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뮤지컬 '마리 퀴리' 대학로에 입성한 옥주현
[공연 리뷰] 뮤지컬 '마리 퀴리' 대학로에 입성한 옥주현
  • 김상민 기자
  • 승인 2020.09.1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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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제공 라이브(주) 

“참을 수 없이 궁금하니까요. 그런데 그걸 실험이라고, 과학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안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과학을 하는 이유를 묻는 피에르에게 마리는 주저없이 답한다.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 탐구 정신으로 성별과 이민자의 벽을 넘어 세상을 바꾼 과학자가 된 마리 퀴리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벨과학상 2회 수상,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여성 최초 물리학 박사, 방사선 연구의 어머니 등 다양한 수식어가 마리 퀴리 뒤에 따라붙는다. 어린 시절 ‘퀴리 부인’, ‘퀴리 부부’라는 제목의 위인전을 읽어보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만큼 마리 퀴리의 업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마리 퀴리'가 지난 2017년 창작뮤지컬 공모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2의 최종 선정작에 오른 뒤 2018년 12월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현재 뜨거운 화제 속 상연중이다. 

초연 당시 여성 서사극의 저력을 증명한 뮤지컬 '마리 퀴리'는 여성 그리고 이민자라는 사회적 편견 속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마리 퀴리'의 삶과 '라듐'의 양면성을 인지하며 고뇌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두려움에 맞선 여성 과학자의 성장과 극복에 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담아냈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주인공 '마리 퀴리'는 2018년 BBC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꼽힌 인물로, 새로운 방사성 원소 폴로늄(Polonium)과 라듐(Radium)을 발견해 1903년 여성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이다. 

폴란드 출신 여자가 남성 중심, 또 이민자를 배척하는 사회에서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고, 라듐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모습을 담는다. 퀴리 부인이라는 호칭 이전에 과학자 마리 퀴리로서의 삶에 비중을 뒀다. 유년 시절, 가정환경, 러브스토리 등도 배제했다. 

제공 라이브(주)
포스터= 제공 라이브(주)

마리 퀴리의 위대함이나 업적만을 강조한 작품은 아니다. 라듐의 양면성에 고뇌하고 갈등을 겪는 과정을 집중 조명했다. 암을 치료하는 등 못하는 일이 없는 듯한 획기적인 원소인 라듐은 알고 보니 위험성도 컸다. 마리 퀴리는 이에 좌절했지만 라듐의 두 얼굴을 인정하고 세상에 알린다.

여성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렸다. 위인전에는 마리 퀴리가 가정주부, 엄마로서도 완벽한 여성으로 묘사하지만 뮤지컬은 오롯이 과학자로서 마리 퀴리의 서사를 담아낸다. 가상 인물인 여직공 안느 코발스키는 마리를 보며 희망을 느끼는 여성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사회적 약자지만 마리와 동등한 관계로서 연대를 완성한다. 당시 기업은 라듐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직공들은 아무런 보호도 경고도 받지 못한 채 라듐에 무차별로 노출돼 서서히 죽어갔다. 안느는 “나도 농장주 세 번째 부인이 아닌, 마리처럼 멋지게 살 것”이라고 말하는 진취적인 여성이다.

2막에서는 라듐의 폐해를 고발하며 울부짖는다. 라듐이 없어지면 자신의 존재가 쓸모없어질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하는 마리에게는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위로하고 응원한다. 마리의 지지자이면서도 라듐의 위험성을 애써 부인하는 마리의 대척점에 서 마리의 사명감을 일깨운다.

동료 과학자이자 남편으로 마리의 연구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피에르 퀴리, 라듐을 이용해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루벤과의 관계도 느슨하지 않게 담았다. 귀에 한 번에 감기는 넘버는 적지만 7인조 라이브 밴드의 연주 속에 다양한 넘버들이 극에 녹아든다.

