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평범한 관객의 눈으로 본 '작은 아씨들' 후기
- 세밀하게 풀어낸 여성들 이야기, 하지만 '용두사미'급 결말은 아쉬워

스틸 컷= 작은 아씨들

[무비톡 김관람 프리랜서] ‘작은 아씨들’개봉 전 나는 이미 수십 년 전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다. '꼭 읽어야할 고전 명작 추천도서'에 있던 '아씨들'은 <빨간 머리 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로선 꿈도 못 꿀 단독주택에 살지만 가난한, 그렇지만 마음이 따뜻한 네 자매가 앞치마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을 것 같은, 그 당시에 내가 상상했던 미국 가정집 모습이었다.

다만 조금 더 어두운 듯한 <빨간 머리 앤>이었다. 가난했지만 현실의 가난과 다른, 어쩐지 희망과 밝은 기운이 느껴졌던 책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읽어본 ‘작은 아씨들’은 생각보다 심오하고 어두운 구석이 많았다.

각기 다른 나이대의 네 자매가 그 나이대의 여성으로서 충분히 고뇌할 수 있는 심리를 따뜻한 언어 속에서 스믈스믈 녹여내고 있었다. 이번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서는 그런 느낌을 충분히 살렸다. 다만 영화는 원작 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그려냄과 동시에 7년 후의 미래까지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는 계속 장면 전환을 해가며 바뀌어 가는데, 난 이미 원작의 내용을 잘 알고 있고, 또한 과거와 현재의 조명을 다르게 함으로써 흐름을 따라가는데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유독 두드러진 캐릭터는 둘째 조다. 원작에서는 첫째 메그가 주인공처럼 느껴졌는데, 감독이 그려낸 주인공은 조였고,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틸 컷= 영화 작은 아씨들 속 '조' 역할의 시얼샤 로넌

원작에서도 조는 자매 중에서도 유독 털털하고 활달해 ‘아들’ 역할을 맡아왔고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그런 조의 성격은 이번 영화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 초반에 나는 조가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리라 믿고 흥미진진하게 보았으나, 영화의 결말은 갈수록 실망스러웠다. 또한, 조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결혼’이었다.

‘작은 아씨들’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중반의 미국이다. 여자는 좋은 결혼을 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여겨졌던 시대였다.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은 첫째 ‘메그’, 부자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만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하는 방법이라고 여긴 막내 ‘에이미’, 천성적으로 몹시 내성적이라 결혼은 커녕 남자와 말 섞는 것도 무서워하던 셋째 ‘베스’를 제외하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언제나 둘째 ‘조’였다.

“여자의 행복은 왜 결혼이 결정하는 거죠? 전 독신주의로 살면서 혼자서도 얼마든지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겠어요.” 결혼 잘하라며 잔소리하는 마치 고모에게 조가 한 말이다. 또한 조는 여자주인공은 무조건 결혼으로 끝내라는 출판사 대표에게도 비슷한 말을 한다. 과거 조는 가장 친하게 지냈던 로리의 청혼마저 거절하고 뉴욕으로 떠나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될 듯 안 될 듯 항상 모호했다.

스틸 컷=‘작은 아씨들’한 장면(시얼샤 로넌, 티모시 샬라메)

베스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체념하듯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가장 아끼던 베스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마침내 조는 자신을 지탱하던 꼿꼿한 자존심마저 무너져버리고 외로움에 몸서리친다. 다시 찾은 로리마저 여동생과 약혼해버리고 그런 조를 찾아온 뉴욕에서의 동료 프레드릭. 영화는 마치 조와 프레드릭이 결혼한 것처럼 암시를 하듯 끝났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차피 현재의 얘기는 감독의 창작물이니, 조가 남자와 이어지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게 마무리 지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치 고모가 물려준 어마어마한 저택을 학교로 만들어서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과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은 좋았지만, 영화 내내 이어지던 결혼에 대한 결론이 결국 출판사 대표가 고집하던 대로 이루어진 것 같아 시원치 않은 마무리였다.

조의 지독한 외로움이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심리로 이어지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엔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고독으로 결론을 이어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과거의 조가 메그의 결혼식 전날, 언니를 보낼 수 없다며 자신과 함께 살자고 말할 때 메그가 이런 대사를 한다.

포스터(해외판)=‘작은 아씨들’

“나는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고 그게 내 꿈이야. 아무리 나라도 너와 같은 꿈을 꿀 순 없어 조.” 이 대사가 결국엔 감독이 나 같은 생각을 하는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작은 아씨들’이 시작하기 전, 스크린에는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컷이 한 말이 자막처럼 뜬다.

"현실이 어둡기에 밝은 이야기를 쓴다." 그레타 거윅이 생각하는 밝은 이야기는 극 중 출판사 대표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자주인공은 결혼으로 결말을 내는 이야기일까? ‘작은 아씨들’은 분명 잘 만든 영화다. 시간의 전환이 어색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흘렀으며 캐릭터와 나의 생각이 달라도 납득할 수 있었다. 또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영화 속의 의상들은 너무 흥미로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결론은 무척 아쉬웠다. 영화에서만큼은 내가 원했던 결말을 보고 싶었던 것은 나의 욕심이었을까? 그러나 리뷰를 보면 생각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관객들이 많았다. 그러나 여성의 이야기, 여성 주연의 영화, 여성 감독이 그려낸 이야기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그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포스터= 작은 아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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