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허셀프'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3%, 관객 팝콘 지수 84%
이미지= '허셀프'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3%, 관객 팝콘 지수 84%

 

2022년 대한민국은 ‘영끌족’, ‘벼락부자’, ‘주님 위에 건물주님’ 같은 자극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가치들이 범람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노동의욕을 꺾어 버리는 (아파트로 대변되는) 부동산 광풍에 휩싸여 있는 동안, 우리에게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품게 되었다.

장밋빛 미래와 현명한 투자, 그리고 계층이동과 우월감까지, 다층의 의미를 내포하면서 끝없이 비교하게 만들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상대적인 박탈감에 잠 못 들게 한 고민거리, 이제 집의 본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쳐지거나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세상이다.

 

스틸 컷= 허셀프(Herself)
스틸 컷= 허셀프(Herself)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것이라고 충고하는 이들은 더 이상 공적인 영역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으며, 집으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가치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나이브(naïve)하다고 치부되는 세상이 되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살아 숨쉬는 생태계가 된 듯한 자본주의 세상은, 약하고 힘없는 개인이 살아가기엔 위험한 정글이 돼 버렸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결과이자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영역이 돼 버린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땅은 선물 받고, 도면은 인터넷에서 공짜로 공유 받고, 건축은 주변사람들이 무보수로 도와줘서 세로4m 가로12m 크기의 집을 지은 여자가 있다. 집이 곧 화폐가 되고 부의 척도가 되는 시대에, 우리 곁에 찾아온 기적 같은 영화, '허셀프'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Herself'는 제목처럼 '그녀'의 이야기다. 

2008년 <맘마미아!>에서 '도나'의 인생을 멋진 OST와 함께 그려내고, 2012년 <철의여인>에서 '마가렛 대처' 일대기로 '메릴 스트립' 에게 영국과, 미국 양국의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선사한 필리다 로이드Phyllida Lloyd 감독의 2022년 신작 <허셀프>는 '산드라( Clare Dunne )'가 주인공이다.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2022년 5월 12일 국내 개봉한 로이드 감독의 '그녀이야기' 3탄의 주인공,  산드라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어린 두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 임시 거처에 머물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

하지만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듯, 세상은 산드라에게 친절하지도 녹록하지도 않다. 남편은 다시 새출발을 하자며 협박에 가까운 제안을 하다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아이들의 양육권을 뺏기 위해 그녀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감수성 떨어지는 판사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남편에게 "왜 반복적으로 때렸냐?" 고 묻지 않고, 피해자 산드라에게 "왜 진작 떠나지 않았느냐?" 고 추궁하듯 묻는다. 공무원들은 서류와 절차만을 중시하며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산드라를 괴롭힌다.

시간도 돈도 어느 것 하나 넉넉하지 않은 현실에 남편에게 당한 폭력의 잔상은 정신을 괴롭히고, 무자비하게 발에 밟힌 손목의 고통은 모든 순간을 괴롭힌다. 엄마가 아빠에게 맞고 밟히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본 둘째 딸은 트라우마로 두려워하고, 어린 딸의 마음을 지켜주지 못한 엄마의 죄책감은 배가 된다.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어쩌면 우리 이웃, 어쩌면 우리 자신, 너무도 평범해서 특별할 것 없는 싱글맘의 고군분투. 하지만 가장 힘든 건 주거불안과 생활고다. 비참함이나 슬픔, 외로움, 그리움, 두려움 따위의 고급스러운 감정보다는 당장 아이들과 어디서 자고 먹어야 하는지, 당장 일하러 갈 때 아이는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 등, 생존의 절박함이 펼쳐지는 산드라의 일상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삶의 필수 요건과 절박함을 드러내지만 결코 감상에 젖게 하거나 자의식 과잉된 제스처로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시도 따위는 하지 않는다. 싸구려 감상팔이로 관객의 눈물을 구걸하지 않고 의연하게,

그리고 어른스럽게 자신의 시간을 이겨 나가는 산드라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러닝타임 내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렇게 소박하고 평범한 싱글맘의 스토리가 우아한 말투로,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관객의 태도에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정부보조금과 전남편이 주는 양육비를 받아야 간신히 버틸 수 있는 현실이기에 산드라는 꿈에서도 마주치기 두려운 전남편을 정기적으로 만나야 한다.

