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16일 서울 종로구 드림아트센터에서 뮤지컬 ‘라흐 헤스트’ 프레스콜이 열렸다. 프레스콜에는 김은영 연출, 김한솔 작가, 문혜성·정혜지 작곡가, 향안 역의 이지숙, 제이민, 환기 역의 박영수, 이준혁, 양지원, 동림 역의 임찬민, 김주연, 최지혜, 이상 역의 안지환, 임진섭이 참석했다.

"'우리 같이 죽자'는 이상의 말에 가방 하나 싸 들고 부모님의 집을 나서죠. 결혼 3개월 만에 이상을 떠나보낸 뒤 그 슬픔을 수필로 남기고, 화가 김환기를 만나요. 다시 예술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두려울 법도 한데 용기 있게 그 손을 잡고 미술 평론가, 화가가 됩니다. 이런 김향안의 삶이 그 자체로 예술이라고 느꼈죠."

2004년 2월29일 그리고 1936년 2월29일.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삶을 정리하는 김향안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의 21살 동림(김향안의 본명)은 수첩을 펴들고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시인 이상과 김환기 화백의

아내로 알려져있는

김향안의 삶이 무대 위에 피어난다.

 

지난 6일 대학로에서 개막한 뮤지컬 '라흐헤스트'는 두 천재 예술가와 열렬히 사랑하고, 쓰고 그리는 삶을 지나 예술을 향해 나아갔던 김향안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작품은 김향안이라는 인물을 김환기의 아내로 살던 '향안'과 시인 이상과 함께하던 20대의 '동림'(김향안의 본명)으로 나눠서 그린다.

이상을 만난 20살 시절의 동림과 김환기를 만나 여생을 함께한 향안의 시간이 역순으로 교차된다. 1936년 다방에서 처음 만난 동림과 이상의 풋풋한 설렘이 시작된다. 이어 1988년 자신의 개인전에서 환기를 떠나보낸 후 붓을 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70대 향안이 등장한다.

대본을 쓴 김한솔  "단지 예술가의 아내를 넘어 이상을 만나서는 글을 쓰고 김환기를 만나고 스스로 그림을 그려 개인전을 연 인물"이라며 "김향안의 삶 속 선택과 인연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향안과 동림은 각자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서로를 마주 보고 각자에게 필요한 용기와 위로를 전한다.

연출을 맡은 김은영 연출가는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온전히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큰 용기라 생각한다"며 "둘의 만남을 통해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의 나를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한솔 작가는 "두 예술가가 사랑한 사람이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너무 멋있는 분이었다. 그녀의 인생 자체가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예술가의 아내로만 산 게 아니라 이상 시인을 만나 글을 쓰고, 김환기 화백을 만나 그림을 그린다.

사실 이상을 (결혼생활) 3개월 만에 떠나보내고 다시 예술가와 사랑한다는 게 저 같으면 두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용기있게 그 손을 잡는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며 "두 예술가와의 결혼이 글 그리고 그림과의 결혼으로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실존 인물인 만큼 부담감도 있었다.

김 작가는 "실존 인물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 공부를 많이 했다"며 "특히 환기재단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대본 작업을 했다"고 전했다.

서정적인 넘버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영상을 통해 김환기의 점면점화가 등장한다. 문혜성 작곡가는 "등장인물 4명이 예술을 어떤 태도로 대할까를 생각하며 음악을 만들었다"며 "동림은 예술을 동경했고, 향안은 예술을 존중했다. 환기는 삶으로 여겼고 이상은 숨으로 여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이민은 "잔잔한 호수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연"이라며 "살면서 한번씩 과거의 나를 생각하고, 미래의 나를 응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저는 물론 모두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임찬민은 "2년 전 리딩으로 이 작품을 만났다. 이 여인의 삶이 너무 귀하고 아름다웠다. 찰나를 영원처럼 산 분"이라며 "작품 안에 만남과 이별이 많이 녹아있어 사실 연습하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준혁도 "이 작품은 '아름답다'는 단어 하나로 잘 보여진다고 확신한다. 아련함, 서정적인 감정이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단어가 아름다움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환기 역의 이준혁은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짚어봤다. 아련함과 서정성이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되길 바란다"고 했다. 동림 역의 이지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한 이야기가 스며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배우들은 실존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입을 모았다. 박영수는 “김환기 화백의 점화를 실제로 그려봤다”며 “2,3시간을 그려봤는데 연습장 한 장을 채우기도 어렵더라.

그림을 그리는 심정이 어떨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지숙은 “김향안 선생님이 쓰신 수필집이나 에세이가 있다. 이를 많이 참고했다”고 밝혔다.

향안 역은 이지숙과 제이민, 환기 역은 박영수와 이준혁, 양지원, 동림 역은 임찬민과 김주연, 최지혜, 이상 역은 안지환과 임진섭이 연기한다. 라흐 헤스트는 불어로 '예술은 남는다'는 뜻이다. 공연은 11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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