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019 팬레터 공연사진_라이브(주) 제공

[무비톡 김상민 기자] 11월 7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한 창작뮤지컬 ‘팬레터’의 한 장면. 작품 배경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이다. 작가지망생 정세훈은 문인 모임 ‘칠인회’에서 작가들의 조수 역할을 한다.

그는 칠인회 멤버인 소설가 김해진의 팬이다. 정세훈은 김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내며 본명 대신 히카루라는 필명을 쓴다. 김해진은 히카루와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히카루가 여성이라고 착각한 김해진은 히카루의 감수성에 반해 그를 사랑하게 된다.

정세훈은 히카루가 가짜였다는 걸 알게 되면 김해진이 분노할 것이라는 생각에 거짓말을 거듭한다. ‘팬레터’는 뮤지컬이라고 꼭 흥겨운 노래와 춤만 있는 것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손편지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소재를 통해 전하는 애틋한 사랑이 무척 감성적이다. 

사진= 2019 팬레터 공연사진_라이브(주) 제공

예술과 사랑 앞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물들이 켜켜이 쌓아올리는 감정에 관객은 어느 새 우수에 젖어든다. 작가 한재은, 작곡가 박현숙이 만든 ‘팬레터’는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고 공연제작사 라이브가 주관하는 우수 크리에이터 발굴 지원사업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1 선정작이다.

2016년 초연에 이어 2017년 재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공연은 2년 만의 재공연은 개막 당일 전석매진을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무대를 관통하는 주제는 '이상과 현실'이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살펴봐도 자신의 '이상'과 '현실'에 대해 고뇌하는 태도를 보인다.

칠인회는 일관되게 '순수예술'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사상 검열과 탄압등에 대처해야 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으며, 주인공 중 한명인 김해진은 문학이라는 자신의 사명과도 같은 길과 히카루라는 동료 속에서 고뇌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진= 2019 팬레터 공연사진_라이브(주) 제공

세훈 역시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자 하는 욕망과 동시에 그의 건강과 안위를 생각하는 현실적인 모습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무대는 이러한 '이상과 현실'에 대한 많은 고뇌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음악은 감성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잔잔한 선율로 이뤄져 있다.

귀를 사로잡는 킬링 넘버들은 아니지만 인물의 갈등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극장 음향 시스템의 문제로 음악이 다소 빈약하게 들리는 점이 아쉽다. 극의 마지막부분의 명대사인 "나의 봄을 이제는 보낸다..."라는 대사는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사진= 2019 팬레터 공연사진_라이브(주) 제공

리뷰에서 다루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는 '나의 뜻을 정하고, 그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이상의 실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언가를 봄에 심고 잘 가꾸어야 가을에 수확을 하듯, 문학의 부흥이라는 가을의 모습을 향해 고민을 끝내고 무대는 한옥을 형상화해 꾸몄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세트를 적절하게 이동하면서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무대 뒤편에서는 그림자 조명을 활용한 이색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비밀을 간직한 히카루를 그림자로 표현함으로써 캐릭터의 신비로움을 극대화하는, ‘팬레터’에서 빠질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다.

스토리도 무척 감성적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해진, 그런 해진을 선망하면서 동시에 걱정하는 세훈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일제의 억압에 맞서 ‘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칠인회’의 모습도 당시 시대상을 돌아보게 만든다.일제강점기를 감성적인 이야기의 무대로 활용한 점도 관객 입장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다.

사진=2019 팬레터 공연사진_라이브(주) 제공

이번 공연은 초연과 재연에서 흥행을 견인했던 배우들과 새로운 배우들이 함께 무대를 꾸민다. 해진 역에 김재범·김종구·김경수·이규형, 세훈 역에 이용규·백형훈·문성일·윤소호, 히카루 역에 소정화·김히어라·김수연이 출연한다. 이들 외에도 박정표·정민·김지휘(이윤 역), 양승리·임별(이태준 역), 이승현·장민수(김수남 역), 권동호·안창용(김환태 역) 등이 호흡을 함께 맞춘다. 2월 20일까지 공연한다.

사진= 2019 팬레터 공연사진_라이브(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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