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레드앤블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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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은 박제영 연출과 배우 전박찬, 이율, 정일우, 박정복, 최석진, 차선우가 참석했다. 원작은 라틴아메리카 퀴어문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이 1976년 썼다. 두 인물의 대화가 중심인 소설이라 연극 뿐만 아니라 영화(1985년), 뮤지컬(1991년)로도 각색됐다. 영화에서 몰리나를 연기한 윌리엄 하트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을 받는 등 작품 자체의 명성은 세계적이다. 국내에서는 2011년 초연했고 2015년 재연 2017년 삼연 그동안 배우 정성화 , 박은태,  최재웅, 김주헌 , 김호영 , 정문성,  김선호 등이 거쳐갔다.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연기하는 정일우. (사진=레드앤블루 제공)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연기하는 정일우. (사진=레드앤블루 제공)

자신을 여성이라고 믿으며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성소수자 몰리나와 사랑보단 정치적 신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상범 발렌틴.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은 감방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스며드는지 연극은 그 과정을 애틋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는 인물은 단연 ‘사랑의 화신’ 몰리나 다. 한없이 순수하고 발랄해 보이는 그의 사랑에는 언제나 단서가 붙는다. 그것이 ‘당신을 역겹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몰리나와 발렌틴이 점점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 내내 몰리나는 이 대사를 거의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심지어 극의 마지막에서 몰리나의 출소를 앞두고  발렌틴이 작별의 키스를 해주겠다고 할 때도 몰리나는 여전의 그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 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다.

지독히도 사랑을 간구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몰리나는 발렌틴과 동침한 뒤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것은 발렌틴도 마찬가지. 같은 성(性)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상을 신봉한다는 이유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자리를 허락받지 못했던 이들은 비좁은 감방에 갇히고서야 비로소 자유와 평안을 찾게 된다.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는 몰리나는 전박찬, 이율, 정일우가 연기한다. 굳건한 심지를 가졌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발렌틴 역엔 박정복과 최석진 그리고 아이돌 출신 배우 차선우가 분했다.

“내 마음은 상처투성이야. 이젠 상처받는 데 지쳤어!”

프레스콜에서 몰리나를 연기한 전박찬은 “단순히 성소수자와 정치사상범의 로맨스가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차별, 억압 그리고 우리 역사의 운동과 관련 있는 작품”이라고도전했다.

박제영 연출도 “다수의 편견으로 소수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다”면서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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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선 몰리나의 출소 후 펼쳐지는 비극이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연극에서 감옥 이후의 이야기는 방백으로 처리된다. 

몰리나가 극에서 줄곧 이야기한 영화는 바로 ‘캣 피플’이다. ‘표범여인’ 이리나는 자신을 상담해주는 정신과 의사와 키스한 뒤 표범으로 변신해 그를 살해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몰리나에게 키스하는 발렌틴은 이렇게 말한다.

“난 거미여인이야. 늘 제자리에서 온유하게 사랑을 기다리는.”

정일우는 "몰리나의 의상과 분장을 입고 원래 제 목소리를 내니 어색한 기분"이라며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어떤 목소리가 가장 잘 어울릴지를 고민했다. 유리알처럼 섬세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해 손동작과 걷는 모습도 여성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2019년 연극 '엘리펀트 송' 이후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소감에 관해서는 "개막하고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항상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어렵지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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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어서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본을 읽으면서 사실 발렌틴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하지만 오랜만에 연극에 복귀할 때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면 더 좋을까 했을 때는 몰리나가 더 욕심이 났다. 내게도 도전이었고 이 캐릭터를 만들 때 쉽지 않은 여정을 겪었다.

아직도 찾아가고 있다. 형들이나 연출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게 공연을 잘하고 있다"라며 출연한 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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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는 영화 '고속도로 가족', 드라마 '야식남녀' '해치'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2019년 '엘리펀트 송'에서 '마이클' 역을 맡은 이후 5년 만에 연극에 복귀한다.

정일우는 5년 만에 관객과 만나는 것에 대해 "5회 차를 하고 오늘 프레스콜 이후 공연이 있다. 아직 초반부여서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아마 이 부분은 끝까지 그러지 않을까 한다. 연습을 두 달 이상 하다보니 초반이어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처음 보시는 관객분들도 있을테니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일우는 "몰리나가 갖고 있는 색깔이 정일우가 갖고 있는 색깔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몰리나의 유약하면서도 섬세한 부분을 살려보려고 했다.

