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괴로웠고 종종 어리석었지만, 나는 사랑을 했다.
삶을 산 것은 나 자신이다.
내 오만과 번뇌가 만든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인간의 뇌는 주름이 많다. 뇌과학자가 아니라면 다른 생명체들의 뇌와 차이점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대부분 모든 생명체는 두개골과 뇌의 크기가 비례할 거라는 크기 정도만 생각하겠지만,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이 주름이다. 심지어 태아의 경우에도 18주까지는 주름이 없다가 20주 넘어가야 주름이 생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뇌의 주름은 어떤 기능을 할까?

주름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주름이 없는 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자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상태로 몸만 키우고 살아간다. 태어난 직후 바로 생활이 가능하지만 유연성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반면 ‘주름이 있는 뇌’는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를 기억하며, 학습하고 적응하고 다른 뇌로부터 배우는 유연한 뇌이지만, 출산하고 양육하고 학습하는 기간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메타인지>의 시작이다. 메타인지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에서 시작해 내가 나를 스스로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호모사피엔스의 특별함이고, 이는 곧 AI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의 무기,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뇌에 주름이 있는 인간은 늘 다른 존재를 생각하고 다른 존재로부터 배우는 존재다.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이 소통과 교류,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학습이 가능하며 특징적으로 상상이 가능한 존재라고 유발하라리(사피엔스의 저자)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말한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인간의 뇌가 특별한 이유는 '개체의 뇌'가 아니라 '사회적 뇌'로 진화해서 연결의 혁신을 이룩했고 지금 인류의 화려한 문명이 그 결과다.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의 뇌파는 화자와 비슷하게 싱크가 되고 뇌파의 패턴이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뉴럴 커플링(neural coupling) 이라 하고 부모와 자녀의 뇌가 닮아가는 것도 거울뉴런(mirror neurons)이라고 한다.

즉,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마치 자신이 직접 행동하는 것과 같은 내적 상태로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하며 그 행동의 의도까지 변별해낸다고 한다. 이는 선생과 학생의 학습과정에서도 적용되는데, 이는 극장 내에서도 이루어진다. 즉 감독이 스크린을 통해 보내는 메시지, 배우들의 이야기와 상황에 감정이입하며 즐기는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들도 같은 맥락이다.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이것이 나를 바라보는 나, 나를 생각하고 평가하는 나인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뇌에 주름이 있는 인간의 종특이며 ‘메타인지’라고 한다. 다른 뇌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인 동시에, 연결의 힘이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로랑 티라르 감독의 2016년작, 업포러브(Up for Love)는 미모와 지성을 갖춘 완벽한 키큰 여자와 키작은 남자의 로맨스로 외모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유쾌하게 다룬 작품인데, 그의 신작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이 2022년 5월 19일에 개봉예정이다.

주인공 아드리앵 (벤자민 라베른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88분 동안, 그의 내면과 갈등, 성장의 시간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영화다.

방백, 즉 인물이 카메라를 직시하고 관객을 향해 하는 말로, 작품 속 다른 인물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대사들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내속의 또다른 나”의 등장, 즉 “메타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보고 있는 관객에게 아드리앵의 감정과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게 만들며, 적극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일상의 가치를 드러내주는 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전형,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의 스토리라인과 인물은 단순하다.

아드리앵과 함께 살던 연인, 소니아 (사라 지로도)가 “관계의 휴식이 필요”하다며 ‘종료버튼’이 아니라 ‘일시정지 버튼’과 같은 거라는 이별통보를 하고 떠난 후,

'실의-분노-희망-절망-절망누리기’의 단계를 거치며 38일째 견디고 있던 아드리앵이 가족 식사모임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아드리앵의 가족은 부모님과 누나와 예비 매형이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이야기에도 처음 듣는 것처럼 깔깔 웃어주는 엄마 (구일라인 론데즈)와 모든 이야기에 상관없는 일화로 마무리 짓지만 유쾌한 아버지 (프랑소와 모렐),

그리고 아드리앵 8살 생일부터 27년 동안 백과사전을 선물하며 늘 똑 같은 축하인사를 하는 누나 (줄리아 피아톤), 그리고 그 누나를 사랑하는 예비매형 (카이안 코잔디)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이다.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아들이 초등학교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들어다 준 (트리를 생각하며 만들었지만 손재주가 없어서) 남근 모양 수건걸이를 받자마자 주방에 걸어 두고 집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엄마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자란 아들이지만, 아드리앵은 스스로 찌질하고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휴식을 갖자며 떠난 연인에게 문자를 보낼지 말지를 고민하고, 문자에 답이 없다고 자신의 상황을 ‘아이티 지진 피해자’나 ‘쿠르드 난민촌’의 사람들의 고통과 동일시하며 시니컬하게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아드리앵의 속마음은 여리고 외롭다.