라듐의 초록색을 이용한 조명도 눈에 띈다. “빠른 시간 내에 소르본 대학에 여자 화장실이 생길 것”, “한 번만 더 미스 폴란드라고 부르면 미스터 프랑스 123으로 부르겠다”고 말하는 당당함, 생일에도 라듐 연구에 매진하는 열정적인 면모를 그려낸다. 라듐의 어두운 면에 혼란스러워하고 갈등하는 복합적인 감정도 소화한다.

포스터= 제공 라이브(주)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안느 역의 김히어라와의 ‘여여 케미’도 관전 포인트다. 뮤지컬 여제 옥주현이 창작뮤지컬 ‘마리 퀴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뮤지컬 ‘마리 퀴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꼽히는 마리 퀴리의 대표적 연구 업적인 라듐의 발견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좌절에 맞서는 인간의 숭고한 용기와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옥주현은 ‘마리 퀴리’에서 ‘라듐’을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하며 저명한 과학자가 되지만 그 유해성을 알게 된 후 고뇌하는 마리 퀴리 역을 맡았다. 옥주현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 과학자로 꼽히는 실존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대학로에 입성한 옥주현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마리 퀴리의 자주적인 면모를 잘 나타낸다. 재산, 명예에 욕심내지 않고 과학자 본연의 길을 걷는 마리 퀴리에 초점을 둬 연기한다. 뮤지컬 ‘마리 퀴리’ 첫 연습에 참여한 옥주현 배우는 작품의 서사는 물론 뮤지컬 ‘마리 퀴리’의 넘버들을 사전에 모두 숙지해 오는 열정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옥주현은 자신의 SNS에 “한 인간으로써 차별받는 여성으로써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의지의 초인으로 살게 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며 “오늘날 우리가 방사선치료를 할 수 있는건 우리가 알고 있는 퀴리부인, 그녀가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저에게도 여러분들께도 인생에서 잊지 못할 큰 감동을 안겨줄 작품이라고 자부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마리 퀴리’에 대한 옥주현의 애정이 남다른 이유는 그의 필모그래피 때문. 옥주현은 1998년 걸그룹 핑클의 메인보컬로 데뷔했다. 2002년 이후 솔로 활동을 펼치다 2005년 뮤지컬 ‘아이다’의 아이다 역으로 뮤지컬에 성공적으로 데뷔 했다.

이후 뮤지컬 ‘시카고’, ‘몬테크리스토’, ‘아가씨와 건달들’, ‘엘리자벳’, ‘레베카’, ‘위키드’, ‘스위니토드’ 등에 출연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배우로 우뚝 섰다. 강력한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 옥주현은 ‘마리 퀴리’의 타이틀롤을 맡아 앞장서 작품 홍보에 나서는 등 강한 책임감으로 극을 이끌고 있다.

제공 라이브(주)
이미지= 제공 라이브(주)

‘뮤지컬 여제’ 옥주현과 인간승리의 상징 ‘마리 퀴리’의 만남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기차역에서 주기율표와 흙주머니를 주고받던 첫 만남. ‘라듐’으로 인한 갈등의 시간을 지나 대치되는 두 계단에 나란히 올라서는 장면까지. 두 사람의 서사는 빈틈없이 연결되며 마지막까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힌다.

이전보다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화려한 군무는 없다. 의상 또한 대부분 한 벌로 유지된다. 작은 실험실과 공장, 기차역이 전부인 배경에 마리와 안느의 삶이 묵직하게 채워진다.이는 두 사람의 관계에 몰입감을 더한다. 애초에 큰 규모와 화려한 장치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다.

두 사람의 넘버가 무대에 잔잔히 울려 퍼지면 관객석 곳곳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공감과 연대만으로 뜨거운 전율에 휩싸인다. 뮤지컬 ‘마리 퀴리’가 지닌 진실된 힘이자 메시지다. 무대 위 마리와 안느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무대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살피게 한다.

여전히 편견과 차별의 벽에서 이름을 지우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찾아 불러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한다. 마리 역에는 초창기 멤버인 김소향과 새롭게 합류한 옥주현과 나눠 맡았다. 김히어라, 이봄소리가 지난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안느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9월 27일까지.

제공 라이브(주)
포스터= 제공 라이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