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창작센터에서 열린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라인의 황금' 프레스 리허설에서 출연진이 공연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프레스리허설 끝나고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공연은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독일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84)'는 12일 오전 예장동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진행된 프레스 리허설에서 "어젯밤까지 어떤 장면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했다.

나중에 더 기대감을 주기 위해 가장 흥미롭지 않은 신을 시연하기로 결정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힘 프라이어(84·Achim Freyer)가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은 총 공연 시간이 16시간이나 되는 대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니벨룽의 반지를 과거에 연출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 한국인들을 위해 새롭게 제작하고 있다"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감동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어는 "연습장면에선 보여줄 수 없지만 1막 무대는 황금빛으로 물들 것"이라며 "매일 밤 늦게까지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 회의와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 지하세계, 강 등의 공간들이 바뀌는 장면이 본 무대에선 장관을 연출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라인 강물이 햇빛에 빛나는 장면에선 모든 관객이 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만들겠다"고도 말했다.

"독일에는 바그너를 미칠 정도로 사랑하는 열렬한 팬들이 있는데, 저는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편에 가까웠죠. 그렇지만 우리 모두 바그너 팬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 시간이 단축됐으면 좋겠어요."  리허설 무대를 일부 공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라이어는 또 "한국이 처한 정치 상황도 고려했다. 한국이 분단된 국가라는 점을 고려해 연출한 부분이 있다. L.A(미국)와 만하임(독일)에서 연출된 것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만들어질 것이다.

언어 자체가 어렵고, 이 작품이 독일어를 알아듣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역사적인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것들을 색깔 있는 연기를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날 공개된 연습 무대에서는 큰 규모 무대 설비와 신화시대를 표현한 배우들의 기묘하고 화려한 의상, 인형극을 연상시키는 투구 형태 큰 마스크 등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은 이렇게 특수제작한 의상과 마스크를 쓰고 노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평생 기회가 있을까 말까 한 바그너 작품에 출연하게 돼 영광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들의 신 보탄 역을 맡은 양준모는 "평소 모자를 쓰고 노래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마스크는 이번에 처음 쓴다. 의상도 아주 무거워 기초 체력을 더 길러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신의 근엄함이 아닌, 인간의 추악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보탄 모습을 잘 표현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보탄 역의 다른 배우(성악가) 김동섭은 "어떤 평론가가 '보탄 역을 동양인이 하는 것은 세종대왕을 외국인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했는데, 한국인으로서 보탄 역을 해본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낀다. 보탄은 처음 나오면 40∼50분간 계속 무대에 있어야 하는데, 집중해서 노래하기 힘들다.

의상도 평범하지 않아 움직임에도 제약이 있고 얼굴 부분이 눈동자로 표현되기 때문에 감정 표현도 좀 더 연구해야 한다.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 기대해 달라"고 했다. 에스더 리 월드아트오페라 단장은 "지난 3월 첫 기자회견 이후 많은 분이 이 공연이 실현될 수 있을지 염려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용히 모든 걸 준비했다"며 "우리가 아는 바그너는 너무 어렵고 어두운 색깔이지만, 이걸 해체하는 연출을 아힘 프라이어가 해냈다"고 자신했다.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관해서는 "원래는 한국에 계신 훌륭한 연주자들을 모시고 바그너 오케스트라를 시도하려 했는데, 이후 여러 군데서 제안을 받았고 들어보니 프라임 오케스트라가 참 잘했다. 3개월 전에 지휘자 마티아스가 들어와 함께 연습했다. 들으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극작가인 독일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수제자이기도 한 아힘 프라이어는 베를린 국립미술대학 교수이면서 다양한 활동으로 수많은 훈장과 공로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판소리 역사상 외국인으로선 최초로 국립극장에서 '수궁가'를 연출했다.

연출·무대·의상·조명·영상 등을 총괄하는 프라이어는 "미국 LA오페라 극장,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에 이은 3번째 버전이다. 새롭게 동서양의 근본 철학을 담고 재해석했다. 그간의 어느 작품보다도 바그너가 원했던 '니벨룽의 반지'가 될 것"이라며 자신했다.

