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터마이어 연출은 14일 LG아트센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리처드 3세를 '악의 화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독재자'로 그리는데, 나는 '엔터테인먼트적인 면모'를 갖고 있는 '사악한 광대'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 3세(1452~1485)는 '꼽추왕'으로 통했다. 뒤틀린 몸으로태어난 그는 뛰어난 언변과 권모술수, 유머감각, 리더십으로 경쟁구도의 친족과 가신들을 모두 숙청하고 권력의 중심에 선 희대의 인물이다. 

1455~1485년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왕권을 놓고 벌인 영국의 내란 '장미전쟁'의 북새통에서 왕위에 올랐다. 1483년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런던탑에 가둬 죽인 후 즉위했으나 2년 만에 헨리 백작에게 패해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이 됐다. 

리처드 3세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입체적인 성격은 영국 문호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숱한 작가와 예술 장르에 영감을 줬다. 주로 사이코틱한 성격이 강조돼 왔다. 승자의 시각으로 기록된 역사에서 패배자인 리처드 3세에게 덧씌워진 악한 이미지라는 의견이 최근 학계에서 나오기도 했다. 

'전통을 뒤흔드는 파격의 연출가'로 불리는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 토마스 오스터마이어(50) 예술감독이 해석하는 리처드 3세는 좀 더 입체적이다.

그와 그가 이끄는 샤우뷔네 극단이  '리처드 3세'는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가장 야심차고 매력적인 악의 화신 '리처드 3세'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리처드 3세의 광대 면모를 오스터마이어는 ‘리처드 3세’가 처음 공연된 영국 극장의 형태에서도 찾았다.

“극장은 원형형태로, 관객들이 무대를 둘러싸 무대의 일부가 됩니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읊조리는 독백도 관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유도하는 의사소통이에요.”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하는 무대도 반원형태로 관객들이 무대와 가깝게 느끼게 된다.

오스터마이어는 주연배우인 라르스 아이딩어(42)에게 굳은 신뢰를 보냈다. 샤우뷔네 베를린 단원인 아이딩어와 ‘햄릿’을 함께 한 뒤 오스터마이어는 그에게 ‘리처드 3세’를 맡기기로 결심했다. 영어 원문으로 쓰인 희곡을 독일어 산문으로 바꾸었고,

한국 관객들은 이를 자막을 통해 또 한 번 번역된 언어로 접하게 된다. 오스터마이어는 “한 작품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관객에게 큰 장벽을 야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이딩어는 다른 언어로도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을 유혹할 수 있는 훌륭한 배우”라고 강조했다.

오스터마이어 연출은 "리처드 3세의 사악한 면모에 관객들이 유혹당하면서 그의 공범자가 되기를 바랐다"고 털어놓았다. "동시에 관객들이 리처드 3세의 사악함을 스스로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새로운 잠재력과 가능성을 찾게 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권력의 횡포라는 점에서 리처드 3세에게서 도널드 트럼프(72)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오스터마이어 "누군가는 현 세계는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장악하고 있는 험악한 사회라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진실의 일부"라며 정치적으로 한정된 해석을 경계했다.

"단순히 독재자가 어떻게 권력을 쟁취했는가를 고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최선과 최악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인물의 내면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스터마이어 연출가의 내한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그는 지난 2005년 ‘인형의집-노라’, 2010년 ‘햄릿’, 2016년 ‘민중의적’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 바 있으며 이번에 선보이는 ‘리처드3세’는 한국에서 선보이는 네 번째 작품이다.

연극 '리처드 3세'는 휴식시간 없이 2시 30분간 진행되며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오스터마이어는 한국 공연을 마친 후 프랑스 파리로 가서 극단 코메디프랑세스(Comedie-Francaise)와의 협업으로 셰익스피어의 '십이야' 제작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무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