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해외포스터= 암살
해외포스터= 암살

조선 땅이 일본의 무력에 의하여 강제로 병합된 지 얼마 후 일단의 독립투사들이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조선총독의 암살에 나섰으나 미수에 그치고 만다. 이처럼 영화 <암살>은 시작하기가 무섭게 암살작전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안타깝게도 총독 살해시도는 미수에 그치고 만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때는 1933년 친일파 암살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배후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김홍파) 선생과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조승우)이다.

대한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역사적 인물 두 사람이 실명으로 등장함으로써 영화는 관객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준다. 백범과 약산 두 사람은 상해에서 은밀하게 회동을 갖고 경무국 대장인 염석진(이정재)으로 하여금 암살작전에 투입할 대원들을 물색하게 한다.

그리하여 최종 선발된 대원은 세 명인데, 대한독립군 소속의 일급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지금은 백수로 전락한 일명 ‘속사포’(조진웅), 그리고 폭발물 전문가인 황덕삼(최덕문)이 그들이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감방에 갇혀 있다가 석방 혹은 탈옥을 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들이 제거해야 할 목표는 두 사람인데, 친일파 사업가 강인국(이경영)과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심철종)가 그 장본인들이다.

강인국은 데라우치 총독 암살시도 때 그와 동석했다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온갖 특혜를 받아 출세를 한 전형적인 친일파이다. 카와구치 마모루는 일본군이 청산리 전투에서 참패를 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만주에 흩어져 살던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한 장본인이었다.

경성까지 무사히 잠입을 한 세 명의 암살단은 국내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행동개시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의 치밀한 계획은 정체불명의 괴한들의 예기치 못한 방해로 차질을 빚게 된다.

일본 정보당국의 의뢰를 받은 살인청부업자들의 개입으로 ‘속사포’는 작전 도중에 실종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암살할 대상들이 탄 차량이 뒤바뀌면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일명 ‘하와이 피스톨’이라 불리는 사내(하정우)와 그의 집사인 영감(오달수)에게 세 명의 암살단원을 처단하라고 사주를 한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염석진이었다. 그는 20년 전 거사에 실패한 후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결국 회유를 당해 이중첩자가 된 인물이었다. 그리하여 일본 특무대 수사관으로 활동한다.

그는 김구 선생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신임을 받고 작전을 주도했지만, 결국 본색을 드러내어 세 명의 명단을 팔아넘겼던 것이다. 작전의 결과는 참담했다. 차량을 폭파시키면서 용감하게 일본군과 맞싸웠던 황덕삼은 장렬하게 전사하고, 안옥윤 마저 일경에게 체포되고 만다.

사실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대목은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위기(crisis)에 해당하는데, 당연히 그들의 거사가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그들은 주유소를 최적의 저격 장소로 미리 정해놓고 강인국 일행이 탄 차량에서 기름까지 빼내어 그들이 제 발로 사지(死地)로 들어오게 할 만큼 치밀하게 작전을 짰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안옥윤을 제거하려던 ‘하와이 피스톨’은 그녀와 상해에서 있었던 우연한 만남과 그녀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으로 머뭇거리다가 역시 일경에 체포되어 둘은 함께 호송차에 태워진다. 염석진이 그들을 처단하려는 명목으로 변절자라는 이유를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처단이 미루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전한 은신처에서 부상을 치료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리던 안옥윤에게 어느 날 언니임을 자처하는 한 여자가 찾아오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미치코라는 일본 명의 그녀는 20여 년 전 헤어진 쌍둥이 언니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강인국이 데라우치 총독을 만나고 있었을 때 그들의 회합장소를 사전에 감지하고 독립군에게 알려준 당사자는 다름 아닌 강인국의 처 안성심(진경)이였던 것이다.

그녀는 친일행각에 가담하고 있던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은밀하게 조선독립군과 내통(內通)하면서 고급정보들을 제공해왔던 것. 결국 정보제공자가 아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인국은 대노하여 친정으로 도피하려는 아내를 살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마침 그녀는 쌍둥이 아이들을 각각 다른 인력거에 태워서 피신 중이었는데, 언니는 사악한 집사(김의성)에 의해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고 동생은 유모에 의해서 만주로 보내지면서 생이별을 해야 했던 것이다. 안옥윤이 안씨 성(姓)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혹한 운명이 쌍둥이 자매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사악한 집사의 안내로 그곳까지 찾아온 강인국이 자신의 큰 딸인 미치코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테러범으로 오인하여 사살해버린 것이다.

