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 갈 때 항상 기대감을 갖는다. 첫째 재미있을까? 둘째 감동적일까? 셋째 끝난 후 잔상이 오래 남을까? 이다. 20일 용산 CGV에서 시사회를 진행한 강동원 주연의‘인랑’을 보고 난 느낌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않게 정말 재밌었다. 장면 처음부터 긴장감을 갖게한다.  

무슨 일이 펼쳐질 것 같은 군중신과 함께 펼쳐지는 총격신, 그리고 긴박한 도주, 그 뒤에 펼쳐진 현란한 액션과 묵직한 음향은 긴장감을 100% 끌어 올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아쉽게도 재미는 있었을 뿐 감동과 잔상은 없었다.

‘인랑’은 남북한 정부가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하자 이를 시기한 주변 강대국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고 그에 따른 민생이 악화되는 등 지옥 같은 시간이 이어지는 혼돈의 2029년을 조명한다. 이에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가 등장하자 ‘섹트’를 진압하기 위해 설립된 대통령 직속의 새로운 경찰조직 ‘특기대’가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그에 따른 입지가 줄어든 정보기관 ‘공안부’는 특기대의 핵심조직부터 제거하는 음모를 꾸민다. 절대 권력기관 간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벌어지는 사이, 특기대 내 비밀조직 ‘인랑’에 대한 소문이 실체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인랑’에서 눈에 띄는 소품 중 하나가 강화 수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로보캅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수트는 특기대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일명 강화복이라고 한다. 모든 수트 디자인을 3D로 진행, 완성된 3D 모델을 통해 프린팅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주형을 떠서 40벌의 수트를 제작, 세부적인 디자인 작업에서 김지운 감독의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공기를 주입하는 호스 부분의 질감이 반복적인 부분에 패브릭을 이용하자고 하여 더욱 디테일하고 현실감 있는 강화복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 강동원이 그의 체형에 맞게 제작된 40kg에 달하는 강화복을 입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을 때, 김지운 감독은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걸어 나온 듯 한 놀라운 비주얼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인랑’에서는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총기류가 등장한다.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 그리고 그‘섹트’를 진압하기 위해 설립된 대통령 직속의 경찰조직 ‘특기대’와 그에 맞서 각을 세우고 있는 ‘공안부’,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세 집단의 무기를 다르게 설정하다 보니 총기의 종류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주로 사용하는 총기의 종류 또한 각 세력의 성격만큼 제각각의 특성을 지녔기에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섹트’는 정부에서 진행하는 일을 반대하는 반정부 세력이기 때문에 무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는 집단이다. 해서 여기저기서 무기를 끌어 모아 사용했을 특성을 살려 1940-50년대에 설계되어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 때 사용했던 AK 소총,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이 사용하던 란체스터, 마크원 기관총 등 가급적 구식이면서도 다양한 무기를 보여준다.

‘특기대’의 경우 ‘섹트’를 진압하는 정부 부대로서 무장을 강화해야 하고, 강화복의 묵직하면서도 위압적인 디자인과도 어울려야 했기에 원작과 마찬가지로 MG42 중기관총을 사용, MG42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첫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총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사용하여 적군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무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정부기관인 ‘특기대’가 민간인을 상대로 무자비한 진압 작전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에,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무탄 발사기 설정을 추가하기도 했다. ‘공안부’는 공안 사건을 위주로 해결하는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가급적 작은 총기로 설정하였다. 공안부 차장 한상우는 주로 M4 카빈 소총을 사용하였으며, 임중경과의 대립 장면에서는 M203 유탄 발사기를 합쳐 강력히 무장했다.

특히 강화복을 입은 특기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공안부’가 PGF3 로켓포까지 사용하며 권력 장악을 위한 힘을 싣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닌 세력들을 대변하는 맞춤 총기들은 혼돈의 근 미래에 대한 리얼함을 가져다준다.

인랑을 최선봉에서 지휘한 김지운 감독은 돌이켜보면 나의 영화적인 동력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한 끌림이었다. 애니메이션 <인랑>에서 느꼈던 어떤 전율과 매혹의 순간들이 나를 뒤흔들어 놓았고, 그 무모한 끌림을 에너지로 오게 해서 <인랑>의 영화화라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전후, 혼돈기를 배경으로 한 심오한 세계관과 독보적인 무드. 그리고 인간병기로 길러진 주인공이 겪는 깊은 마음의 행로에 ‘인랑앓이’를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다루는 SF장르에 대한 끌림 또한 컸으며 처음 시나리오를 준비할 때만 해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통일은 한마디로 그 자체가 SF였다.

그 만큼 민족적 염원도 컸고 그 만큼 요원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통일을 준비 중인 시기의, 혼돈기의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 한국에서 SF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인랑>의 세계는, 통일 한국이 신흥 강국으로 떠오를 것을 두려워한 강대국들의 경제 제재로 민생이 악화되자 반정부 테러리스트 단체 ‘섹트’가 등장하고 이에 맞선 가공할 무장력의 경찰조직 ‘특기대’가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분단 구조의 고착화로 이익이 생기는 무리가 있고 거기에 이해관계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이나 테크노크라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기반하여 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 통일 조성에 반기를 든 권력 핵심에 머물고 있던 정보기관인 공안부가 새로운 권력집단인 특기대의 등장에 불만을 품고, 특기대를 말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는 권력기관 간의 대결과 전쟁으로 확장되는 근 미래의 혼란과 암투를 다루고 싶었다.

이러한 미래사를 다루고 있기에 큰 틀에서 SF지만,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기관들 사이의 대결은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들을 필요로 했고, 배신과 암투라는 설정은 느와르적인 코드를 담고 있으며, 의도를 감춘 채 적을 교란하는 스파이 장르의 뉘앙스 또 한 가지고 있다.

제목 <인랑>의 뜻인 ‘인간’과 ‘늑대’, 이질적인 두 존재가 한 인물의 내면 안에서 부딪히고 충돌하면서, 인간의 길을 갈 것인지, 짐승의 길을 갈 것인지. 드라마의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심리적인 요소와 함께 그에게서 인간의 마음을 일깨우는 한 여인의 존재가 던지는 ‘야만의 시대에도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관통하면서 마음을 닫은 두 사람의 힘겨운 멜로드라마의 심상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와 인생의 어떤 굴레를 뒤집어 쓴 이 두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클래식으로 불리웠던 원작 <인랑>에서 느꼈던 감동과 전율, 그리고 원작의 가장 훌륭한 성취이기도 하면서 어쩌면 가장 취약점일 수도 있는 특유의 무드, 즉 인물들의 감정과 스토리의 모호함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질문과 그 영화적 해답이기도 하다.

<인랑>의 세계는 스토리가 필요로 하는 요소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 동안 만들어왔던 다양한 장르 영화의 요소와 재미들을 한 영화 안에 담게 하는 최초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새롭고 놀랍고 재미있고 섹시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애초의 바램이 얼마나 구현되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순 없지만, 관객들이 <인랑>에서 이러한 요소를 발견하고 재미있게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형 SF영화 <인랑>은 7월 25일 개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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