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부로 문을 닫는 모양이다. 근래엔 찾지 못했고, 수년전 '명왕성' 등의 독립 영화를 보러 몇 번 발걸음을 한 것이 전부였지만 막상 이별을 고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지나간 추억의 한 페이지를 도려내듯 안타깝고 씁쓸한 감정이 몰려온다.

아주 어렸을 적엔 서울극장과 인연을 맺기가 참 힘들었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로보트 태권V' 를 대한극장 에서 볼 때, 날개로 동시 상영하던, 당시 세기극장 이라는 이름의 이곳을 굳이 찾을 이유가 없었고

79년 합동영화사가 이곳을 인수하여 서울극장으로 탈바꿈한 이후, 마침 통금해제 를 기화로 추진되기 시작한 심야극장 바람은 더더욱 접근 불가의 극장으로 미성년들에게 공고히 장벽을 치는 듯 했다.

애마부인 시리즈.... 색깔있는 남자...여자 vs 여자 등 포스터만 봐도 살색 냄새 그득한 성애물을 많이 취급하고, 외화 역시도 리처드기어 주연의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등 홍등가의 불빛으로 제법 물들었던 터라, 중학생이었던 나에겐 그저 극장 간판을 바라보며 손가락만 빠는 야릇한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랬던 서울극장이 어린 친구들에게 급격히 간격을 좁힌 계기가 85년 '인디아나 존스' (정확히 시리즈 2편 - 죽음의 사원)의 개봉이었다. 봄부터 늦여름까지 이어진 장기 흥행은 학생들의 여름 방학을 장악했고, 가득이나 푹푹 찌는 더위마저 집어 삼켰다.

세기극장 시절엔 대한극장의 날개 상영관으로 기능하는 불명예가 자리했다면, 85년 여름엔 날개로 받아들여 인디아나 존스 를 동시 개봉한 영등포의 복병 연흥극장을 근 3배차의 스코어로 따돌리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게 피카디리, 단성사 와 함께 종로 3가의 3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서울극장은 89년엔 우리나라 최초 복합 컴플렉스 극장의 이름으로 거듭 태어난다.

7월 29일, 서울 시네마 타운 이라는 거창한 극장명으로, 1관은 깐느극장 이라는 이름으로 이장호 감독의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를 2관은 아카데미극장 이라는 이름으로 '메이저리그' 라는 헐리우드 외화를 3관엔 베니스극장 이란 이름으로 당시 넘쳐나는 인기에 비해 서울 변두리 극장을 맴돌고 있던 주윤발을 종로 한복판에 입성시킨다.

그 유명한 '첩혈쌍웅' 으로... 그렇게 컨플렉스 극장의 시대가 태동하고 자그마한 촌극도 연출된다. 당시 3관 베니스극장은 500석 규모로 상대적으로 작았는데, 여기에 휘발성 가득한 '첩혈쌍웅' 을 배정한 것이 실수이자 화근이었다.

결국 쏟아지는 관객을 주체 못하고 일주일 후 첩혈쌍웅은 좌석 수 많은 1관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것을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렇게 이후에도 서울극장과는 재미있는 인연이 이어졌다.

98년 1월인가... 쟝 삐에르 쥬네 감독의 '에이리언 4' 를 볼 때, 상영종료 5분 정도를 남기고 그만 사운드가 먹통이 되었다. 그 적막 속에서 영화 상영은 끝이 났다. 당연히 관객들은 동요하고 극장 로비에서 농성? 하게 되었다.

그 날 처음으로 다급히 현장으로 달려온 곽정환 회장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결국 관객 모두는 입장료의 두 배를 환불받는 행운? 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현장 영화인으로서 故 김기덕 감독 의 '파란대문' 에 참여할 땐, 극장 개봉 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프리패스 권한이 주어졌었다.

어느덧 8관까지 확장된 그곳이 잠시 시한부 놀이터? 가 돼주기도 했었다. 옛 기억을 흐뭇하게 마주보다 보니 서울극장에 더욱 애잔한 감정이 스미는 것 같다. 예전엔 극장을 찾을 때 그것은 분명 영화를 보러가는 행위였지만, 거기엔 극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함께 있었다. 분명히 그랬다.

극장이 달려온 역사를 함께하는 호흡. 그 좌석의 냄새. 복도의 내음, 대한극장과 벤허. 중앙극장의 사관과 신사. 이것이 동의어라 불린다면 서울극장은 어떤 영화와 함께 기억되는 것이 좋을까?

애마부인 도 나쁘진 않겠으나 ㅎ 그래도....'인디아나존스' '대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강시선생' 등이 친숙하고 좋지 않을까나. 아무렴 어떨까. 서울극장은 분명 영화와 함께 극장 구경도 같이했던 곳이었다. 40년 역사의 뒤안길로 서울극장을 보내면서, 서울극장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한 씨네필의 작별인사를 건넨다. '아듀! 서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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