역시 전지현이 일인이역을 맡은 미치코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주인공이 쌍둥이였기에 가능했던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서 플롯 구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반전(反轉)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영화적 재미가 배가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급 저격수인 옥윤이 적진의 심장부로 들어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구사일생으로 그 자리를 모면한 안옥윤은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고 마침 언니가 사준 옷을 입고 강인국의 저택으로 들어가 언니 행세하기로 작정한다.

옥윤은 언니 미치코가 카와구치의 아들 슌스케(박병은)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깊은 슬픔에 빠져들게 된다. 한편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거동을 이상하게 여긴 집사는 그녀가 쌍둥이 동생이었음을 알고는 그녀를 제거하려다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마침내 디데이(D-Day)가 다가온다. 미치코와 슌스케 대위의 결혼식 날 옥윤은 강인국과 카와구치 장군을 암살하기로 새롭게 작전을 구상했던 것이다. 한편 ‘하와이 피스톨’은 슌스케 대위의 만행(蠻行)에 치를 떠는데, 그는 거리에서 자신에게 사소한 불편을 끼친 조선인 여학생을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할 만큼 냉혈한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와이 피스톨’은 자신이 진짜 해야 할 과업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그는 대지주의 자제였는데, 아버지가 친일파로 변절을 하자 회의를 느껴 그와 동병상련(同病相憐)에 있던 부유층 자제들과 뜻을 모아서 살부계(父系契)를 만들었지만, 여의치 않자 살인청부업자로 전업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대의에 투신한 옥윤을 돕기로 작정한다. 마침내 거사의 날이 왔다. 새하얀 드레스로 곱게 치장을 한 옥윤은 자신을 이끌고 식장으로 들어서려는 아버지 강인국한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아버지! 왜 만주에서 온 언니를 죽이셨어요?” 사실 만주에서 온 옥윤 자신은 쌍둥이 중 동생이었기에 이 말은 강인국에게 매우 큰 혼란을 초래한다.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 말은 옥윤 자신이 만주에서 온 친동생임을 밝히는 동시에 아버지가 죽인 사람이 바로 언니임을 드러내는 중의적인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강인국은 총독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함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엄숙한 결혼식이 진행되는 중에 총성이 울리고 식장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한다. ‘하와이 피스톨’에 의해 죽음을 당한 줄 알았던 ‘속사포’가 때 맞춰 나타나 옥윤의 고독한 작전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합동작전으로 애초 목표로 했던 강인국과 카와구치를 처단하는데 성공을 한다. 결혼식장에서의 거사 시퀀스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climax) 답게 대단히 역동적이고 현란한 총격전 장면들로 가득하여 여느 스펙터클 영화 못지않은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이 와중에 ‘속사포’는 염석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옥윤은 ‘하와이 피스톨’의 기지로 일본군으로 득실대는 식장을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하와이 피스톨’이 옥윤과 슌스케 신랑을 함께 납치한 것처럼 꾸몄던 것이다.

쌍둥이 캐릭터의 설정이 여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또 다른 반전(反轉)의 여지를 남긴다. 아무튼 두 사람은 슌스케를 인질로 삼아 아지트로 숨어든다. 하지만 그곳까지 찾아온 염석진과 일본군은 포위망을 구축하고 그들을 압박해온다. 결국 ‘하와이 피스톨’은 옥윤을 미치코인 척 석방해주면서 한편으로는 슌스케를 처단한다.

그리고 그와 영감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염석진에 의하여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해방된 조국의 한 법정에서 염석진이 재판을 받게 되는데, 반민특위(反民特委)에 의하여 반민족(反民族) 행위자로 기소가 된 터였다.

하지만 해방이후 고위경찰직을 맡아 종횡무진 활약했던 그가 친일 부역을 했음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꼽추(정규수)가 증인대에 서기도 전에 살해를 당하고 만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는 1948년 9월 7일 제헌국회(制憲國會)에서 일제 때 일본에 협조하여 반민족적 행위를 한 자를 조사하기 위하여 설치한 특별위원회이다.

약칭 반민특위는 산하에 특별경찰대를 두고 친일분자들을 색출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정권유지를 위해서 친일파 고위 관리들을 대거 등에 업고 있던 이승만은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였다.

결국 이듬해인 1949년 6월 6일 특별경찰대가 강제 해산을 당함으로써 기능이 상실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염석진이 현역 경찰간부들의 호위 속에 법정을 빠져나온다는 설정은 무척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어쨌든 홀로 시장거리를 산책하던 염석진은 막다른 골목에서 낯익은 얼굴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한 사람은 자신에게 총상을 당해 불구가 된 옛 부하였고, 또 한 사람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안옥윤이었다. 옥윤은 그에게 배신자를 처단하라는 김구 주석의 명령서를 낭독해주고는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대단원(大團圓)의 막을 내린다.

포스터= 암살
포스터= 암살

 

저작권자 © 무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