 '손유동'과 '궁곰'역의 배우 신창주가 유독 눈에 띄었다.

더웨이브 제공

배우 손유동을 떠올리면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트레인스포팅', '찌질의 역사'등의 작품이 떠오른다. 젊고 활기차고, 때로는 찌질했지만 그마저도 젊은 시절의 매력으로 만들 수 있는 통통튀는 매력의 배우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차분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통해 그가 가진 또 다른 감성을 충분히 표현해냈다.

이제까지 그가 공연해온 작품들과 캐릭터들을 들여다볼 때, 그의 안정적인 연기는 당연한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풍월주의 '사담'이라는 역할은 현실에서 겪어보지 못한 캐릭터인 만큼 만들어내기 어렵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안정감을 주는 연기로 관객석에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더웨이브 제공

'궁곰'역의 배우 신창주 또한 이 작품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나 한다. 작품의 이야기가 무거웠기 때문에 관객들이 시원하게 웃을만한 장면이 많지 않았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도 한 작품의 분위기를 '궁곰'역의 신창주 배우가 잘 조절해주었다.

작품에서 '멋있음'을 담당하는 것보다도 분위기메이커역을 묵묵히 잘 해내는 배우들을 볼 때 더 감동적이고 고마울 때가 많다. 이번 작품에서 배우 신창주는 그러한 자기 몫을 충분히 잘 해내지 않았나 싶다. 이번 시즌 '진성'과 '열', '사담' 사이의 감정이 진하게 와닿지 않은 점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뮤지컬 '풍월주'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고, '풍월주'만이 가질 수 있는 소재와 이야기, 색깔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풍월주'가 그려나갈 역사를 계속해서 기대해본다. 뮤지컬 '풍월주'는 2019년 2월 17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공연된다.

더웨이브 제공

 

저작권자 © 무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