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스틸 컷= 미나리
스틸 컷= 미나리

차 안에서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을 좋아한다. 그들이 싸우던 즐겁던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현실을 도피한 채 극장 의자에서 어떤 세상으로든 떠나고 싶은 나의 심정과도 닮아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암수 구분하던 일로 돈을 벌어오던 부부, 남편은 아칸소라는 시골 마을에 바퀴 달린 컨테이너 박스로 가족들을 데려온다. 이곳에서 가든 아니 농장을 만들 거라고 아빠도 뭔가를 해내는 것을 보여줄 거라고 그렇지만 아직 그는 병아리 똥꼬를 보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남편은 아들에게 버려지는 수컷 병아리들에 빗대어 쓸모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으로 태어나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책임. 그 책임이라는 것이 단순히 가족을 위한 희생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공이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 등이 뒤엉킨 자아실현 욕구에 가까우니까 아내는 이제부터는 자신이 이 가족을 책임질 거라고 말한다. 현실적인 일보다 성패가 갈리는 사업을 벌이는 남편이 어쩌면 못 미더워서 현실을 직시하고 순응하려는 아내와 도전하려는 남편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을 것이다.

농사는 도박과도 같은 성패를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한탕주의 사업이 아닌 성실한 땀과 수고에 환경이나 운이 따라줘야 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그의 수고를 안다. 밭을 갈고 심고 키우고 열매 맺는 일은 한 인간이 태어나 자라고 짝을 맺고 자식을 키우는 인간의 생과 맞닿아있다는 것을, 농장으로 성공하겠다는 남편은 꿈을 꾸고 아들의 심장병이 걱정인 아내는 꿈을 지운다.

태풍이 지나가는 밤 불안에 떠는 아내에게 남편은 예보를 보면 대처할 수 있다고 안심시키지만 사고방식이 다른 두 사람은 이 일로 그동안 쌓아왔던 불만들을 폭풍처럼 쏟아낸다. 아픈 아이에게 기도를 강요하며 신앙에 의지하는 아내와 보이는 뱀보다 숨어있는 것들이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할머니 사이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얼마나 믿으며 사는지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아들에게 뛰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지만 정작 아들은 숲속 냇가에서 미나리를 키우는 할머니를 따라다니고 도망 다니다 건강해졌다. 기적은 믿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있는 것 때로는 뛰지마 가 아닌 뛰어라가 정답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어린 딸이 짊어졌을 무게가 느껴졌다 아픈 동생 돌보랴 자유로운 할머니를 돌보랴 하루걸러 싸우는 부모님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감정은 꾹꾹 눌러 담은 채 마음만 성장하는 소녀가 보던 그 시절은 또 다르겠지!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므로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주민을 본다.

교회 아이들마저 비웃는 그의 믿음은 과연 비웃을만한 크기일까? 아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한 남편의 바람 아니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한 아내의 바람이 그의 신앙보다 진실할까 문득 신앙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인지 우리는 묻게 된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자라나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먹는 김치도 되고 약도 되는 풀이라고 할머니는 미나리 예찬을 한다. 물이 많은 곳이라면 손 타지 않아도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우리도 어디서든 잘 자라고 살아낼 수 있을까?

주말 아침 서랍을 열다가 다리를 다친 손주를 치료해 주던 할머니는 너는 약하고 아픈 아이가 아닌 스트롱 보이라고 자신이 본 힘센 소년 중에 가장 센 소년이라고 말해준다 이때부터 아이는 할머니에게 마음을 연다.

모두가 자신을 약하게 바라봐도 믿어주고 알아주는 가장 큰 존재 어쩌면 소년에게 보이지 않는 신보다 보이는 할머니의 존재가 신이 되지 않았을까?

소년은 엄마의 바람대로 병을 낫기 위해 천국을 보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며 그렇지만 자기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할머니에게 고백한다. 할머니는 소년을 끌어안고 누가 감히 내 손주를 데려 가냐고 외친다. 핏줄은 뜨겁다.

할머니를 낯설어하고 불편해하고 밀어내던 손주들은 어느새 할머니답지 않은 할머니를 친구처럼 가족처럼 여기게 되지만 뇌졸중이 찾아와 손주처럼 이불에 실례를 하게 된다 말을 더듬고 팔다리가 자유롭지 않게 되자 아내는 할머니의 병 때문에라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려고 하고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누구와 함께 살지 고민한다.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도시의 병원에서 아들의 심장은 기적처럼 건강해졌다는 결과를 받고 남편은 근처 한인마트에 자신이 기른 농작물의 납품까지 약속받는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됐다며 같이 잘 살자는 남편의 기대와는 달리 아내는 남편의 한결같지 않은 태도에 지쳤다며 이게 서로를 구하는 거냐며 그만하자고 하고 그 시각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농장 근처 쓰레기를 주워 태우다가 불씨가 풀밭으로 옮겨 붙는 바람에 수확물로 가득 찬 창고는 불길에 휩싸인다.

뒤늦게 도착한 가족은 불타는 창고로 달려가서 수확물을 구하려다가 결국 서로만 겨우 구하게 된다. 할머니는 아픈 자신도 짐 같고 농작물을 다 태워먹은 미안함에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어디로든 발길을 돌리고 손주는 그런 할머니를 따라가 붙잡으며 집으로 가자고 말한다.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를 구원하는 인연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서로를 잃지 않게 된 가족 전화위복이야말로 이런 것일까? 다음날 남편은 아들과 함께 미나리가 있는 물가를 찾는다. 결국 누구의 손길 없이도 잘 자라는 미나리를 희망처럼 뜯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요소는 다섯 가지다. 시나리오, 미술, 음악, 배우, 연출, 이것들이 비빔밥처럼 적절한 균형으로 맛을 내는 것이다. 미나리는 군더더기 없는 대사와 메타포 그리고 가난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올만한 장면들이 숨어있다.

특히 음악은 컨트리 하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을 주며 애잔하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몽환적이게 전해준다. 1980년대 배경의 미술이며 소품도 좋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연기를 하는 배우들도 그리고 톤 앤 매너가 쨍하면서도 따스한 게 봄여름의 냄새를 그대로 전했고 목가적인 미장센도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나는 곧 이 영화를 다시 볼 것만 같다.

포스터= 미나리
포스터=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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