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빨간시' 미투운동으로 폭력의 카르텔 균열
연극 '빨간시' 미투운동으로 폭력의 카르텔 균열
  • 김상민 기자
  • 승인 2018.04.23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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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고래의 대표작 '빨간시 [이해성 작·연출가]'가 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에서 프레스콜이 열렸다. 연극 '빨간시'는 2011년 처음 '혜화동 1번지'의 작은 공간에서 선보인 후,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빨간시'는 아르코 대극장의 넓은 무대 위를 채우기도 했고, 크고 작은 공연장들을 거치며 많은 관객들의 성원 속에서 극단 고래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빨간시'는 사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그에 대한 침묵이 재생산하는 폭력의 카르텔(cartel)을 고발했다. 그러나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고,

꽃다웠던 한 여배우의 죽음을 둘러싼 관심과 진실도 덮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욕망과 폭력은 비가시적인 존재로 이 사회 곳곳에 더 깊숙이 침투해 버렸다.

그러나 단단해 보였던 폭력의 카르텔은 소수의 용기로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그 동안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목소리들이 하나의 물결을 이루며 사회 전반을 휩쓸어갔다. '빨간시'공연은 미투운동 전에 결정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의성을 반영한다.

미투 운동을 통해 자신의 부당함을 알리는 개인의 목소리는 곧 할머니들이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아픔이고 꽃다운 나이에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했던 한 여배우의 이야기가 된다. 할머님들과 장자연의 고발이 미투운동의 시작이었다.

이해성연출가는 “수요집회 1000회를 넘기기 전에 이 작품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비를 털어 공연하게 됐다. 그 이후로도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한일 위안부 합의 등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면서 시의적으로 이 작품이 필요할 때면 재연하곤 했다.

이번엔 ‘빨간시’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자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서 힘을 실어주기 위해 또 공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와 여배우 고(故) 장자연 사건을 다루며 사회적 약자로서 유린당해온 여성들의 상처를 조명하고 보듬는다.

아울러 침묵이 재생산하는 폭력의 카르텔을 고발한다. 극에서 유력 일간지 기자인 동주는 성상납으로 자살한 여배우 사건 이후 이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죄책감에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다 어느 날 저승사자의 실수로 할머니 대신 저승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죽은 여배우와 마주하고, 일제시대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는 “1991년에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을 위안부라고 드러냈을 때 세계 최초의 미투운동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위안부였다는 상처를 끄집어냈는데도 ‘우리 민족의 수치를 왜 드러내느냐’ 등 사회적 반응은 차가웠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환경을 극복한 할머니들이 계셔서 지금의 미투운동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할머니들은 ‘다시는 이런 상처를 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거리에 나온다고 말씀하신다”고 언급했다. 

또 “지금 미투운동을 시작한 여성들도 똑같은 마음이지 않겠나. 받아들이는 우리도 이런 상처가 나오지 않게끔 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상처를 더 이상 받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분법적으로 남녀를 피해자와 피의자로 나누기보단 연대의 고민으로 끌고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해성연출가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의 껍질(기표)과 알맹이(기의)가 있는데, 알맹이가 충분히 실렸을 때 의미를 가지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들과 말값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빨간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하는 형식을 보여준다. 프롤로그와 각 장면의 막 사이에 들어가는 시와 영상,

그리고 정적 등을 통해 공연 전체가 하나의 시처럼 무대 위에 펼쳐진다. 또한 시어처럼 반복되는 단어와 운율을 가진 대사, 그리고 그 사이 사이의 침묵은 청각적으로도 시적인 리듬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극중 ‘빨간 꽃’은 마치 시적 은유처럼 그 이미지가 반복, 강조된다. 빨간 꽃은 극중 할머니가 첫사랑에 대해 가진 애틋한 기억이자 동시에 피로 물든 상처를 의미하고, 여배우 수연이 꿈꾸던 화려한 미래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이 작품에서 빨간색은 두려움과 죽음, 사랑과 생명, 그리고 고통과 아름다움 등 많은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사건과 여배우 성상납 사건 사이의 공통점을 다룬 연극이다. 문의 070-8261-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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