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망친 여자> 지질한 모습, 위선, 속물성, 이중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리뷰] <도망친 여자> 지질한 모습, 위선, 속물성, 이중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 무비톡
  • 승인 2020.09.1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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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컷= '도망친 여자' © 뉴스1
스틸 컷= '도망친 여자' © 뉴스1

올해 열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의 24번째 장편영화 '도망친 여자'가 국내에서 베일을 벗었다. '홍상수 스타일'로 굳어진 연출은 여전히 반복되지만 더 단순해진 구성에서 무심하게 전달된 인물들의 대화는 그 너머의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 페르소나 김민희는 단발로 머리를 자른 채 등장, 변함없는 호흡을 자랑했다.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국내에 처음 공개된 '도망친 여자'는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던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두 번의 약속된 만남과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과거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감희(김민희 분)를 따라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홍상수 감독이 배우 김민희와 7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서영화 송선미 김새벽 권해효 등이 함께 출연한다. 영화는 영순(서영화 분)의 집을 찾아온 감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감희와 영순은 오랜만에 만나 근황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영순이 함께 살고 있는 영지(이은미 분)와도 먹고 마시고 대화한다.

이후 감희는 수영(송선미 분)의 집에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친구 우진(김새벽 분)을 우연히 만나 그간의 오해를 풀게 된다. 서로의 남편 이야기도 하는 등 자신들의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홍상수만의 전형적인 화법, 스타일은 이번에도 반복됐다.

스틸 컷= '도망친 여자' © 뉴스1
스틸 컷= '도망친 여자' © 뉴스1

일상성을 녹인 대화식 구성, 중심 주제를 알 수 없는 사소한 이야기로 진행되는 전개, 감정이 모호한 연극적인 어색한 말투, 직설적인 화법은 여전하다. 고정된 카메라에서 장면 전환 없이 이어지는 롱테이크샷은 인물들의 대화와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든다. 절제되고 단순화된 화면의 미덕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감희가 만나는 세 사람과의 대화에서 유독 반복되는,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감희는 각각 세 사람에게 "우린 매일 붙어 있다" "5년 동안 한 번도 떨어져 있어본 적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는 말을 동일하게 전한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된 연출로 완성되는 예술인 만큼, 감희 역의 김민희가 전달하는 대사와 홍상수 감독, 김민희의 현 상황이 겹쳐보일 수밖에 없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묘미는 인물들이 쏟아내는 대사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배우들이 던진 대사 뒤의 미묘한 감정을 따라가는 묘미 또한 흥미롭다.

5년 내내 한번도 떨어져본 적 없지만 그렇게 붙어있는데도 잘 맞는 것 같다는 감희의 말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거나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응수하는 여성들의 반응에서 느껴지는 인물들간의 이질감도 드러난다. 대화에서 유일하게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포인트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위선에 대한 인간의 본연의 모습들도 언급된다. 감희는 영순에게 "사람들 이제 안 만나고 싶어"라며 "만나면 안 해도 되는 말, 하기 싫은 것 해야 되고 지겨워"라고 말한다. 우진은 감희에게 TV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등 유명해진 남편 정선생에 대해 "난 좀 이상한 것 같아" "같은 얘기 여러 번 듣고 있는 게 너무 힘들어, 어떻게 진심을 유지할 수 있겠어" "바보 짓 같아"라고 거침없이 꼬집는다.

스틸 컷= '도망친 여자' © 뉴스1
스틸 컷= '도망친 여자' © 뉴스1

적나라한 이중성,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들춰내는 대사들로 자아비판도 드러낸다. 이번에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먹물' 들어간 남자들이 등장한다. 감희의 남편은 번역가로 소개되고, 수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시인과 우진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정선생도 소위 지식인이다.

시인(하성국 분)과 정선생(권해효 분), 그 인물들을 통해 이들의 지질한 모습과 위선, 속물성, 이중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 모두 등만 보인 채 등장하는데 여성들의 직설적이고 단호한 화법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도 웃음 포인트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무의미했던 대사로 가득했던 서사 속에 지질한 남성 캐릭터들이 엮이면서, 관객들은 홍상수 감독의 자아비판적 대사가 주는 의미를 찾고픈 지적 호기심을 갖게 된다. '도망친 여자'라는 제목의 의미는 홍상수 감독 스스로도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2월 개최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간담회 당시 제목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정의내리고 싶지 않다"며 "결정할 수 있었지만 그 전에 멈췄고, 이 영화를 관객이 느끼길 바란다"고 답했다. 또 촬영 방식에 대해서는 "완성된 내러티브나 구조에 대해 아이디어를 먼저 내지 않는다"며

"내가 좋아하는 모티브로 시작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의 모든 여자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친다"며 "수감되지 않으려 하거나 불만족으로부터 도망친다"고 덧붙였다. 오는 17일 개봉.(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