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스틸 컷= 아담(Adam)
스틸 컷= 아담(Adam)

모로코는 아랍어를 쓰는 이슬람 국가이다.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이긴 하나 이슬람 원리주의는 테러리스트의 사상이라 하여 취급하지 않는다. 허나 여전히 여성의 인권은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모로코에선 혼외임신여성을 '슈마(Hshouma)'라 부르며 병원에서의 출산도 엄격히 금지한다. 슈마는 '수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어릴 시절 지방 작은 소도시에서 살았었다. 내 부모님은 밤 늦도록 식당을 하느라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지인이라는 진옥이 언니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언니는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미인형의 20대 후반정도 되는 사람이었고 그 때 배가 남산만큼 불러 있었다. 뱃 속에는 아기가 있다고 했다.

어찌된 사연인지 어린 나야 알 길 없었으나 언니는 출산도 우리집에서 치루었고 태어난 아기와 거의 일년을 머물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언니뿐 아니라 그간 아가와도 담뿍 정이 들어버린 나는 언니가 떠나던 날 아주 오래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진옥이 언니가 간 '집'은 누구의 집이었을까. 당시 언니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었는데 떠올려 보면 그 시절 지방 소도시에서 정상가족 바운더리에서 벗어난 젊은 여인의 임신과 출산은 모로코처럼 위법까진 아니었어도 터부시하는 문화가 짙었을 것이다.

하기사 21세긴 지금도 싱글맘을 바라보는 시선은 보편적이지 않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은 투자니 감독의 모로코 영화 '아담'은 '슈마'에 관한 이야기이다. 투자니 감독은 어린시절의 나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 경험이 내내 감독의 마음에서 넘실거리다 마침내 영화 '아담'이 탄생한다. 사미아는 여느 젊은 모로코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본인은 도시에서 미용 기술을 익힌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헤어샵을 열고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꿈을 꾸었을 지도 모르겠다. 사미아가 혼외임신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부른 배를 양 팔로 받치고 낡은 보스턴백을 한 쪽 어깨에 맨 그녀의 얼굴에 실린 고단함의 무게는 그녀가 한 쪽 어깨가 기울어지게 매고있는 가방의 그것보다 무거워 보인다.

미용기술도 있고 청소와 요리도 잘 하지만 슈마인 사미아를 가정부로 받아주는 집은 단 한 곳도 없다.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리고 그 문이 다시 굳게 닫히는 일이 영원처럼 이어진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어여쁜 딸까지 두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빵집 주인 아블라는 남편을 보낸 후 웃음과 음악까지 보내버렸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서둘러 내리는 그녀의 행동은 그녀의 삶과도 유사하다. 그런 그녀 앞에 사미아가 등장한다. 마음의 문은 닫았으나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아블라는 결국 사미아를 자신의 집에 들이고 함께 빵을 굽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 '아담'은 여성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가 맞다. 사미아는 아블라의 따스하고 안전한 집에서 무사히 출산을 맞이했으니까. 차라리 아블라와 그녀의 여덟살난 딸 와르다, 사미아와 그녀가 낳은 아기가 함께 그 집에서 죽 살기로 했다면 영화를 보는 내 마음은 편했을까.

다정하고 예뻤던 진옥이 언니와 귀여운 아기가 우리집에서 계속 함께 살기를 어린 시절의 나는 얼마나 바랬던가.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사미아의 얼굴에 진옥이 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영화 '아담'의 주목할만한 지점은 현실을 투영했으나 삶은 진행되어야 한다는 두드림, 즉 희망의 노크를 끝까지 잊지않았다는 것이다. 들어올 때는 크게 문을 두드렸던 사미아가 아블라의 집을,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은 복장과 같은 가방으로 나설 때,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는다.

그녀의 품엔 아기가 안겨있다. 그 아기의 이름을 사미아는 바로 직전 '아담'이라고 짓는다. 아담은 원죄의 표징이기도 하나 나는 시작의 의미를 담았다 믿고싶다. 시작이 있기에 삶은 나아가지는 것이므로. 

포스터= 아담(Adam)
포스터= 아담(A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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