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 김상민 기자] 10일 오후 2시 서울 신사동 오드포트에서 모나코-몬테카를로 발레단 '신데렐라' 간담회가 진행됐다. 자리에는 작품의 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와 수석 무용수로 승급한 안재용이 참석해 작품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데렐라’는 모나코-몬테카를로 발레단의 14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전통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신선함으로 가득한 이번 무대는 파격적인 무대의상과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무대, 그리고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조화를 이뤄 컨템퍼러리 발레의 진수를 보인다.

안무를 맡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1987년부터 몬테카를로 발레단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1993년 감독 겸 안무가로 임명 받은 뒤 현재까지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총 지휘를 맡고 있다.

역대 신데렐라 중 가장 성공한 발레` `고전의 진화`로 불리는 이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는 대신 맨발에 금가루를 뿌리는 등 파격과 참신함이 돋보인다. 마요는 14년 전과 이번 무대의 차이를 묻는 취재진에게 "왕자의 아빠를 한국인 무용수가 맡은 것 아니겠냐"며 웃음을 띠었다.

수석무용수인 안재용(26)의 얘기였다. 2016년 입단한 그는 2년 만에 최단기 승급해 몬테카를로발레단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이번 무대는 그의 한국 데뷔전이다. 마요는 안재용을 두고 "테크닉과 연기 양면에서 충분한 자질을 갖춘 인재"라며 치켜세웠다.

"우리 발레단은 경직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요구한다. 늘 새로워야 한다는 거다. 안재용이 바로 그렇다. 그가 연기하는 방식을 보면 내 레퍼토리가 한층 더 진화한다는 기쁨을 느낀다."

마요는 고전을 혁신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있어 거장으로 통한다. 원작을 비틀거나 서사를 재배열하고, 기존 인물을 없애거나 새로이 만들어낸다. 그의 수식어가 파격과 참신함인 이유다. 2002년 국립발레단 무용수 40명과 선보인 `로미오와 줄리엣`, 2005년 몬테카를로발레단이 공연한 `신데렐라` 모두 그랬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금가루가 뿌려진 맨발로 바뀐 건 왜일까. "신데렐라의 맨발은 순수함의 상징"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원작에서 유리구두를 신은 발은 하늘과 땅을 잇고 꿈과 현실을 중재하는 중요한 선이다.

난 이와 더불어 맨발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부유한 왕자 앞에 선 젊은 여성이 제 맨발을 슬쩍 내민다. 이 무구한 순간이야말로 내겐 갖은 보석으로 치장한 신데렐라보다 아름답고 진실한 순간이다." 요정이 된 신데렐라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말은 마요의 세계관을 압축해 준다.

"눈은 다만 보이는 것만 볼 뿐이니 가면을 벗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동화 속 이야기로 현실을 직시하는 게 과연 온당할까. 마요는 "동화가 현실에 가닿는 부분이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극에 황금 마차는 없다. 벽난로도, 못생긴 자매도 없다. 그 대신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다. 왕자는 부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데렐라는 그런 왕자를 사랑하나, 이는 우리가 기대하지 않는 여성상이다.

큰 궁전에 살고, 부자인 왕자 곁에 있고 싶은 마음 같은. 왕자의 아빠와 신데렐라 엄마가 키스하는 장면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신데렐라`가 단순한 동화가 아닌 인간과 현실을 비추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안재용은 2016년 몬테카를로에 입단해 입단 첫해부터 주요 배역을 잇달아 연기한 수재다.

2017년 1년 만에 세컨드 솔로이스트로 승급한 후 지난해 1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무용수(Soloist Principal)의 자리에 올랐다. 몬테카를로 발레단 수석무용수 안재용은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동작과 테크닉 위주의 훈련보다 몸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훈련을 더 많이 하는 발레단"이라고 했다.

안재용은 평범한 발레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성형외과 의사를 꿈꿨다. 영화 ‘백야’ 속 발레리노 마하엘 바리시니코프의 모습에 반해 발레를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2016년 개인 오디션에 합격해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정단원으로 입단했다.

이후론 승승장구 했다. 마이요 예술감독의 ‘한여름 밤의 꿈’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테크닉과 캐릭터 해석 능력을 겸비했다고 인정받았다.

올해 1월 마이요 예술감독의 제안으로 수석무용수로 초고속 승급해 무용계를 놀라게 했다. 마이요 예술감독은 “안재용이 연기하는 방식을 보면 제 작품 속 인물들을 제가 재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발레를 늦게 시작했지만,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한 재용씨는 그 동안 정말 잘해 왔어요. 지난번과 이번 내한공연의 가장 큰 차이는 재용씨의 활약이죠.”

안재용에게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꿈의 발레단이었고, 그런 안재용을 마이요 예술감독은 "내 작품과 사랑에 빠져서, 우리 발레단에서 3년 만에 수석무용수가 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안재용에게 꿈의 발레단이었다. 마이요 예술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릴 때 보고 느낀 강렬한 감정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발레였는데, 한 편의 영화처럼 여러 감정들이 다가왔어요.

발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면 언젠가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가서 꼭 마이요 단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죠. 수석무용수가 되고 나선 단순히 춤을 추는 걸 넘어 인물을 더 깊게 파고들어 더 깊은 감정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1985년 모나코의 카롤린 공녀가 설립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등이 몬테카를로 발레단 부설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출신이다.

마이요 예술감독은 40편 이상의 발레 작품을 창작하며 발레단을 모던 발레의 중심으로 부상시켰다. ‘신데렐라’에서도 그 파격이 이어진다. 맨발의 신데렐라는 자유와 소박함, 격식에서 벗어난 본질을 상징한다.

마이요 예술감독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황금마차나 벽난로는 없지만, 몸으로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용에게 ‘신데렐라’는 고국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원작 동화와 달리 신데렐라의 부모가 신데렐라와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작품에서 안재용은 신데렐라의 아빠 역할을 맡는다.

그는 “어린 꼬마 관객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공연을 보고 나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며 “무용으로 표현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이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실과 무대의 경계를 오가는 컨템포러리 발레 ‘신데렐라’는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극장 오페라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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