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인권운동가 서신 리틀페더. 197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모습(왼)과 현재(오)/출처:게티 이미지
배우, 인권운동가 서신 리틀페더. 197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모습(왼)과 현재(오)/출처:게티 이미지

미국 원주민 아파치 족 출신 배우, 인권 운동가인 서신 리틀페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한 것은 1973년이다. 그녀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야유를 받았고, 무대 밖에서도 조롱과 소위 "토마호크 찹(인디언들을 인종차별할 때 쓰인 행동)"으로 야유를 받았고, 체포와 폭행의 위협을 받았다

미국 원주민 학대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차별을 겪은 지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 한 원로배우이자 인권 운동가는 9월 17일 아카데미 박물관이 주최하는 치유와 원주민 축하의 밤 행사에 주빈이 될 예정이다.

“정말 소름 돋았어요. 이런 날이 올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1973년 내가 시상식에 올라갔을 땐 완전히 혼자 였거든요.” 이제 75세가 된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혔다.

1973년, 당시 26세였던 리틀페더는 <대부>로 남우주연상을 탄 말론 브란도 대신 수상을 위해 시상대에 올랐다. 그녀는 사전에 협의 된 두가지를 지켰어야 했는데, ‘트로피를 만지지 말 것’, ‘60초 이내에 수상 소감을 마칠 것’이었다. 각각 말론 브란도와 아카데미 PD였던 하워드 코치의 지시였다.

“브란도는 이 상을 직접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후회하고 있다.”라며 대리 수상 소감을 시작한 리틀페더는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오늘날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영화계의 대우, 그리고 ‘운디드 니’에 관한 방송 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일어나기 한 달 전, 인권 운동 단체인 아메리칸 인디언 무브먼트는 인디언들에 대한 지속적인 학대에 항의하기 위해 사우스 다코타에 있는 마을인 ‘운디드 니’를 점령했다. 이 대치 상황에 대한 보도는 리틀페더의 오스카 시상식 TV 출연 당시 미국 법무부가 부과한 방송 금지 조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현장에서는 리틀페더의 탄원으로 인해 반발이 매우 심했다. 배우 존 웨인이 자신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무대를 습격하는 것을 제지해야 했고, 그 여파로 그녀의 정체성과 진실성이 의심받았다고 말한다.

이전에도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리틀페더는 미 연방정부가 그녀를 방송에 내보내는 토크쇼나 제작을 중단하겠다고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 약 50년 만에 쓰인 사과문은 9월 17일 리틀페더를 기리는 행사에서 아카데미 원주민 동맹 공동의장인 프로듀서 버드 러닝워터가 읽을 예정이다.

과거를 재조명하고 미래를 결정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아카데미를 대표하여 리틀페더에게 처음 연락한 사람은 런닝워터였다. "물론 버드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연기 신호를 보내려고 했지만 제가 잘 보지 못했거든요!" 리틀페더가 농담하듯 한 말이다.

아카데미 박물관의 회장인 재클린 스튜어트가 사과의 편지를 읽는 동안 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주의 깊은 침묵 속에 앉아 과거에 그녀가 결코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차분히 듣고 있었다.

"알다시피, 저는 1973년에 어떤 종류의 찬사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단지 내 조상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믿었고,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편지 낭독이 끝난 후, 리틀페더는 미국 원주민 영화 제작자들과 예술가들에게 경의를 표한 후, 가슴에 액자에 담긴 편지를 움켜쥐며 울기 시작했다.

리틀페더 자신은 평생 "사랑, 감사, 용서"라는 개인적인 일상 관행을 지켰다고 말한다. "드디어 누군가가 문을 부수고 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나 매우 기쁩니다. 비록 그들이 예약견에서 하는 것처럼 맹세하지는 않지만요."

1973년 리틀페더는 수상소감을 마무리하며, "나는 지금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미래에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이해는 사랑과 관대함으로 만날 수 있기를.”라고 말했다.

49년이 걸렸지만, 그 희망찬 말들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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