내가 잡은  몰리나는 유리알처럼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약해보이면서도 자기의 감정이나 마음에 대해 솔직한 캐릭터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영화 이야기와 발렌틴과의 감정들, 대화들을 분리해서 접근하려고 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1막 1장부터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관객분들에게  어떻게 전달을 해야 관객이 잘 이해하실까 했다"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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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각자 몰리나들이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저만의 몰리나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연극이라는 무대는 매체와 다르게 긴장감이 있고 관객분들과의 소통이 있는 것이 매력이다.

어떤 한 작품을 서른번 넘게 반복하면서 캐릭터를 깊이 알아가고 배우로서 배움도 늘어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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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는 지난 1월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극에 몰입하기 위해 일상 생활에서도 인물에 대입하고 살고 있다며 다리 털을 왁싱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싱크로율을 100%로 맞추려고 준비하고 있다. 몰리나에게 사랑이라는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깊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연기했다. 유리알처럼 섬세한 친구여서 손동작이나 앉아있을 때 걸을 때 등 여성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다"라며 신경 쓴 부분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몰리나의 의상과 분장을 하고 내 목소리로 말하니 어색한데 목소리도 인위적으로 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어떤 톤의 어떤 목소리를 내는 게 몰리나와 비슷할까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2인극의 장점으로는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두 인물이 각자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라고 언급하며 "5년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데 아직도 무대 올라오기 직전까지 대본을 본다.

몰리나가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다. 그런 것들을 집중해서 연기하고 있다"라며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떨림과 긴장을 고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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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반정부 주의자로 발렌틴을 연기하는 배우 최석진과 그룹 'B1A4' 출신 차선우는 이번 공연이 개인적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5월 뇌경색 진단을 받은 뒤 무대를 떠나 있었던 최석진은 이번 작품으로 연극 무대 복귀를 알렸다. 2023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연으로 연극계에 데뷔한 차선우는 국내 데뷔무대에 오르고 있다.

최석진은 "현재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꾸준히 병행하고 있는 상태"라며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고 '아팠던 것 치고 연기가  괜찮다'라는 반응을 보일까 두려웠다.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 이를 더 악물고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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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은 "나만의 뭔가를 찾으려고 애쓰진 않았다. 다른 몰리나들도 똑같겠지만 정말로 이 대본에서 말하자고 하는 것 등 공통적으로 공유하면서 하다 보니 (차)선우의 발렌틴, (박)정복이 형의 발렌틴이 다 좋아서 저는 중간에서 잘 섞기만 하면 됐던 과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최석진은 2011년 뮤지컬 '연탄길'로 데뷔해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투모로우 모닝',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테레즈 라캥', '로빈', '블랙메리포핀스',  '인사이드 윌리엄', '해적',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연극 '언체인', '트루웨스트', '오펀스'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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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은 지난해 5월 갑작스럽게 반신마비 증상을 겪고 응급실에 갔다가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당시 공연 중이던 연극에서 하차했고 휴식기를 가지면서 치료와 재활에 전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현재 건강 상태에 대해 "뇌경색이 완치라는 개념이 없어서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재활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석진은 "쓰러지고 나서 복귀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쩌면 무대에 다시 서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거미 여인의 키스' 대본을 봤다.

어쩌면 지금 발렌틴이 갖고 있는 어려움과 내가 가진 어려움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대에서 잘 표현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으로 바뀌더라.

겁내지 말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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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은 "무대에 설 때 제일 무서웠던 것은 포용적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예술에 과연 포용성이 필요하냐인데 제일 겁이 났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내 무대를 보고 '아팠잖아.

아팠던 것 치고 괜찮네'라는 식으로 보는 사람이 예술 그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포용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아플 것 같더라. 그런 부분을 느끼지 않게 이 악물고 준비를 해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차선우는 "아직 톤, 발성, 몸동작이 어색해 연습 초반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다"며 "같은 역할을 맡은 박정복, 최석진 형들의 연기를 보며 나만의 발렌틴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제영 연출은 "세계적인 명작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면서도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며 "원작 희곡에 집중하며 제가 연출로 가진 색에 맞게끔 올리자는 생각 하나만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3월 31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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