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 김상민 기자] 국립오페라단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초연하는 `윌리엄 텔`이 지난 8일 오후 6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픈 리허설을 통해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윤호근)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기념비적 발자취를 남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로시니의 대작 <윌리엄 텔>을 국내 초연한다. 

윌리엄 텔은 오스트리아 압제에 맞서 싸운 전설 속 스위스 건국 영웅이다. 아버지가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에 화살을 쏘는 장면을 기억한다면,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하는 오페라 '윌리엄 텔'이 낯설지 않겠다.

 

'윌리엄 텔'은 4막 5장의 상영시간만 220분에 달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공연이다. 1829년 프랑스 파리 초연 이후 190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한몫한다. 윌리엄 텔 리허설이 러닝타임이 무색하리만치 박력 있는 연출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핍박받던 스위스 민중이 끝내 오스트리아 군인들을 처단하는 장면은 깊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독립 아니면 죽음을 달라", "우리가 물려받은 핏줄에 당당해집시다"라는 대사도 한민족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했다.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쉴러의 마지막 희곡 <빌헬름 텔>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오페라는 13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스위스를 배경으로 독재자의 횡포와 만행에 굴복하지 않고 이에 맞서 싸우는 인물 윌리엄 텔과 스위스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0년 전 일제 치하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저항하던 3.1운동의 정신과 일제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오페라 <윌리엄 텔>은 1829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처음으로 초연되었다.

긴 공연 시간과 배역의 기교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세계 무대에서도 자주 만나기 힘든 작품이다. 국립오페라단은 2019년 역사적인 해를 맞아 파리 초연 이후 190년 만에 드디어 한국 오페라 무대에 <윌리엄 텔>을 올린다.

 

장장 네 시간에 이르는 이 대작은 시대 배경이 원작과 달리 1919년이다. 무대 위 풍경은 언뜻 스위스 같지만, 스위스의 1919년인 건 아니다. 압제에 대항한 민중 투쟁이란 언제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성을 띠기 때문이다.

12분에 이르는 서곡부터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네 부분으로 나뉘어 `윌리엄 텔` 전체 줄거리를 함축해주고 있는 구성이다. `동이 틀 무렵`에서 시작해 `폭풍우` `목가`를 거쳐 스위스 군인들의 행진이라는 `피날레`로 이어지는데,

이 같은 구성에 대해 작곡가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네 부분으로 된 교향곡"이라 상찬한 바 있다. 파격적 연출도 눈에 띈다. 서곡에서 경쾌한 민중을 묘사한 대목에선 갑자기 압제자들의 자동차가 등장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외 기법(관객으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극을 바라보게 만드는 기법)으로, 일부러 음악의 감동을 방해해 관객이 고통받는 민중에게 집중하도록 환기한 것이다.

 

여성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극 중 마틸드는 합스부르크가(家) 공주지만 스위스 민중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2막에서 군복에 파일럿 고글을 착용하고 하늘에서 등장하면서 강하고 독립적인 구원자가 될 것을 암시했다.

3∼4막에서 오스트리아 군인들이 스위스 여인들을 겁탈하는 장면도 피하지 않았다. 8세 관람가라는 점을 고려해 표현 수위는 낮췄지만, '전쟁이 발생하면 이런 끔찍한 일도 벌어진다'는 불편한 진실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우아한 첼로 선율이 민중의 평화를 상징하는 자연 풍광으로 상상의 나래를 뻗게 한다면 거센 폭풍우에서는 압제에 저항한 민중 투쟁의 격렬함을 보여준다.

이어 목동의 피리 소리를 묘사한 잉글리시 호른과 플루트 이중창이 목가적 풍경을 표현한 다음 트럼펫과 팀파니, 호른의 힘찬 소리가 결합해 승리를 쟁취한 민중의 기쁨을 한껏 드러낸다.

 

가장 큰 감동은 바리톤 윌리엄 텔(김동원, 김종표)과 아들 제미(라우르 타툴레스쿠, 구은경)의 부자 관계에서 왔다. 아버지와 아들 간 깊은 신뢰와 사랑을 표현한 대목마다 진한 감동으로 호소력을 발휘했다.

강인한 독립운동가지만 아들이 처한 위험 앞(아들 머리에 사과를 두고 활을 쏘아야 하는 장면 등)에서 무너지는 가슴은 강인한 독립운동가 이면의 부성을 절절히 보여준다.

2019년 국립오페라단의 <윌리엄 텔>은 2018년 국립오페라단의 <마농>으로 호평을 받은 마에스트로 제바스티안 랑 레싱이 다시 지휘봉을 잡는다. 

 

2012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와 2017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 <발퀴레> 연출로 최근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연출가 베라 네미로바가 연출을 맡고, 무대와 의상 디자인은 옌스 킬리안이 담당한다.

인간적인 고뇌와 분노에 휩싸이면서도 강인함과 따뜻함을 표현하는 주인공 텔 역은 바리톤 김동원과 김종표가 맡고 테너가 낼 수 있는 가장 고음인 하이C음을 28번 이상 소리 내야 하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아르놀드 역으로는 세계적인 테너 강요셉과 독일 브레멘 극장 전속가수로 활동 중인 테너 김효종이 무대에 선다.

아르놀드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마틸드 역은 소프라노 세레나 파르노키아와 정주희가 맡아 열연한다. 윌리엄 텔의 아내 헤트비히 역은 메조 소프라노 백재은이 맡고 윌리엄 텔의 아들 제미 역은 소프라노 라우라 타툴레스쿠와 구은경이 맡는다. 

 

그 외에도 김요한, 김철준, 전태현, 김성진, 안대현, 손지훈 등 한국 오페라 무대를 이끌고 있는 정상급 성악가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웅장한 합창, 대규모의 군중장면이 작품의 전반을 이끌어가는 이번 공연에는 국립합창단과 그란데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올라 대작의 전율을 선사한다. 연주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맡는다.

12분가량인 서곡에서 1910년대에 볼 법한 오픈카에 앉은 마틸드(세레나 파르노키아, 정주희)와 압제자 게슬러(전태현)를 잠시 보여줬다면, 오페라 2막에선 마틸드가 낙하산으로 스위스 땅에 유유히 착지하는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룬다.

이 장면에서 마틸드는 군복에 파일럿 고글 차림이다. 활력과 당당함이 전해지는데, 이는 여성을 강하고 독립적인 캐릭터로 표현해내려는 연출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실제로 극중 마틸드는 연인 아르놀드(강요셉·김효종)와 노래하는 사랑의 이중창에서도 내내 주도권을 쥐고 있다. 공연은 10일 오후 7시, 11~12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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