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컷= 기생충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지난 5월, 설마하며 마지막까지 기대를 모았던 제 72회 칸 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종려상이 봉준호 감독의 품에 안겼다. 수상 이전부터 영화 <기생충>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포스터와 도통 내용을 유추할 수 없는 예고편 등으로 영화 팬들의 궁금증과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 이름 뒤에는 '뭔가 있겠지', '뭔가 다르겠지' 하는 막연한 신뢰가 있었기에 이번 영화를 더욱 기다려왔다. 이냐리투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거장 감독들의 찬사와 이른바 '봉준호 장르'의 탄생 ,한국 영화사 100주년 기념비 같은 작품이다. 

최초의 한국영화 황금종려상 수상작 등 화려한 수식어들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프랑스를 비롯한 약 192개국의 개봉을 앞뒀으며 국내에선 괴물에 이어 천만돌파의 쾌거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기생충>에 대해 다양한 매체에서 연일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후의 지금 나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영화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매우 좋아했고, 감탄이 나오는 그만의 미쟝센과 뻔히 보이는 장르영화의 공식을 항상 비틀어버리는 그의 변수는 팬이 되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기생충>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해왔던 탓일까. 분명 재미있었고 생각도 많아지는 영화였지만 아쉬움 또한 적지 않았다. 우선 극의 설정이 매우 억지스럽고 작위적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먼저 극 중 박사장 가족은 기택네 가족이 그 자리에서 급조해낸 말 한마디에 너무나도 쉽게 속아 넘어간다.

더군다나 기정이 인터넷에서 본 글로 아이를 가르치는데 그 인물과 능력에 대해선 도무지 한 치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동화나 우화에서나 봤던 '부자=멍청이' 설정이 떠오를 정도였다. 또한 기택네 가족의 전원 취업을 성공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연교의 캐릭터 또한 '심플'하다고 넘어가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스틸 컷= 기생충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멍청한 캐릭터 중 하나인데, 차례차례 들어온 '뉴페이스'들이 일한지 얼마 안되어 실력 있고 능력도 출중한, 그야말로 만나는 일조차 힘든 '뉴페이스' 들을 소개하는데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걸 그대로 믿고 고용해버린다.

이집 주인인 박사장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근엄한 첫 등장과 동시에 관객들은 기우와 기정의 정체가 탄로날까 긴장하게 되지만, 그 역시 위엄 있는 태도와 날카로운 눈빛과는 달리 그들에 대한 건 거짓이든 뭐든 일말의 관심이 없다.

아니, 애시당초 그는 집안의 모든 걸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금지옥엽 귀한 어린 아들이 귀신을 보았건, 전등 센서가 고장이 났건 이유를 알려하지 않는다. 바쁜 그의 일상에 신경 쓸 일을 더 만들고 싶지 않은 걸까, 평온한 가정에 굳이 호기심이라는 불안을 더하기 싫은 걸까. 아니라면 이 또한 상류층의 기만일까. 

그 양극에 서있는 기택네 가족을 얘기 안할 수 없는데, 와이파이도 끊기고 오랫동안 피자박스 조립으로 생활할 정도로 가난한 그들이 한순간에 전원 취업에 성공한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이들이 여태 취업을 못했다는 것은 그들이 '단지 나태해서'라고 간편하게 치부해 버리기엔, 그들 개개인의 커리어나 재수경험을 보자면 또 그렇지도 않다. 부자집에서 기생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그들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란 없다.

젊은 수행기사는 기정의 속옷으로 간단히 해결하고-여기서 박사장 내외는 왜 하필 속옷을 남겼을까 의심하지만 그냥 수행기사가 변태 였다라는 말도 안되는 추리로 결론짓는다- 또한, 지금의 주인보다 오랫동안 이집에서 집사 역활을 하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에게는 마침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기우와 기정의 활약으로 그녀를 내쫒는데 성공한다.

