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컷= 루카
스틸 컷= 루카

디즈니 만화영화 루카를 보는 내내 여행을 떠난 듯 한 느낌이었다. 이태리의 작고 평화로운 바닷마을, 청명한 하늘과 우르르 쏟아지는 시원한 스콜, 밀도 높은 하양으로 이루어진 구름, 그리고 투영도가 월등하게 높은 바다까지, 눈이 행복해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아무리 쳐줘도 성인을 메인 관람대상이라 하기는 힘든 단순한 전개의 만화영화임에도 불구, 영화 속에 심어진 현실적인 디테일과 따스한 이상향 제시에 마음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도시소녀 ‘줄리에타’는 이혼가정의 자녀이다. 평소엔 도시에 있는 엄마와 살며 학교를 다니다 여름방학엔 바닷마을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는 아빠 집으로 내려와 여름을 보낸다. 사실 ‘줄리에타’의 아빠는 선천적으로 한 팔이 없다.

세간의 잣대로 보자면 소위 비정상 가족이지만 ‘줄리에타’는 매우 건강한, 정의와 우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상적(?)인 아이다. 소년 ‘루카’는 육지의 인간이 아니다. 바다괴물로 알려진 ‘루카’와 그 종족들은 바다와 육지 양쪽 모두 생활이 가능한, 어찌 보면 육지 형 인간보다 진보한 존재다.

그러나 절대다수인 인간은 소수인 그들을 괴물이라 혐오하며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괴물을 잡아오는 자에게 거액의 상금을 걸기도 한다. ‘루카’와 우연히 친구가 된 바다 괴물 족 ‘알베르토’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

아버지는 어린 ‘알베르토’를 내팽개치고 집을 나갔다. 아동학대로 의심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알베르토’는 홀로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 왔다. ‘알베르토’는 ‘루카’가 알을 깨도록 만든 계기가 되어준 존재이기도 하다.

‘알베르토’는 ‘루카’에게 더 넓은 세상을 열어 보여준 문(門)이자 외로움과 고난을 나눈 파트너에 다름 아니었다. ‘루카’와 ‘알베르토’와 ‘줄리에타’는 같은 목표를 두고 의기투합하게 된다. 그러나 셋의 우정은 각자의 다른 꿈과, 그 다름을 틀림이라 말하며 조금씩 금이 간다.

나도 학창시절 흔하게 겪어본 일이다. 너 왜 나보다 저 애랑 더 친하게 지내니? 너와 나의 우정은 이제 깨졌어, 이 배신자야,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는 시간 속에서 화해든 결별이든 그걸 극복하는 과정 모두 찬란한 우정의 흔적들이다.

그렇게 어렸던 우리는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루카’를 먼 곳, 그것도 절대다수인 육지 인간이 주류를 이루며 사는 도시에 유학을 보내는 소수자 그룹 ‘루카’의 부모 마음은 어떨까? ‘루카’가 커밍아웃을 할 지 혹은 커밍아웃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새로운 재능과 열정을 발견해 그 만큼 뿌듯하다. 아이를 보내며 이 곳엔 항상 너를 기다리는 가족이라는 든든한 지지자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한다. 여름이 지나면 딸을 다시 도시로 보내고 한 팔로 노를 저어 바다에 나가 홀로 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줄리에타’ 아빠의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계절은 분명 고독하고 춥고 건조할 것이다.

‘줄리에타’의 아빠는 마침내 혼자인 ‘알베르토’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가 감동한 건, 실질적으로야 ‘줄리에타’의 아빠가 ‘알베르토’의 양육자가 될 테지만 ‘알베르토’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에 있다. ‘줄리에타’의 아빠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각 말이다.

그들의 속내는 외로움과 상처를 달래줄 존재로 서로를 받아들였을 지라도 겉으로 보기엔 필요에 의한 합의로 보인다. 이건 '관계의 책임'이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온 그와 ‘알베르토’는 이상적인 유사가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아니, 사실상 유사가족을 더 이상 '유사'라고 표현하면 안 될 것 같다.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잖나. 먼 곳에 사는 혈연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까운 타인이 더 끈끈하고 단단한 케이스는 드물지 않다. ‘루카’는 어린이 영화가 맞지만 어른이 보았으면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박이 될 때 나와 같은 사람(이혼한 싱글맘)은 그 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빌런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 혹은 명예남성을 자처하는 이들이 소수자의 인권이나 페미니즘, 동물 권을 부르짖는 모습을 볼 때마다 꽤 괴롭다.

그들의 공정하지 못한 시선도 그렇지만 어떤 대상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조차 이혼녀는 가장 마지막 서열인가 싶은 거지. 오바 하지 말라는 댓글은 사양한다. 내가 실제로 이혼녀 싱글맘이 된 이후 왕왕 겪은 일이니까. 그럴 때마다 나도 다시 다짐을 하는 것이다. 내로남불 하며 살지 말자는...

포스터= 루카
포스터=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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