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스틸 컷=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스틸 컷=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아일랜드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만약 가게 되면 꼭 저런 모습을 했을 것 같은 목가적인 풍경과 농가를 보여주며 영화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애정이라곤 일도 없는 가족틈에서 자란 어린소녀 코오트는 가족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도통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말 그대로 영화 제목처럼 '말없는 소녀'의 역할을 철저히 따른다.

도박과 거친 성격을 가진 아버지와 가난한 삶으로 희망을 찾지 못해 늘 불만인 엄마사이에서 자식들의 행동은 늘 조심스럽고 주변상황에 예민하며 눈치만 늘어간다.

반복적인 일상들이 지루하게 전개되고 가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코오트는 방학을 맞아 먼 친척 노부부에게 강제로 유배된다. 낯선 환경에서의 갈 곳 잃은 눈동자 코오트의 표정에서 읽혀지듯 불안한 마음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스틸 컷=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스틸 컷=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정다감한 이모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에 차갑던 마음은 금새 풀리며 곧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이모부 또한 무뚝뚝하고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말없이 식탁위에 과자를 슬며시 놓고 가는 츤데레 같은 모습에서 다정함이 묻어있다.

<말없는 소녀>는 인생을 바꾸는 짧고 희망찬 여름을 보내면서 사랑받는 것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내는가를 밀도 있게 다룬 작품으로 사랑과 다정함이 가져오는 변화의 힘에 대한 믿음의 깊이에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연기와 사실적인 표현, 그리고 진정성 있는 연출 덕분에 영화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인데 방학이 끝나면서 본가로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길에 갑짜기코오트가 달려 나가 이모부에게 덥석 안기는 장면이다.

안긴 상태에서 뒤를 보니 친부가 달려 나오는 장면과 이모부에 안긴 코오트의 얼굴이 번갈아 가며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는데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아빠를 서너 번 부르는데 쫓아오는 아빠가 무서워서 그런 건지 품에 안긴 이모부에게 데리고 가달라고 도움을 청하고자 부른건지 알 수가 없다.

스틸 컷=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스틸 컷=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종영 후 긴 여운에서 빠져 나올 시간이 필요했던 영화 <말없는 소녀>는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관왕(제네레이션 K플러스 부문 대상인 국제심사위원상, 수정곰상 작품상 특별언급)석권과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노미네이트로 최다 관객상 수상으로 전 세계 관객이 뽑은 올해 최고의 영화로 등극했다.

이렇듯 좋은 영화를 보고나면 “대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누구지”라는 생각으로 감독의 프로필을 찾아보곤 한다. 이 영화가 그렇다.

<말없는 소녀>를 연출한 콤 베어리드(Colm Bairéad)감독은 "내 모든 단편 영화들(아일랜드어로 제작)은 어린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었고 어린 시절을 다루는 영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맡겨진 소녀 Foster』 (저자 클레어 키건)는 한 민족으로서 우리의 아름다운 초상일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를 아주 잘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정말 적합하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맡겨진 소녀』를 읽기 1년 전에 아빠가 되었고, 영화 제작자이자 아내인 클레오나(Cleona)가 실제로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부모가 된 상태였습니다.

새로운 부모로서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자녀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코오트'가 허구의 아이일지라도, 저는 그 캐릭터에 대해 정말 일종의 아버지 같은 반응을 보였고, 어떤 의미에서 그녀를 돌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랑과 다정함이 때로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세련된 슬픔의 영화 <말없는 소녀>는 현재 절찬 상영 중이다.

스틸 컷=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스틸 컷=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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