이어 "바그너는 '니벨루의 반지'를 오페라가 아닌 음악극으로 표현했다. 종합예술작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등장인물인 알베르히는 히틀러나 독재정권을 의미할 수 있을 만큼 시대를 초월한다"면서 "공연이 지속되는 동안 아이 같은 동심을 가지고 모두가 감동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월드아트오페라는 '니겔룽의 반지' 한국 공연을 계기로 만들어진 단체다. 에스더 리 단장은 "오페라를 어렵게 느끼는 대중에게 보다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것"이라며 "독일을 비롯한 풍부한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품격 높은 오페라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에스더 리 단장은 "우리는 이 오페라가 사상 최초로 남한과 북한의 최고 성악가가 한 무대에서 기량을 펼치는 평화와 통일의 무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 젊은 성악가 동참을 위해 우리처럼 분단 아픔을 겪은 독일 정부가 직접 나서 북한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독일 외무성에서 베를린에 나와 있는 북한대사를 만나 대한민국과 독일 정부 의지를 전하며 부탁했고, (북한 측에서) 열심히 가수들을 찾아 보내도록 하겠다는 긍정적인 이야기까지 정리됐다. 다음 달 2차 연습 때부터 들어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은 중간 휴식시간(인터미션) 없이 3시간 동안 극이 진행된다. 다소 의아할 수 있지만 '라인의 황금'은 애초에 인터미션 없이 만들어졌다는 게 프라이어의 설명이다. 그는 "결코 의도한 게 아니다"며 "실제 공연을 보면 3시간이 2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 이해와 관련해선 "독일어를 알아듣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작에 쓰여진 언어 자체가 어렵다"며 "그런 점들을 감안해 역사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의 발전이 옛 전통에 바탕을 둔 것인지, 급하게 서구화 됐는지에 관심이 많은데 이런 호기심을 작품 안에도 담으려고 했다"며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시대를 초월해 현재 관객들이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리허설에선 1막과 3막의 일부가 공개됐다. 난쟁이 보탄 역의 배우들은 커다란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책임감을 갖고 캐릭터 표현과 해석에 몰두했다는 후문이다.

베이스바리톤 가수 김동섭은 "한국인이 보탄 역을 맡은 것은 우리나라 세종대왕 역을 외국 사람이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며 "결코 평범한 분장이 아닌 데다 움직임도 제약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니벨룽의 반지'는 권력을 의미하는 황금 반지를 둘러싼 인간과 신들의 탐욕을 그린다. 바그너 자신이 오페라의 음악과 대본을 쓴 것이지만, 원전(原典) '니벨룽의 노래(벨룽엔리트)'라는 영웅설화를 참고했다. 

총 16시간에 걸쳐 공연되며, 바그너가 "세상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음악적 완성도가 뛰어나다. 4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발퀴레'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군 헬기가 베트남의 한 마을을 잿더미로 만드는 장면에 흐른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니벨룽의 반지’는 ‘발할라’라 불리는 북유럽의 올림푸스 신화를 바탕으로 니벨룽 족의 난쟁이 알베리히가 라인강의 세 요정이 지키던 황금을 훔쳐 만든 반지를 둘러싼 신과 영웅의 이야기다. 총 4부작이며 전곡을 다 듣기 위해서는 16시간이 필요한 오페라 대서사시다.

황금과 요정, 영웅의 전설로 가득한 세계관은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동명 원작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문학과 극 그리고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 라인강의 물속에서 3명의 물의 요정이 즐겁게 '바이아! 바가'라는 노래를 부르는 1막 첫 장면과 알베리히가 지하 유황 동굴에서 절대 권력을 쥐고 다른 모든 니벨룽(난쟁이)을 노예처럼 부리며 재산을 축적하는 3막의 장면을 시연했다.

'니벨룽겐의 반지'는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의 4부작으로 구성된 오페라다. 월드아트오페라는  2020년까지 전 4편을 제작할 예정이며, 그 중 1편 '라인의 황금'이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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