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탈출이 목표가 되는 일

스틸 컷= 싱크홀
스틸 컷= 싱크홀
사진= 8월 2일(월)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싱크홀'기자간담회 현장
사진= 8월 2일(월)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싱크홀'기자간담회 현장

특정 카테고리로 분류가능한 형식과 스토리를 갖춘 영화를 소위 '장르영화'라 한다. 일반적으로 장르 영화라 함은 상업영화로 대변되며 자본의 논리를 충실히 따라간다. 즉, 자본이 많이 투입될 수록 기술적 완성도는 정교해지고 이윤을 높일 확률이 커진다.

이런 특성이 관습화 된 과정이 장르 영화의 역사라 할 수 있겠다. 장르 영화 중에서도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기 힘들다. 특히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비극 등을 겪은 우리에게 재난이라는 소재는 집단 공감을 일으켜 반드시 감정선을 짙게 건드린다.

재난 사태를 얼마나 실감나게 재현했는지, 또 그 사건 앞에서 작중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얼만큼 입체감 있게 드러나는지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갈린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은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자면 쉽게 건질 수 있는 소재인 동시에 쉽게 그려낼 수 있는 소재는 결코 아니다.

캐릭터와 기술, 서사의 균형이 잘 맞아야 하고 자칫 과도한 신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영화 '싱크홀'의 김지훈 감독은 10년 전 '불'에 관한 재난을 그린 영화 '타워'를 연출 하더니 긴 침묵을 깨고 또 다른 재난영화로 돌아왔다.

이쯤되면 재난영화 전문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싱크홀'은 그렇다면 어떤 영화인가? 싱크홀을 한국말로 바꾸면 '땅꺼짐 현상'이라고 한다. 모종의 이유로 지반이 약해져 푹 가라앉거나 땅 속에 동공이 생기는 현상을 뜻한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에 푹 구멍이 뚫린 모습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싱크홀 현상이 본격적인 화두로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4년 7월, 송파구 모처에 생긴 커다란 싱크홀 때문이다.

그 후 오래지 않아 그 근방에 싱크홀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한 사회 고발 프로그램에서는 송파구 소재 필로티 구조(네 개의 기둥을 세워 올린) 빌라의 기울어짐 현상 등을 실험과 측량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제 2 롯데월드 건설, 지하철 9호선 공사, 상하수도 배수관 누수 등 여러 원인이 대두 되었고 같은 해 8월 정부는 지하철 9호선 공사가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영화는 바로 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건물과 바닥에 쩍쩍 금이 가고 빌라 건물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더니 지반에 구멍이 파이면서 급기야 빌라 한 동이 하강하는 엘리베이터마냥 깊은 지하로 푹 꺼진다.

불과 2주 전, in 서울에 내집을 마련 했다며 기쁜 마음으로 장수빌라에 이사 온 동원 가족. 그러나 내집 장만의 기쁨도 잠시, 거대한 싱크홀과 함께 와르르 붕괴된 장수빌라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과 애 태우며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존과 탈출이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과연 '50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깊은 땅 속, 그것도 완전히 무너져내린 건물 안에 갇힌 그들은 무사히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구조대는 그들을 모두 구할 수 있을까? 설상가상 폭우까지 쏟아져 골든타임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영화의 이 장면에서는 도리없이 삼풍백화점과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속수무책 점점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배를 TV 화면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일은 지옥이었다.

어른이면서 아무런 방편도 내놓지 못 하는 무력한 내 모습에 살아있는 일이 미안해질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그 무엇하나 투명하게 밝혀진 진실 하나 없다는 사실이 더욱 기막힌 트라우마로 남은 그 날. 일련의 비극이 연상되도록 연출적으로 의도했을 수도 있겠지만, 전작에서 느꼈던 신파의 강박에서 벗어나 신파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걸 막으려 한 감독의 고민이 엿보여 칭찬하고 싶다.

또, 극한의 상황에서 (그것이 아무리 진부하다 하여도) 밝은 웃음과 희망을 주려는 노력은 재난영화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간을 실제로 겪고 목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귀한 덕목 이기도 하다. 영화가 다큐와 다른 부분이 이 점이라고도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 '타워' 보다 단연 좋았다. 하지만 10년이란 시간을 떠올려 보면 역시나 아쉬운 부분이 있었음은 언급하고 싶다. 전반부의 서사가 매끄럽지 않아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었고, 대한민국의  지난한 여러 현실을 담아보려 한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욕심이 앞섰던 것도 같다.

차라리 싱크홀로 무너진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나 탈출 과정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다만, 시나리오 자체나 소재가 가진 장점이 크고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캐리를 잘 한 영화인데다가 CG등 기술적인 부분들이 뛰어나 화면을 보는 내내 실제 영상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대형 화면으로 볼 때 시각적으로 더 큰 효과를 느낄 수 있으며, 신파라는 조미료를 과하게 쓰지 않은 감동이 있으니 여름 방학 자녀들과 함께 볼 만한 영화로 추천한다.

TMI. 2021년 현재는 싱크홀이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이는, 서울시가 20%에 불과했던 동공 탐사 정확도를 동공 탐사 업체를 꾸준히 육성해 95%까지 끌어 올린 덕분이라고 한다.

미리 동공을 발견해 메우는 작업을 통해 대형 사고를 예방한 것. 사실 싱크홀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이 지구를 과하게 써왔다는 생각은 여러모로 참 지우기가 힘들다.

포스터= 싱크홀
포스터= 싱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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