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15일 서울 종로구 플러스씨어터에서  뮤지컬 '여기, 피화당'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정인지,김이후,정다예,최수진, 조풍래, 조훈, 장보람, 백예은, 곽나윤, 이찬렬, 류찬열이 참석했다

17세기 조선,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지만 정절을 잃었다며 집안에서 쫓겨난 세 여자 가은비·매화·개화. 이들은 '피화당'이라고 이름 지은 동굴에 숨어 살며 생계를 위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익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는 저잣거리에서 큰 인기를 얻고, 선비 후량은 이름 없는 작가 선생에게 자신의 글을 의뢰하기로 결심하고 작가를 찾아 나선다.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한국문화예술의원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인 뮤지컬 '여기, 피화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영웅소설 '박씨전'을 모티브로 한다. 

작품을 쓴 김한솔 작가는 "'박씨전의 작가는 누구였을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했다"며 "어쩌면 그가 청에 끌려갔다 목숨 걸고 돌아왔으나 자식의 관직 등용에 걸림돌이 돼 이혼·자결을 강요받은 이들 중 한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 여인이 종이 위의 글을 통해서나마 울분을 표출하고, 사대부를 비판했던 것 아닐까 상상해봤어요. 극중극으로 작품 중 '박씨전'의 내용이 표현되는데 박씨가 처음에는 탈을 쓰고, 두번째는 부채를 들고, 세번째는 아무 것도 없이 나옵니다.

숨어살다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세 여인의 모습처럼요."김한솔 작가는 "전쟁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지금 이 시대에도 세 여인이 겪은 일들은 반복되고 있다"며

"그래서 이 이야기가 3명의 여인 뿐 아니라 그 겨울, 모든 여인들의 이야기이길 바랐다. 현재도 존재하는 그런 여인들에게 이 뮤지컬이 피화당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아쟁과 해금 등 국악기와 어우러지는 넘버들이 관객의 몰입을 이끈다.

작곡가 김진희는 "피화당의 배경이 조선이고,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기 때문에 국악적 느낌을 살렸다"며 "전체적으로 국악기가 현대적인 음악어법과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고, 극중극으로 나타나는 '박씨전' 부분에서는 국악기를 추가하고 마당극 판소리 분위기를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박씨전’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정신 승리’ 소설이다.

박씨 부인이 초인적인 능력으로 청나라의 침입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극복하기 위한 이야기다. 언제 쓰였는지, 누가 썼는지 전해지지 않는다.

뮤지컬 ‘여기, 피화당’(사진)은 박씨전을 쓴 작가를 상상한다.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왔지만,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여성들이다.

가문의 명예라는 명분 때문에 죽을 위험에 처한 세 여인 가은비와 매화, 계화는 동굴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그 동굴을 ‘피화당’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들은 어두운 동굴에서 쓴 애정 소설을 팔아 하루하루를 버틴다.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세 여인에게 소설은 생존 수단에서 정신 승리의 수단으로 바뀐다. 사대부를 풍자하는 글을 써달라는 양반 후량의 부탁으로 ‘박씨전’을 쓰기 시작하면서다.

후량이 그들에게 글을 부탁하며 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비꼬아주시오!” 박씨전에 그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녹여냈다. 박씨 부인은 못생기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천대받고 가족과 나라로부터 버려진 주인공들처럼 피화당으로 쫓겨난다.

이야기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그들의 붓에는 분노가 담긴다. 추한 허물이 벗겨지며 아름다운 여인으로 거듭난 박씨 부인은 비범한 능력을 발휘해 단숨에 청나라 군대를 무찌른다.

힘없이 버림받은 주인공들과 달리 박씨 부인은 스스로 불합리함과 차별을 깨부순다. 개연성도 현실성도 전혀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이 의지할 곳이라곤 말도 안 되는 영웅담뿐이다.

‘환향녀’라는 낙인이 사라지지 않아 가족이나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그 이야기로 용기를 얻고 희망을 찾는다.

박씨전과 세 여인의 이야기를 연결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세 여인이 박씨전을 써 내려가며 몸소 장면을 재현해 하나의 전통극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박씨 부인과 겹치며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국악이 등장인물의 ‘한’의 정서를 극대화한다.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음악이 한에 서린 등장인물들의 절규에 애처로움을 더한다.

저잣거리에서 인기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피화당의 작가 '가은비' 역은 정인지·최수진·김이후가, 자신의 글을 의뢰하는 선비 '후량' 역은 조풍래·조훈이, 남장을 하고 이야기를 저잣거리에 파는 '매화' 역은 정다예·장보람이, 가은비의 몸종 '계화' 역은 백예은·곽나윤, 후량의 노비 '강아지' 이찬렬·류찬열이 연기한다.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뮤지컬 '여기, 피화당' (사진=홍컴퍼니 제공)

'가은비'를 연기하는 정인지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접했던 박씨전을 다시 읽었는데 느낌이 정말 달랐다"며 "극중 박씨전의 3번째 이야기까지 완결됐을 때 벅찬 감동이 있다"고 했다.

최수진은 "창작 초연이라 우리가 만드는 캐릭터가 가은비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신경을 많이 썼다"며 "극중 극에서 박씨로 분할 때 조선의 여성으로서 가은비가 가진 억눌린 부분들을 마음껏 표출하고 해소해 캐릭터가 재미 없고 무색무취해지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김이후는 "극 중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라는 넘버가 있는데 작자미상 '박씨전'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이 뮤지컬이 관객 앞에서 공연하고 전달되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후량'을 연기하는 조풍래는 "작품이 단지 하나의 극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했고, 조훈은 "다섯명 모두 조금씩 용기를 내서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강아지'를 연기하는 이찬렬은 "국악기가 들어가고 판소리로 작품을 풀어내는 부분이 매력 있다"고 했고, 류찬열은 "극중 강아지는 노비이지만 후량과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는 '망형지우'"라며 "신분을 뛰어넘으면서도 선을 안 넘는 장난을 어떻게 보여드릴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계화' 역을 맡은 백예은은 "그 시대의 이야기를 책임감 있게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말했고, 곽나윤은 "극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자는 희망을 갖고 연대하는 모습에 위로와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매화'를 연기하는 정다예는 "작품을 하며 내가 누군가의 '피화당'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따뜻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라고 말했다.

장보람은 "매화는 세상을 비관하고, 사람에게 상처받은 인물"이라며 "그런 가운데서도 가은비와 계화를 지키려는 동질감, 연대감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뼈아픈 역사에 담긴 사회의 모순과 여성에 대한 핍박을 이야기해 강한 여운이 남는다. 우리 고유의 소리를 기반해 만든 음악도 신선하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오는 4월 1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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