가족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소니아의 문자만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아드리앵에게 예비 매형이 결혼식 축사를 부탁하면서 아드리앵의 내면의 폭풍우는 시작된다.

‘거창할 필요없이 몇 마디면 된다’며 ‘축사를 해주면 누나가 무척 좋아할 거’라면서 가볍게 부탁하지만, 아드리앵에게는 누나의 결혼식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까지 고민할 정도의 충격이다.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누나커플과 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 자신의 성장 과정과 19살에 아팠던 첫사랑과, 소니아와의 첫만남부터 이별까지를 모두 보여주는 연출스타일은 프랑스식 유머코드로 점철돼 있다.

수다스러운 주인공의 내면과 달리 센스없고 ‘혼자만의 세계에 사는 시인’같은 겉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고군분투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결혼식 축사를 하면서 “누구야?” ”신부동생일걸?” ”저렇게 멋있는 애였어?”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문자 한 통도 제대로 못 보내는 아드리앵의 못난 자기비하는 완벽해 보이는 누나 커플의 작은 균열을 보고 누나를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뀐다.

상처받은 누나의 침묵에 가슴이 아파서 위로와 격려를 하며 안아주고 싶어진 주인공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자신이 가족을 아끼고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현실적인 조건은 그대로인데 자신을 긍정하기 시작한 주인공에게는 희망과 용기가 생기고, 연인의 소식도 전해진다.

 

잘 지내?

 

냐는 짦은 문장에

 

‘나 이제  안정을 되찾았어.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다시 일어섰고,

이젠 네 걱정 뿐이야.

난 항상 네 편이야'

라는 다정한 의미가 담겨있지만 말하지 못했던 아드리앵의 축사는 시작된다. 모두에게 진심을 다해 솔직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필요 없을 거 같아서 안 한 말들 많잖아요?

때가 아니라거나 너무 늦은 거 같아서요.

하지만 늦은 때라는 건 없어요

 

물론 소니아에게도 진심을 담은 솔직한 사랑의 말을 함께 전하며, 관객과 자기 자신에게도 응원의 메시지와 깨달음을 전하는 아드리앵의 내적성장이 보이는 순간이다.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문자 9시 46분 드디어 온 소니아의 문자

"자긴 잘 지내?"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천년을 살 힘을 얻는 아드리앵은 온마음으로 누나부부의 행복을 빌어주며, 행복을 선물한다.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출처=영화 '완벽하게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공식 포스터&스틸컷

그리고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꼬마, 쥐스탱에게 감사인사와 삶의 선배로서 응원을 보낸다.

 

넘어지는 거 그거 별일 아니야.

앞으로도 계속 그럴걸.

아마도 자주

인생도 보조바퀴 없는 자전거랑 똑같거든.

입에 흙 들어갈 일 많을 거다.

그래도 언젠가 너도 사랑을 찾는 날이 분명 오겠지.

진짜 사랑 그날이 오면 자전거로 하늘을 나는 기분일 거다 라고

어그러질 뻔한 연애 위기를 맞은 한 남자가 지루하고 편하지 않은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하는 오만가지 상상과 자신과 나누는 수다들, 그리고 투덜거림으로 이어지지만 결국은 삶에 대한 감사와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내적 성장을 이루는 내용에 프랑스식 상상력과 유머를 넣어 잔잔한 웃음과 인생의 깨달음을 선사하는 멋진 작품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이 전하는 일상의 감사와 사랑 예찬론.

 

수없이 괴로웠고 종종 어리석었지만,

나는 사랑을 했다.

삶을 산 것은 나 자신이다.

내 오만과 번뇌가 만든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찌질하고 못나 보여서 오히려 감정이입이 강하게 되는 아드리앵의 솔직한 모습들과 행복하고 싶어하는 소박한 욕망이 관객의 마음을 두드리는 프랑스 영화, <The Speech>는 일상에 감사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그와 함께 하는 나의 시간에 대한 충만한 행복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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