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 기자의 시네마 초대석]

현재 김포국제청소년영화제(Gimpo International Youth Film Festival) 운영 위원장과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시네필(Cinephile)들의 리뷰를 소개하고 있다.

스틸 컷=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원제: 生きちゃった)
스틸 컷=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원제: 生きちゃった)

 

한 사람과 오랫동안 결혼이란 테두리 안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릴 적 사랑은 모두 불장난일 뿐일까.

 

연애 때는 뜨겁게 사랑을 속삭이던 남녀도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면 서로 "진심을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하거나 "이제는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어떠한 소통도, 대화도 단절된 채 역할만을 해내면서 살아가게 된다. 비극의 시작이다.

영화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에 '말하지 못한 진심'때문에 하루아침에 아내도, 딸도 잃은 30대 가장 아츠히사(나카토 타이카)가 있다. 그의 아내 나츠미(오오시마 유코)는 그의 곁에 있을 때 줄곧 외로웠다며, 어떠한 기쁨도, 슬픔도, 어떠한 열정도 내비치지 않는 남편에게서 어떠한 사랑도 느낄 수 없다고 하였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그런 가정이었지만 성실한 아빠, 헌신적인 엄마만 남았던 가정에는 나츠미의 불륜으로 인하여 산산조각 나 버린다.

아츠히사는 나츠미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뜻모를 "미안해"만 되 뇌인채 무기력하게 뛰쳐나간다. 그리고 창백해져서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딸 스즈를 픽업하러 간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나츠미의 이혼 요구에도 아츠히사는 어떤 분노도, 원망도, 애원도 입안에서만 맴돌 뿐 어떠한 말도, 진심도 전하지 못한 채 5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만다."말하고 싶어.. 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마음속으로 울고 있어. 하지만 눈물이 안나.“

아츠히사는 그렇게 나츠미와 스즈를 떠나보내고, 아츠히사와 나츠미의 고등학교 친구였던 타케타 역시 친구 가정의 비극적 소식에 걱정한다.

영화 초반, 이 세 사람의 실루엣은 아련하고도 풋풋하게 그려진다. 아츠히사, 나츠미, 타케타 이 셋은 고등학교 동기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츠히사와 나츠미는 결혼을 해서 5살 사랑스런 딸 스즈를 낳았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예정에 없던 임신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헌신적인 아내, 남편, 아빠, 부인, 엄마는 남아 있지만 그 어떠한 열정도, 감정도, 심지어 분노조차 없는 부부에게는 파국적 결말만 있을 뿐이었다.

이혼 후 6개월 단위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진심을 전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영화는 불행만 연속될 뿐이었다. 이 영화는 '그래서 본심을 정확히 말해!'라고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스틸 컷=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원제: 生きちゃった)
스틸 컷=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원제: 生きちゃった)

하지만 문뜩 아츠히사가 외국어를 배울 때나 튀어나왔던 본심들, '언젠가 회사를 차리고 해외 사업에 도전해 아내 나츠미와 딸 스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라든지 '어릴 적 꿈은 프로가수가 되어 정상에 서고 싶었으며 그때는 함께 러브송을 불렀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은 그도 외국어로는 본심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아츠히사는 정작 진심을 말해야 할 때 표현하지 않았다. 이혼하는 순간에도 나츠미의 눈조차 쳐다보지 않았으니까. 아츠히사는 사랑하지만 본심을 꺼낼 수 없고, 그저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고구마를 100개를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할 뿐이었다.

사랑을 갈구해서 떠난 나츠미, 진정성있는 우정으로 지탱해주는 타케타, 각자가 말하는 지극한 사랑은 달랐지만 '그 때 진심을 말했더라면 인물들의 결과가 어쩌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를 고민하게 한다.

나츠미의 장례식에서 스즈는 아빠와 했던 여우 그림자놀이를 해본다. 부녀에 있어서 그림자놀이는 소통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잡을 수 없는, 직접적이지 않은 '그림자'에 불과하기에 아츠히사의 한계처럼 보인다.

'말할 수 없는 진심'으로 관계를 흩어버리는 아츠히사를 마냥 비난만 할 수 없는 까닭은 나에게 막상 쓰나미처럼 큰일들이 밀어 닥쳐 이 상황에서 나의 본심을 말하라 하면다면 이 또한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은 그저 관계 맺기가 서투르고 소통의 부재를 겪는, 고립된 일본 사회의 상황은, 어디 저 먼 별 나라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보는 내내 고구마 100개를 선사했던 아츠히사에게서 한 가지 교훈을 길어내자면 '용기를 내야만 하는 순간, 진심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 타이밍을 놓치면 안된다는 점이다. 한 때 유행했던 말로 대신 빌려 말하자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하니까 말이다.

포스터=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원제: 生きちゃった)
포스터=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원제: 生きちゃった)

 

 

*글쓴이: 전아름

2017년 국민일보 <아버지의 장갑>으로 등단한 바 있고 그룹홈청소년, 대안학교 청소년의 삶과 성장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사회정의교육을 통한 청소년의 행위주체성 신장에 관심이 많다. 2019년 <비판적 실천을 위한 교육학>공저로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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