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감독 소설, '변두리 동네, 아파트 이야기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감독 소설, '변두리 동네, 아파트 이야기
  • 김상민 기자
  • 승인 2019.05.1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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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톡 김상민 기자] 15일 오후 서울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버닝’을 비롯해 ‘시’, ‘밀양’, ‘박하사탕’ 등의 영화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찬사를 이끌어낸 거장 이창동 감독의 소설이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두산아트센터가 ‘아파트’라는 테마로 진행하고 있는 2019 두산인문극장의 두 번째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이다. 15일 언론에 공개된 이 작품의 무대에서는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 시절 빠르게 변해가는 한국 사회를 응시하며 꿰뚫어보았던 인간 내면의 공허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원작의 여러 은유와 함의를 감각적인 무대 언어로 풀어낸 연출 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이창동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인 1992년 발표한 단편소설로, 당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을 무대화하는 작업에는 지난해 연극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으로 ‘2018 올해의 연극 베스트3’를 수상한 윤성호 작가와 현재 공연 중인 ‘언체인’의 신유청 연출이 참여했다.

이날 프레스콜은 전막공연으로 진행되었는데 연출을 맡은 신유청은 사전보도 자료를 통해 "하늘로부터 끊임 없이 흘러오는 사랑이 이 땅에 온전히 흐르게 해야 하고 ,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사방이 막힐 지라도 용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부끄러움을 안은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사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허상, 사상누각, 버블 같은 이들의 삶은 시각과 청각으로도 잘 전달된다.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넓은 거실, 외부와 경계에 위치한 변기 등 무대는 녹천의 한 아파트를 구현하고 있다.

여기에 갑자기 푸른 조명과 물방울 소리를 통해 마치 거품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숙이 쓸고 닦던 화장대 거울이 깨진다거나, 그토록 원했던 수족관에 들어갈 금붕어의 죽음 역시 허무한 기분을 전한다. 

2019년에도 유효한 메시지는 가슴 아프지만, 사실 스토리는 매우 익숙하고 전형적이다. 그러나 '소리들'(송희정, 박희은, 이지혜, 우범진, 하준호)이라는 멀티 캐릭터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이들은 극의 내레이션을 맡는가 하면 극중 딸, 준식의 동료 교사들, 술집 종업원 등 다양한 인물을 소화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들의 움직임과 몸짓, 개성 가득한 연기가 작품의 신선함과 유쾌한 매력을 더한다.

극은 배우들이 나레이션으로 녹천역 부근 동네의 분위기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배경은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던 1980년대, 새로 건설된 아파트 단지와 똥과 오물이 질펀히 깔린 지저분한 공사장이 가까이 붙어있는 서울의 한 변두리 동네다.

주인공은 아내, 딸과 함께 이곳 아파트 단지에 갓 입주한 가장 준식이다. 유년기에 가난으로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급사 및 서무과 직원을 거쳐 교사가 된 그는 아홉 번 만에 당첨되어 분양받은 23평 아파트를 둘러보며 한껏 행복감에 부풀어 있다.

그런데 이때 수년간 만나지 못했던 그의 배다른 동생 민우가 준식의 집으로 찾아온다. 어느날 갑자기 십여 년간 만나지 못했던 이복동생 민우가 집에 찾아오면서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민우와 친해진 미숙이 갑자기 화장을 하고 꾸미기 시작하면서 준식의 의심과 불신이 커져간다. 위태롭게 이어지던 불편한 동거는 결국 부부싸움과 민우가 떠남으로써 끝이 난다. 이 과정에서 세 사람은 각각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되묻는다.

파장을 일으키는 존재 민우는 악질 운동권으로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지만, 어렸을 때부터 매우 정의로운 캐릭터다. 그러나 준식의 입장에서는 민우의 정의감 때문에 손해를 보고 상처를 입었다.

그를 통해 미숙은 꿈과 이상을 생각하게 되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해온 준식은 그동안 노력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된다면, 무엇이 옳은 것인가.

그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울부짖는 준식의 모습이 절절하게 공감되고 안쓰럽다. 준식이 살게 된 아파트는 쉽게 상상하는 화려하고 멋있는 장소가 아니다. 

주변은 공사장이고 화장실이 없어 길가에는 쓰레기와 똥이 널부러져 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아파트가 사실은 거대한 쓰레기 퇴적층 위에 지워졌다는 사실처럼, 준식의 가정 역시 허울뿐 민우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민낯을 드러낸다.

극 초반 "진짜 우리 집"이라며 행복해하던 미숙이 극 후반 "더이상 이 집에서 살 수 없다"고 소리칠 정도로 끔찍했다.

이번 공연에는 연극 외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배우 김신록, 이지혜, 박희은 등이 출연한다. 공연을 볼수 있는 기간은 2019.05.14(화)~2019.06.08(토)까지이며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