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이 가지고 있던 것은 긴 금발의 머리카락만이 아니었다.

CGV에서 재개봉한 디즈니 작품들

지난 2017년 11월 16일부터 26일까지, CGV에서는 미키마우스의 생일을 맞아 디즈니 흥행작들 중 몇 점을 추려 재개봉을 했다. 주로 서울과 경인지역 그리고 평일에 개봉하여 필자가 관람할 수 있었던 작품은 '라푼젤' 한 작품 뿐이었다. 오랜만에 관람한 라푼젤에서 좀 더 세밀한 부분을 엿볼 수 있었다. 

 

1. 왕국 그 자체인 라푼젤

 

라푼젤은 코로나 왕국의 무남독녀 공주로 태어났다. 왕비가 라푼젤을 임신했을 때 지독한 병에 걸려 하마터면 태어나지 못할 뻔 했지만,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한줄기 햇빛이 꽃으로 피어나고, 그 꽃을 달인 물을 마시고 완치된 왕비는 무사히 라푼젤을 출산한다.

꽃의 영향으로 라푼젤은 갈색머리의 부모님과 달리 햇빛을 닮은 금발머리로 태어난다. 몇 년이 지나 열여덟이 된 라푼젤은 항상 같은 보라색 드레스만 입고 등장한다. 디즈니 대표 웜톤 여신(?) 라푼젤에게 굳이 어울리지 않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힌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라푼젤이 그 자체로 왕국의 상징임을 의미한다.

 

코로나 왕국의 국기다. 라푼젤은 자신이 잃어버린 공주인 줄도 모른 채 한 소년에게서 국기를 사들고는 좋아한다. 그런데 이 국기, 어쩐지 라푼젤의 모습과 닮아보인다.

빛나는 황금색 태양, 보라색 배경... 영락없이 라푼젤을 함축시켜 놓았다. 어쩌면 라푼젤은 스스로 보라색 드레스를 골라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라푼젤은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태양의 모습을 집 안 곳곳에 그려놓았으니까. 그리고 언젠간 잃어버린 공주가 돌아올 것이라는 국민들의 '꿈'에 라푼젤은 정말 꿈처럼 귀환했다. 

 라푼젤은 태양의 힘을 담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유진이 머리를 잘랐어도 그 안에 있는 태양의 힘은 없어지지 않았다. 금발머리칼이든 갈색머리칼이든, 라푼젤은 그 자체가 코로나 왕국의 태양이며, 왕국 그 자체다.

 

2. 부모의 간절한 염원

라푼젤의 평생 소원은 자신의 생일에 나타나는 풍등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었다. 라푼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날렸던 풍등은, 라푼젤이 사라진 뒤에는 그녀의 귀환을 간절히 바라는 부모와 백성들의 마음을 상징한다.

이 풍등들은 왕과 왕비가 처음으로 날리기 시작하면, 모든 백성들이 이어서 날린다. 어김없이 찾아온 열여덟 번째 생일날, 라푼젤의 부모는 침울한 마음으로 태양이 그려진 풍등을 날린다. 하지만 백성들이 날리는 풍등은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거나, 아주 자잘한 무늬만 있다. 

이 사진을 보면 다른 풍등들은 민무늬임을 알 수 있다. 태양이 그려진 풍등은 멀리 호숫가에 있는 라푼젤에게 날아가 닿는다. 딸이 보고 싶은 부모의 간절한 염원은 풍등을 타고 라푼젤에게 닿았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놓칠 수 있는 세밀한 포인트다. 

 

3. 디즈니 역사상 극악의 악인, 고델

라푼젤을 납치하여 18년동안 감금시킨 장본인이다. 이 고델이라는 캐릭터는 이전의 디즈니 영화에 나왔던 악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전의 디즈니 악당 캐릭터들이 다소 평면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이 캐릭터는 상당히 입체적이다.

라푼젤 후기에도 고델은 정말 악인인가? 하는 글들이 꽤 많다. 악인 같지 않은 악인. 이것이 진정한 악당이다. 고델이 그렇게까지 악인이라고 하지 않는 이들의 주장은 어쨌든 라푼젤에게 뜨개질, 도예, 요리, 화술 등등을 가르치고 선물도 주고 키워왔으며 사랑도 주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필자는 고델이 라푼젤에게 사랑을 베푸는 척을 하면서, 라푼젤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감금시켰다고 생각한다. 정말 손발 꽁꽁 묶어 감금하고 치유의 노래만 불렀다면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진 라푼젤은 틈틈이 탈출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고델은 라푼젤에게 딱 탑 면적 만큼의 자유만 허락하지만, 라푼젤은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고 그것이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초반, 라푼젤은 어떻게든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가 보려고 하는 것에 비해 고델은 라푼젤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심지어 자존감을 깎아먹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 어투에 충분히 세뇌당했을 라푼젤은 후에도 어머니를 두려워하는 듯한 불안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라푼젤 자체가 아니라 라푼젤의 머리카락에 볼을 부비고 입을 맞추는 등 라푼젤이 아니라 그녀의 '머리카락'을 사랑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라푼젤의 손발을 묶고 영원히 노예가 되라는 등 키워준 어미(?)로서의 애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후에 고델이 탑 밖으로 추락할 때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 라푼젤과는 정말 상반된 캐릭터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위해 다른 사람의 꿈을 철저히 짓밟고, 그것이 옳은 일인 것 마냥 세뇌시켰다. 종국에서는 그녀의 꿈과는 완전 반대인, 노화 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상당히 영리하고 이기적인 악역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내가 지난 일요일, CGV 인천점에서 라푼젤을 관람하고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이다. 단순히 풍등 장면의 웅장함을 보고 싶어서 찾았지만, 큰 스크린으로 보니 놓쳤던 것들이 보여 마치 새로운 작품을 보는 기분이었다. 디즈니의 오랜 팬으로서, CGV의 이번 이벤트는 상당히 반가웠다. 많은 작품들을 다시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후에도 이런 이벤트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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