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까지 다채롭게 채워'

[무비톡 김상민 기자] 80년대 댄스 영화의 원조인<플래시댄스>가 뮤지컬로 돌아왔다. 파격적이고 화려한 춤은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배우들의 고난도 춤사위는 익숙한 넘버와 어우러져 ‘댄스 뮤지컬’의 진수를 보여줬다.

미국 영화 '플래시댄스'를 영국 웨스트엔드 오리지널팀이 만들어서 재미있는 뮤지컬이라고 생각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댄스에 강력한 댄스는 볼 수 없었지만 영국 댄스에 차분하고 재미있게 추는 댄스라 색다른 느낌이라고 볼 수 있다.

<플래시댄스>의 제니퍼 빌즈의 또 다른 작품은 너무 완벽했고, 특별했던 작품으로 평생의 대표작이 되어버린 케이스임은 더 이상 말할 이유가 없다. 제니퍼 빌즈의 1983년도 작품 <플래시댄스>는 로맨스풍의 댄스무비이다.

피츠버그의 제철공장의 노동자인 알렉스는 낮에는 용접봉을, 밤에는 나이트클럽 플로어댄스로 ‘전문무용가’의 꿈을 키운다. 그의 꿈을 옆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은 제철소 사장의 아들인 닉. 젊은이의 꿈과 희망과 춤이 팝 명곡의 프레이드와 함께 펼쳐진다. 

원작영화 ‘플래시댄스’가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과감한 댄스씬의 연출덕만은 아니다. 이제는 첫 소절만 들어도 몸이 반응할 정도로 유명해진 원작영화의 OST도 한몫 한다.

대표곡인 ‘What A Feeling’, ‘I Love Rock and Roll’, ‘Maniac’, ‘Manhunt’ 등의 히트 팝들이 그 시대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것은 물론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그 히트팝들을 명장면들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특히, 80년대 당시 원작영화와 음악을 기억하고 있는 중장년층 관객들에게는 더 없이 흥겨운 추억 소환의 체험을 선물한다.

공연은 원작 영화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뮤지컬의 특성답게 듣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다채롭게 채워넣었다. 그 당시 패션을 재현한 댄서들이 주인공과 함께 군무를 추는 장면은 영화로는 볼 수 없었던 뮤지컬만의 매력이다.

낮에는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꿈을 쫓는 여주인공이 상류층의 남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신데렐라식 단순 서사도 히트팝과 댄스, 다양한 조연들의 개성적인 매력이 더해져 다채로운 볼거리로 재탄생됐다. 

원작의 서사를 모르는 관객이라면 히트팝 중심으로 연출된 무대가 주크박스 뮤지컬처럼 연결된 서사가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무대전환이 관객이 보는 앞에서 이뤄지는 덕분에 시간이 지연되는 순간도 있다. 그런 점들을 더 자연스럽게 보완한다면 서사에 더 몰입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연은 처음부터 강렬한 무대로 문을 열었다. 배우들의 열정 가득한 댄스로 포문을 연 ‘플래시댄스’는 용접공이라는 주인공 알렉스 오웬스(샬롯 구찌)의 직업을 위해 용접의 불꽃 튀는 장면을 무대 위에서 실감나게 연출했다. 이어 남자 주인공 닉 허리(앤디 브라운)의 만남까지 두 청춘의 우연한 만남을 댄스를 통해 풀어냈다.

‘플래시댄스’는 용접공으로 살아가던 알렉스가 자신의 댄스 재능을 살리기 위해 댄서를 키우는 명문 시플리 아카데미에 진학하겠다는 꿈을 이룬다는 성장 스토리다. 그러나 알렉스의 성장 스토리뿐만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사랑과 우정도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특히 알렉스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그녀를 마치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아껴주던 한나(안드레아 밀러)는 알렉스가 도전 앞에서 주저할 때 그녀를 일으켜주고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

또한 친구 글로리아(시오반 디핀), 일하던 클럽의 사장 해리(토니 스탠스필드) 등 알렉스는 남자주인공 닉 허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받고 용기를 얻으며 댄서로 성장하게 된다.

