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U+ 스테이지에서 연극 ‘토카타’ 프레스콜이 열렸다. 전막 시연에 이어 열린 질의 응답에 배우 손숙, 김수현, 정영두, 손진책 연출, 배삼식 작가가 참석했다.

연극 ‘토카타’라는 말은 접촉하다, 손대다 라는 뜻의 이탈리어어 토카레(Toccare)에서 유래된 토카타(Toccata)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에 대한 이야기다.

배우 손숙(79·사진)의 연기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작품 ‘토카타’는 한 편의 시 같은 연극이다. 배삼식의 시적이고 철학적인 대사와 손진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 그리고 손숙의 내공 있는 연기가 한데 섞이면서 음률을 만들어낸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작품의 형식은 다소 낯설다.

등장인물은 ‘여자’(손숙 분)와 ‘남자’(김수현 분) 그리고 ‘춤추는 사람’(정영두 분) 등 세 사람뿐이다. 세 사람은 한 무대에 등장하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는 각자 자기 이야기를 번갈아 독백으로 쏟아내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 등장하는 춤추는 사람은 오로지 몸짓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사건도, 갈등도 없다. 일반적인 연극과 분명 다르다.

작품 속 여자와 남자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두 사람 모두 ‘접촉’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오래전 남편이 세상을 등진 뒤 유일하게 곁을 지켜준 늙은 개를 떠나보낸 여자는 남편의 포옹과 개의 온기 등을 그리워한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병원에서 인공호흡장치를 단 채 사경을 헤매는 남자는 육체 속에 갇혀 자신이 어루만졌던 손길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외로워한다. 산책하면서 조용히 상념에 젖는 느낌으로 감상하면 좋은 연극이다.

남자와 여자의 대사는 각자 말하는 것 같지만 잘 들어보면 전부 이어져 있다. 춤추는 사람의 안무도 남자와 여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조각들 사이의 연관성을 이으려면 집중해서 봐야 한다.

배삼식 작가는 “일반적인 연극은 사건과 갈등으로 관객을 이끌고 가지만, 이 작품은 관객 스스로 만들어가는 점이 다르다”며 “배우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관객마다 떠오르는 이미지를 곱씹으며 무대와 교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이 연극엔 손숙의 60년 연기 인생뿐 아니라 일련의 시련으로 겪은 슬픔과 고독이 녹아들어 있다. 손숙은 지난해 12월 남편을 떠나보냈다. 갑작스럽게 다쳐 3개월간 병상에 누워도 있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말 그대로 어떤 접촉도 없이 고독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며 “그때 이 작품이 내 안에서 ‘묵으면서’ (다시 살아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 연극이 끝나고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오래된 일들을 어제처럼 여기고, 오래된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잠이 듭니다.

저를 감싸고 있는 오래된 것들을 어루만지죠. 그러나 이상하죠. 오래된 몸은 익숙해지지 않네요. 잠들기 전에 스위치를 내리듯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어요."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읊조린다. 곁을 지키던 늙은 개를 떠나보낸 후 홀로 남겨진 집, 늙은 여자는 집안의 오래된 가구와 물건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어루만지며 이내 고독함에 젖어든다.

연기 인생 60주년을 기념해 올린 연극 '토카타'에서 배우 손숙이 가장 와닿은 대사로 꼽은 대목이다.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다'는 말에 공감했다는 여든 살의 노배우.

뜨겁게 사랑하고 아이를 길러 품에서 떠나보내고 이제는 혼자가 된 극 중 늙은 여자는 그 자신과도 같다. 그 얼굴에 손숙 자신을 투영하며 삶의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찬란함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이날 배삼식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한 관계 단절과 갑작스러운 죽음들이 우리에게 남겼던 충격과 슬픔 그리고 고독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으며, 손진책 연출은 “내용으로 보면 누구나 겪고, 겪어야 하는 이야기다.

극적인 갈등없이 시어 만으로 극을 만들어낸 훌륭한 극이라고 생각했다.

손숙의 60주년 기념 공연인데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많았는데, 대본이 좋다는 반응을 해줘서 마음이 놓였다. 관객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행간을 잘 찾아가면 경험한 것들을 비추어볼 수 있을거라 인내심을 갖고 봐주시는 관객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손숙은 첫 공연을 마친 소감에 대해 “정신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안난다”고 말문을 연 뒤 “걱정을 많이 했는데 관객들이 잘 봐주신 것 같아서 마음을 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초 ‘토카타’는 올 봄 선보일 계획이었으나 손숙이 지난해 남편상을 당한 뒤 사고로 3개월간 병상에 누우며 하반기로 연기됐다.

손숙은 “원래 ‘토카타’는 올 봄 선보일 계획이었으나, 지난해 남편상을 당한 뒤, 사고로 3개월간 병상에 누워 있다보니 하반기로 연기되었는데,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누워 있으면서 토카타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며 “슬픈 일이 연극에는 도움이 됐다. 삶이란 참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손숙은 “처음에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대본을 읽고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한 문장도 버릴 게 없었다. 놀라운 작품이었고, 도전 정신이 생겼다."면서 "제 이름을 건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는데 초심으로 돌아가서 죽을 만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외로 작업이 재밌었고, 힘겨웠지만 즐거웠다.

잊을 수 없을 만큼 이 작품을 사랑한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연극 '토카타'는 무대엔 언덕이기도 하고 산책로이기도 한 조금은 휑한 황금빛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들판 옆으로는 나무 한 그루와 나무 의자 한 개가 놓여있다. 다른 한편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여자는 산책을 나선다.

길을 걷다 쉬기도 하고,

길을 걷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기도 한다.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는 여자의 산책길에서 시작해 끝난다.

여자는 유일하게 자신의 곁을 지켜 주었던 늙은 개를 떠나보냈다. 과거 우연히 손녀가 데려온 강아지와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발등에 기대어 잠이 들었던 물컹하고 보드라운 그 생명과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한다.

백내장 수술을 한 후 회복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실크 가운 이야기까지, 가만히 귀기울이면 한 여자의 일생이 들려온다. 그러다가 여자의 추억이 끝나면 나무 밑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의 독백이 시작된다.

때론 남과 여의 독백이 묘하게 교차되면서 서로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 점차 짙어져 간다. 이처럼 연극은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지내오면서 접촉하지 않은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오다보니 이것 또한 하나의 생활 방식이 된 듯 접촉하지 않는 시대의 접촉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극은 무척이나 무거울 것같은 정적속에서 진행되지만 정작 중심 줄거리 없이 세 인물의 독립된 이야기를 엮은 독특한 형식의 작품으로 키우던 개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늙은 여인(손숙 분), 바이러스에 감염돼 위독한 상태에 빠진 중년 남자(김수현), 홀로 춤을 추는 사람(정영두)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한다. 연극 ‘토카타’는 오는 9월 10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저작권자 © 무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