아이들과의 면접교섭권을 이행하지 않으면 양육권이 박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린 두 딸, 몰리( Molly MacCann )와 엠마( Rose O'Hara )에게 설명하기엔 복잡하고 아픈 현실에서,

두 딸은 엄마에게 '우리집'은 어디냐’고 묻는다.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우리집은 어디냐’, ‘우리는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거냐’ 고 묻는 아이들과 함께 싸구려 모텔을 전전해야 하는 엄마, 산드라의 고통은 몸의 통증을 돌볼 여력도 마음의 상처를 토닥일 여유도 없다.

폭력적이지 않았던 예전의 남편의 울타리가 그립고. 안정됐던 삶이 그리워서 무너져 내릴 때, 딸이 들려준 동화와 레고로 만들어 놓은 작은 집을 보면서 생각의 전환을 한 산드라는 인터넷에서 ‘셀프집짓기’를 검색해 본다.

우연히 찾은 DIY집짓기 영상은 두렵지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고 용기를 내게 한다. 산드라의 ‘허셀프’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거보조금을 주는 관공서에 찾아가 물어도 보고, 무턱대고 건축 자재상도 찾아가는 산드라의 용기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간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작은 선의와 응원들이 집도 절도, 희망도 없는 싱글맘이 직접 집을 짓게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희망과 연대, 그리고 작은 친절, 아일랜드의 속담처럼 ‘남을 위한 마음이 결국 나를 치유한다’는 태도로 주말마다 함께 작은 집을 짓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관객에게 ‘현실일 리가 없다’는 의심과 동시에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함께 전한다.  

아일랜드 수도에서 5주 동안 촬영된 영화 ‘허셀프’는 ‘클레어 던’이 직접 각본에 참여하고, 장소 섭외와 인물의 개연성을 빌드업 한 작가이자 주인공을 맡았다.

셀프 건축을 하며 자신의 삶을 새로 지어가는 산드라의 이야기는 타인의 힘으로 쉽게 안정을 찾는 불쌍한 여자의 이야기를 넘어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맞잡아 준 선한 이들에게도 삶의 희망과 충만함을 선사한다.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집이 화두에 오른 대한민국에서 두 아이와 함께 무너진 삶을 재건하려는 한 여자의 태도는, 우리가 자본주의와 화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연구공간 수유 +너머’를 이끌었던 사회학자 고병권은 자신의 저서 『화폐, 마법의 사중주』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화폐 경제로의 진입은

세계의 많은 공동체들에게 진화나 발전이 아닌

단절과 해체를 의미한다

또한 철학자 강신주는 칼럼 「냉장고를 없애자」에서 "냉장고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위한 것이며, 냉장고와 대형마트는 공생 관계에 있다고 주장해서 이슈가 됐다. 냉장고를 대량생산하는 거대한 산업자본과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거대 자본의 묘한 공생관계가 공동체를 균열시킨다"고 경고한다.

 

행복한 공동체를 원하는가? 재래시장을 살리고 싶은가? 생태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가족들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안전하고 싱싱한 식품을 원하는가? 그럼 냉장고를 없애라!

 

당장 냉장고가 없다고 해보자. 우리 삶은 급격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직접 재래시장에 들러서 싱싱한 식품을 사야 한다.

 

첨가제도 없고, 진공포장 용기에 담겨 있지 않다. 식품을 사가지고 오자마자, 우리는 가급적 빨리 요리를 해야 한다. 싱싱하다는 것은 금방 부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또 우리는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살 것이다. 혹여 어쩔 수 없이 많이 살 수밖에 없었다면, 바로 우리는 그것을 이웃과 나눌 수밖에 없다. “고등어자반을 샀는데요. 조금 드셔보시겠어요.”

(「냉장고를 없애자」중 일부)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출처=영화'허셀프'공식 포스터&스틸컷

 

많이 사서 나눠 먹는 고등어자반이라니. 너무 따뜻하지 않은가.

공동체가 붕괴되면 개인의 삶이 황폐화된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철학자 강신주의 일성과 사회학자 고병권의 화폐경제로의 진입의 위험성이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며, 자본에 우선하는 가치가 있다는 해묵은 담론이 유의미해지는 순간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라마구’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줄리안 무어의 ‘눈먼자들의 도시’ 와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퍼펙트 센스’는 세대와 시대를 막론하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명작들이다. 두 작품에서 획기적인 과학기술, 번쩍이는 재화, 찬란한 문명의 가치가 지속되려면 “우리 자신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담보하는 요소들은 그렇게 거창하고 요란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우리 자신과,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살아 있다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함께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먹거리와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작은 공간, 그리고 함께 할 사람들 외에 무엇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우리의 삶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풍요가 과잉된 세상에서 더 갖기 못해 괴로워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반성해 볼 시간이다.

 

포스터= 허셀프(Herself)
포스터= 허셀프(He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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