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억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을까?"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프랑스와 미국에서 공부한 작가, 81년생 조승연은 재미있는 입담과 왕성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크리에이터다. 젊은 세대가 꿈꾸는 자유로운 삶을 위한 조건을 두루 겸비해서 국경과 전공을 넘나드는 작가로 활약 중이다. 그의 저서 『시크하다』는 프랑스인을 바라본 한국인의 시선으로, 낯선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프랑스인은, 모든 자유는

성적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굳건히 믿는다.

미국인은 성 앞에서 어색해하고,

프랑스인은 돈 앞에서 어색해한다


조승연은 프랑스와 영어권을 성과 돈을 대하는 태도로 구분한다.

사랑을 제일 우선 순위에 놓는 것은 ‘프랑스식 마인드’, 사회의 굴레에 얽매여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앵글로색슨 마인드’라 구분하고, 프랑스인은 미국인이 ‘사람들에게 연애를 자유롭게 못하게 해서 물질에 집착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해결해야 할 행복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황금만능주의는 성적 억압과 뗄 수 없는 관계다.라고 언급한다.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여기서 앵글로색슨 마인드를 한국인의 사고로 치환하면, 어떠한가? 성을 억압하고 물질에 집착하고, 사랑으로 해결해야 할 행복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흑백화면과 포스터의 매력에 끌리듯 관람한 <파리, 13구>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계에 자비감없이 빅펀치를 날리면서 줄곧 조승연 작가의 프랑스를 떠오르게 한다.

이데올로기는 그 체제가 공기처럼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이념이라고 했던가. 끊임없는 타격감에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자극을 주는 영화, <파리,13구>로 들어가 보자.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화려함 속에 가려진 외로운 도시, 파리 13구. 낭만을 잃었다 생각한 그곳에서 불현듯 사랑을 만났다. 사랑을 원하는 ‘에밀리’ 사랑이 두려운 ‘노라’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 사랑을 몰랐던 ‘카미유’ 흔들리고 불안했던 그 사랑이, 우리는 전부라 생각했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 도시 <파리, 13구> [영화 공식 시놉시스]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4명의 젊은이가 청춘을 불태우는 그곳은 다양한 볼거리와 맛집으로 유명한 곳, 프랑스의 아시아로 불리는, 파리13구다. 원래 여러 인종과 문화, 특히 젊은 층이 많아 활기찬 지역으로 프랑스 원제목은 <Les Olympiades> 다인종 다문화 주거지역의 이름이다.

영어 제목은 <Paris 13th District>로 한국어 제목도 그대로 사용했다. 

파리의 부유하는 젊은이들을 사실감 넘치게 연출한 감독은 1952년생, 올해 일흔이 넘은 '자크 오디아르감독Jacques Audiard' 이다. 이미 2015년에 <디판>으로 제6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오디아르 감독은 거장답게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앵글로 젊은 감성을 자극한다.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으로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셀린 시아마 감독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시아마 감독이 이 작품에는 각본에 참여한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다인종을 화두에 두고 작품을 하는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동성애를 비롯해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지지하는 셀린 시아마가 '프랑스, 파리, 13구'의 젊은이들을 그렸는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흑백영화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 둘의 조합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주인공 마리안느로 분했던 노에미 메를랑의 출연은 화제일 수밖에 없다.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파리, 13구>에서 노에미 메를랑(노라)은 미모의 백인 프랑스인이다. 서른 살이 넘어서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지만, 학교 적응에 실패한다. 백인, 미모의 프랑스인, 주류의 조건을 갖추고도 오히려 겉도는 인물이다.

루시 장(에밀리)은 중국어와 프랑스어를 능통하게 하고 좋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콜센터 상담원을 하는 중국계 프랑스인이고, 동양인의 귀여운 외모에 ‘나는 먼저 자고 본다’는 대사로 동양적인 외모로 가질 법한 관객의 편견을 깬다.

마키타 삼바(카미유)는 흑인이고 고등학교 선생이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스트레스를 섹스로 푸는 자유로운 존재지만, 섹스파트너와 사귀는 사이의 철저한 구분을 지으며, 사랑은 금방 시들해진다는 신념을 가졌다.

제니베스(앰버스위트)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성인 BJ로 돈을 줘야 대화를 할 수 있는 비싼 상대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관계,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우연한 마주침과 관계 맺기는 모두 섹스로 귀결된다. 일반적으로 섹스는 가장 친밀함의 표현이지만, 작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충과 불안감을 표현하는 데 그친다.

낭만의 도시 파리를 흑백으로 칠해서 꾸미지 않고 삶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주며, 모두가 이방인처럼, 모두가 외부인 같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표현해낸다. 인종과 삶의 형태, 사랑의 모습들에 가질 수 있는 선입견들에 경종을 울리며 까미유라는 이름이 여자일 거란 선입견을 시작으로 관객의 다양한 닫힌 사고를 짚어주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자유로운 몸의 대화이고 젊은이들의 문화일 수도 있는 작품이 한국인에게 낯뜨거운 이야기가 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자.


‘모든 금지를 금지한다’는 슬로건으로 일어선 1968년 '프랑스68혁명'은 전 유럽을 거쳐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웃나라 일본까지 휩쓸었다. 그때 우리는? 