참고로 연교는 이 아주머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인물로 나온다. 연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봉준호 감독은 여성캐릭터를 소비하는 데 도태됐고 다분히 평면적이다. 연교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멍청한 것을 넘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스틸 컷= 기생충

그저 햇살 좋은 정원 테이블에서 엎드려 자는 정도. 관객이 유추할 수 있는 건 그냥 젊고 예쁜, 속된 말로 '취집'한 여성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연교도 상류층에 있어 인식하지 못할 뿐 그 또한 기생충이 아닐까를 생각해본다. 더불어 조여정 배우의 이미지 탓이었을까,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내공을 담은 애정신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딸 다혜도 귀여운 외모의 여고생으로 동생을 질투하고 연상의 남성을 좋아하는 어디선가 본 듯 한 철부지 딸이다. 하지만 미성년자와의 키스신은 굳이 왜 넣은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나마 가사도우미 문광은 사건을 이끌어가며 극의 분위기와 장르를 변환시키는 장치로서 그 역할을 다 했고, 기정과 엄마 충숙은 그냥 욕만 하다가 끝났다. 가장 인상이 찌푸려졌던 점은 이 영화에서 말하는 가난이었다.

기택네 가족이 박사장네 집에서 일을 할 때, 박사장이 보여준 그들에 대한 무관심과 거짓이라는 느낌이 와도 대충 속아주는 듯한 그 태도. 그들 앞에서는 적당히 타협하며 교양 있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냄새가 난다며 무시하기 일쑤다.

그는 계속해서 기택에게 선넘지 말라는 말을 하는데, 애정신에서 단적으로 표현됐듯 그들도 욕망과 욕구를 좇는 그냥 인간이다. 오히려 마약이나 여성속옷을 언급하며 저질스럽게 흥분하는 그저 그런 인간들이다.

인디언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사준 인디언 용품들.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뺏긴 인디언들의 정신을 자본주의적 상품으로만 사용하는 아들. 그런 그들이 기택네 가족을, 가난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이중적이며 더불어 기만이라고 보여 진다.

가난한 기생충 기택가족은 박사장의 무관심에 안주하며 기회를 틈타 끊임없이 올라가려한다. 바퀴벌레처럼 숨고 도망칠지라도,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모든 것이 밑바닥일 때에도 기우는 자신의 계획을 말하며 올라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스틸 컷= 기생충

하지만 관객들은 안다. 그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란 걸. 찝찝한 현실이라는 것을 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다시 한 번 현실과 타협한다. 가난한 그들을 보며. 사실 <기생충>은 이 영화에 대해서 보다 영화 외적인 것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칸 영화제의 영향력 있는 이들이 영화 속 가난을 소비하고 심사하고 즐긴다. 그들에게 가난은 영화 속 좋은 소재일 뿐이다. 이들의 만장일치로 받은 황금종려상. 그리고 그들의 기만적 시선은 일반 대중들에게 심어준다. 정말 좋은 영화라고. 그럼 우리는 또 박수치고 환호한다.

마치 지하실 속에서 박사장에게 충성을 외치는 그 사람처럼.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그렇다. '아.. 잘은 모르겠지만 재밌네, 좋은 영화네' 적당히 타협하며 그들의 시선에 안주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사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인가도 싶다. 왠지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은 걸작일 것 같으니까. '그들'이 그렇다고 했으니까. 내가 재미없어서 재미없는 영화라고 하면 참 수준 낮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 영화를 관람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극심한 가난을 겪는 기택 가족도, 남궁현자 선생의 저택에 사는 부유한 박사장 가족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박사장에게 연민을 느끼고 기택에게 분노를 느낀다. 언제 어디서건 우리는 박 사장만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들처럼 상류층의 그들을 위한다. 우리 또한 기생충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찝찝할 뿐이다. 봉준호 감독은 언제나 현실적인, 그러나 인류애가 섞인 시선으로 영화를 그려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는 더 나아가지 않았다. 가난한 자들의 의지와 희망을 무참히 짓밟는 시선. 지극히 현실적인 그의 태도. 영화는 창의적이나 그가 보여준 세계는 그저 현실이었다. 성충이 되어 마침내 숙주를 죽이는 무엄한 기생충을 본다.

봉준호 감독의 허허실실한 유머로 풍자가 있는 블랙코미디 같지만, 오히려 그는 <기생충>을 통해 불평등이 고착화된 현대사회를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극장을 나섰다. 분명 재미도 있고 잘 만든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로 현실을 보고 싶지 않다. 영화로 그 이상을 보고 싶다. 영화관에 들어서며 설레는 감정이 극장에서 나선 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란다. 마음속에 찝찝함이 아닌 긴 여운이 남는 영화이길 바란다. 어딘가 엉성해도 소주 한 잔 같은 영화가 그리운 요즘이다.

포스터=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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