댄서가 되고 싶어하는 알렉스의 열정은 무대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특히 넘버 ‘Manic’은 그러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 ‘춤에 미쳤다’는 알렉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알렉스로 분한 샬롯 구찌의 열정의 댄스는 관객들이 무대에 집중하게 한다. 

무엇보다 놀랬던 것은 이 ‘플래시 댄스’ 메인 포스터의 장면이자 영화 속 명장면으로 꼽히던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춤을 추는 알렉스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구현한 점이며 1부의 마지막 장면은 압권 중 압권이다. 열정적인 춤도 좋지만 닉 허리와의 듀엣도 이 뮤지컬에서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알렉스는 춤을 출 때는 카리스마와 열정 가득,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닉 허리와 함께 있을때는 꿈을 꾸는 소녀로 돌아가 가끔은 두려워하고 또 꿈에 기대와 희망을 걸기도 한다. 앞이 보이지 않은 미래에도 그와 함께 있기에 괜찮다며 서로를 향해 넘버 ‘Here and Now Reprise’를 부르는 모습은 로맨틱하다. 

커튼콜은 ‘플래시댄스’에서 자랑하는 볼거리 중 하나이다. 8분가량 이어지는 ‘I Love Rock and Roll’ ‘Manic’ What a Feeling’ 등은 뮤지컬 내의 가장 흥겹고 신나는 넘버들이다. 마치 뮤지컬이 끝나고 배우들과 함께 짤막하게 콘서트를 즐기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하고 관객들은 이에 기립해 함께 음악에 몸을 흔들며 뮤지컬의 여운을 마무리한다. 알렉스 역을 맡은 '샬럿 구치'는 이날 많은 대사와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에도 안정적인 실력을 뽐냈다.

오디션 장면에서 심사위원 앞에서 긴장한 듯 실수를 한 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춤의 강도를 높여간 연기는 자연스러우면서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춤을 추다 의자에 앉아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는 장면에선 관객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공장 사장이자 알렉스의 연인 닉 허리 역할을 맡은 앤디 브라운은 감미로운 목소리와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기에서 명곡의 힘을 또 한 번 증명한다. 주제곡 ‘왓 어 필링’은 1983년 영화 개봉 당시 마이클 잭슨의 열풍을 잠재우고 6주간 미국 빌보드 ‘핫 100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매니악’ 역시 2주간 빌보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저력 있는 이 곡들은 극장을 메운 전 세대를 열광시켰다. 제니퍼 빌스의 알렉스를 기억하는 ‘MTV 세대’는 추억에 젖어 몸을 흔들었고, 그 시절을 살지 못한 이들은 1980년대의 활력이 선사하는 신선함에 박수를 쳤다. 

특히 추억의 명곡이 메들리 형식으로 10분여 간 진행되는 커튼콜은 그 어떤 뮤지컬의 커튼콜보다 역동적이고 화려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춤추고 소리 지르며 198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즐겼다. 가히 이 작품의 백미로 꼽을 만한 ‘라스트 텐미닛’이었다.

풍성한 볼거리에 비해 빈약한 스토리는 아쉬웠다. 알렉스의 비중이 커지면서 닉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과의 스토리가 개연성을 잃고 산만하게 전개됐다.

또한, ‘카멜레온 걸스’가 울려퍼지는 스트립 댄스 클럽 장면 묘사 등은 여성 배우를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면서 1980년대 젠더 감수성마저 그대로 답습한 모습을 보여줬다. 수십년 전 히트한 작품에 의존한 만큼 뻔한 스토리는 피할 수 없는 한계였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1980년대가 다시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른 이유를 두고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바로 이 기분! 믿고 있다는 느낌. 난 뭐든 가질 수 있어, 이제 내 삶을 위해 춤을 춘다면.’ <플래시댄스>가 전하는 메시지는 ‘왓 어 필링’의 가사처럼 맹목적일 만큼 희망차다.

현실이야 어떠하든 1980년대 무드가 선사하는 ‘이 기분’에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편, 웨스트엔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뮤지컬 ‘플래시 댄스’ 서울 공연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는 2월 17일까지 공연된다. 이후 광주, 부산, 대구, 안동, 대전 등으로 전국 투어에 나설 예정이다.

 

저작권자 © 무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