1968년 그때 대한민국은 박정희정권으로 새마을운동을 준비하며 ‘잘살아보자’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이룩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FrandcoBerardi “강력한 현대 허무주의에 순응해버린 나라” 로 규정한다.

베라르디가 분석한 한국인의 4가지 특징은

1.끝없는 경쟁 2. 극단적 개인주의 3. 일상의 사막화 4. 생활리듬의 초가속화다.

그는 4가지 특징의 근거로 높은 자살률을 들었다. 
세계 경제순위 10위 권을 넘나드는 경쟁력을 가졌지만, 여전히 잘 살려면 노력하라는 구호 아래, 당장의 행복은 뒤로 미루는 게 현명하다며 잠을 줄이고 스펙을 쌓으라는 나라.

삶은 2022년을 살아가고, 개인과 행복의 가치는 1980년에 두고, 성과 개인의식은 유교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다민족, 다층적인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는 <파리, 13구>를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자유로운 섹스가 방탕한 것은, 아닌가? '
'저런 일회성의 관계가 의미가 있는 것인가?' 
'결국 누구랑 이어지는 것인가? '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연애란 엔딩이 있다. 관계도 엔딩이 있다. 심지어 사람의 생명도 엔딩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을 꿈꾼다. 기러기아빠를 자처하며 자식교육에 평생을 바치고, 평생 희생해서 일군 재산을 나의 유전자에게 물려주는 게 삶의 목표다.

모든 행복과 욕망은 거세당한 일꾼처럼 잠을 줄이고, 밤낮으로 갈고 닦는다. ‘워라밸’을 말하는 젊은이들에게 ‘배가 덜 고파서 정신을 못차렸다’고 훈계하는 경우도 여전히 빈번하고, 성에 대한 공적인 담론 역시 터부시 한다. 

조심스레 공적인 영역에서도 논의가 시작되긴 했지만, 여전히 성에 대한 논의는 젠더별로 차이가 있다. 남자의 성개방성은 이기적이라 평하고, 여자의 경우는 방탕이나 쉬운,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남은 괜찮지만, 내 경우라면 다르지’ 라고 거리낌없이 말하기도 한다.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이번엔 독일의 교육을 살펴보자.


현재 중앙대에 재직 중인 김누리 교수는, 한국과 독일의 교육을 비교하며, 경쟁위주의 한국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학자다.

한국 교육에는 없는 독일의 교육의 3가지는 1. 성교육 2. 정치교육 3. 생태교육이라 조언하며, 성교육은 '나와 내가', 정치교육은 '나와 타인'이, 생태교육은 '나와 자연'의 관계 맺기에 관한 것이므로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교육이 정치교육이라는 김누리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독일의 성교육의 제1원칙은

‘윤리적 판단 금지’다.

성은 윤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뭐? 성과 윤리가 관계가 없다고? 정말? 반문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한 한국인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Id(본능)-Ego(자아)-Superego(초자아)로 구분되는데, 본능은 생물학적인 욕망이고 자아는 개인의 심리적인 요소들이며, 초자아는 사회적인 것으로 윤리, 규범, 도덕이다.

결국 본능이 원하는 것과 사회적인 규범 사이의 간극은 자아의 정신을 분열시키고 죄책감을 만들어 낸다. 이 간극에서 죄의식을 내면화한 자아는 권력에 굴종하게 된다.

결국 강한 자아를 길러내는 것, 한 인간이 나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가치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데 성교육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다. 결국 성에 대한 태도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권력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건강한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함께 하자고 약속한 파트너도 아니고 결혼도 안 한 젊은이들의 감정과 시간을 나누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를 보면서도 ‘저래도 돼?’ ‘피부색이 다르네?’ ‘뭐야, 섹스했는데 안 사귄다고?’ 등의 사고를 하지 않았는가. 

섹스는 결혼할 사람하고만 해야 하고, 섹스를 했는데 결혼을 안 하면 '창피한 연애', 혹은 '실패한 연애'나 '지우고 싶은 시간'이 되지 않았는가.

 

어차피 연애란 엔딩이 있는 소설 같음을 알고 시작했다면,

그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롭고 멋진 이야기였는지가 중요하지 않은가? 

연애 자체를 자기에 대해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

으로 받아들이는 프랑스식 사고는 어떠한지, 조승연 작가는 묻는다. 자유분방한 프랑스식 사고를 추종하거나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문화가, 우리에게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가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복합적이고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의 아이들이 경쟁에 실패했다고 자살하거나, 연애를 포기하며 스스로를 가치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사진=영화 '파리,13구' 공식 포스터&스틸컷


우리가 가르쳤던 몸과 사랑과 섹스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세상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데, 그들의 삶과, 선택과 생각이 틀렸다고 규정짓고 평가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결국 스스로를 부끄러운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죄의식 때문에 온전한 삶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문화나 전통이 아니라 폭력이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신생아 살해 소식이 가슴 아픈 요즘이다. 동거하던 남자가 출산 전에 자신을 버리고 떠나서 태어난 아이를 변기에 넣고 숨지게 하고 야산에 유기한 20대 엄마의 소식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이자 두려움이고 아픔이다.

우리가 삶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었고, 그들을 평가하고 폄훼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자신의 아이를 무참히 죽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우리의 순결주의와 혈연중심 가족주의, 형식과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결혼제도를 반성해야 할 때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하고 변화에 적응하고 순응하지 못하는 모든 생명체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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