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 김상민 기자] 연극 '자기 앞의 생'(연출 박혜선) 프레스콜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렸다. 로자 역에 양희경, 이수미, 모모 역에 오정택, 카츠의사 역에 정원조, 유세프 카디르 역에 김한이 출연 한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에서 작가 겸 배우로 활동하는 자비에 제이야르 각색으로 2007년 초연됐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유태인 로맹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내놓은 소설 ‘하늘의 뿌리’(1956년)로 프랑스의 노벨문학상이라고 불리는 공쿠르 상을 수상한 뒤 다양한 필명을 사용해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낸 ‘자기 앞의 생’이다. 로맹가리는 이 작품으로 또 다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사실 이 상은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 상으로, 로맹 가리가 추후 자신이 아자르라고 밝힘으로써 그는 이 상을 두 번 받은 역대 작가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문학계에 충격을 안겨준 이 작품을 국립극단이 올해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2019년 국립극단의 첫 작품이다. 작품을 각색한 것은 프랑스에서 작가이자 배우로 활약 중인 자비에 제이야르다.

그의 각색을 통해서 지난 2007년 초연된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의 권위 있는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에서 최고작품상, 최고각색상, 최우수연기상을 휩쓸었다. 로맹가리의 삶은 2차세계대전 발발과 종전 아래 치열하게 펼쳐졌다.

그는 공군에 입대하기도 했고 외교관, 대변인으로도 활약했다. 소설가로서 쓴 ‘하늘의 뿌리’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지만 평론가들의 평론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자살로 노년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그에게 공쿠르 상을 안긴 ‘자기 앞의 생’은 생각보다 내용이 담백하고 단순했다. ‘사랑 없는 인류의 존재는 가능한가’ 라는 근원적이면서도 소박한 질문이 그것이었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연령대에서 멀리 벗어난 꼬마 모모를 내세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고 있다.

여기에 모모를 포함해 홀로 남겨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유대인 보모 로자도 함께 한다. 소설과 달리 연극은 모모와 로자의 대화에 더욱 집중한다. 모모와 로자의 대화는 단순히 어린이와 어른의 문답을 뛰어 넘어 국가와 종교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로 이어진다.

전혀 다른 국가와 종교를 가지고 있음에도 차곡차곡 유대를 쌓아가는 모모와 로자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동시에 인류애를 쌓아가는 일은 종교나 국가가 달라도 가능함을 시사한다.

 

제55회 동아연극상에 빛나는 이수미, 30년 넘게 쌓아온 연기 관록을 자랑하는 양희경은 외롭고 힘든 삶 속에서도 모모를 깊이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이수미의 안정적인 발성과 양희경의 독특한 목소리는 관객들을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실제로는 14살인 10살 소년 모모를 연기한 오정택의 표현력도 돋보였다.오정택은 조숙하지만 순수한 모모를 본인만의 색깔로 표현하면서 극 내용을 설명하는 내레이터 역할까지 제대로 해냈다.

다만 30대인 오정택이 10살 소년을 연기하다 보니 이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점은 아쉽다는 평가다. 프레스콜 전막 시연에서 배우들은 흠잡을 데 없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보였다.

 

대개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연기만으로 잔잔하게 진행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음악 및 퍼포먼스를 활용해 재미를 더한 점도 특징이다. 아랍계 소년 모모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로자 아줌마와 산다.

삶이 쉽진 않아도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모모의 눈에는 세상이 매일매일 새롭다. 로자 아줌마와 나누는 소소한 대화는 외로운 모모의 삶을 지탱해주고, 혈육도 아닌데다 인종, 종교, 세대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오로지 깊은 애정만으로 서로의 삶을 껴안는다.

 

특히 엄마를 살해한 아빠에게 모모를 보내지 않으려 로자 아줌마가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은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을 모모가 지키는 대목에서 결국 눈물로 흘러내렸다. 극은 인종, 종교, 세대 등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는 두 사람 관계에 집중해 인간애를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많은 날을 살아온 로자 아줌마와 많은 날을 살아가야 할 모모의 대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대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박혜선 연출은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관객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 무대를 사실적으로 구현하고, 세트를 객석에 가깝게 배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1막부터 5막까지는 이지수가 6장부터 12장까지는 양희경이 시연했다. 양희경은 30년 넘게 쌓아온 연기 관록으로 110분의 무대 위에서 풍부한 감정선을 전달해냈다.

그런 로자에게 "나 엄마가 하나 있잖아"라며 말하는 모모의 행복한 얼굴에 미소를 띠게 했다. 프랑스 문학계의 거장 로맹 가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자기 앞의 생'이 22일부터 다음 달 2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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