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가 죽은 지 두 달이 흘렀다.

우리가 살던 남양주 아파트의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그녀는 엄마의 유품인 오렌지색 에르메스 스카프로 목을 맸고, 은미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나다. 회사 워크샵에 사흘 만에 돌아온 날이었다. 유서에는 딱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엄마의 제사를 부탁해."

필체가 어찌나 정갈하고 고운지 고스란히 액자에 담아두고 싶을 정도였다.

은미의 엄마는 3년 전 가을, ‘특발성 폐 섬유화증’이라는 희귀병으로 10개월여의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평생 담배 한 대 태워본 적 없는 분이 폐질환을 앓다 죽었다는 사실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 몹시 울었다. 나는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우지만 건강 검진 때마다 내 폐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은미는 특유의 높낮이가 옅은 어조로 외려 나를 위로했다. 죽은 건 내 엄마가 아니라 그녀의 엄만데 내가 위로를 받다니. 역시 세상은 그녀 말마따나 불공평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은미의 SNS에 로그인을 한다.

비밀번호는 ‘혜연 0817’,

내 이름과 생일을 조합해 만든 것이다.

이미지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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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와 나는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대학을 나왔고, 교양수업 공동과제를 하다 친해졌다. 그녀와 내 생일은 8월 17로 같았다. 그 우연이 신기했던 우리들은 어느덧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그 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이름과 생일을 조합한 것을 각자의 비밀번호로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빠가 없었지만 대신 본인 명의의 아파트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조그마한 광고회사에 취직을 하자 그녀는 내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해왔다. 집에 방이 많다고, 빈 방에 들어가기 싫다고.

은미의 SNS 계정에는 그녀의 부재를 걱정하는 랜선 친구들의 댓글이 많이 달려있었다. 피아노를 가르치던 은미는 그녀의 계정에 클래식 음반의 리뷰를 업로드 해왔는데 그 리뷰를 좋아하는 팔로워들이 상당했다.

은미의 주검 앞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현실에는 더 이상 그녀가 없는데 온라인 세계에서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 괴리가 어마어마해서 영혼의 많은 부분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블 영화 속 최강 빌런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히어로들이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갔듯, 은미의 부재와 함께 내 영혼도 그랬다.

이미지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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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님...?

돌연 메신저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만 할 지 몰라 나는 침묵했다.

“혹시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셨나요? 한참 글이 올라오지 않아 걱정했습니다.”

“아…… 네, 조금요.”

나도 모르게 은미 인척 회신을 보냈다.

“이젠 괜찮아진 건가요?”

“이젠…… 괜찮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메시지 보내는 게 실례인 줄은 알지만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은미의 SNS계정에 접속한다. 비밀번호는 ‘혜연 0817’.

 

이미지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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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게 메시지를 보냈던 사람, ‘리파티’라는 아이디를 쓰는 그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 사람은 은미가 리뷰를 한 음반은 거의 다 구매를 했고, 그녀가 쓴 감상이 하나같이 들어맞아 모두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다. 요새는 음반을 구매하지 않느냐고, 리뷰를 읽고 싶다고.

"나는 혜연이거든요. 내 비밀번호는 ‘은미 0817’이지만 은미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차마 털어놓지 못한다.

며칠 후면 8월 17일이다.

그날은 은미의 계정에 접속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그 후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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