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잃은 당신에게 권하는 한 편의 영화서사시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 어째서 일기를 그렇게 열심으로 쓰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작은 어릴 적 학교에서 월요일마다 했던 일기장 검사다.

돌아보면 누군가의 일기를 당당하게 ‘검사’ 한다니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어릴 적 내가 다닌 학교(그리고 그 시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의 일기를 매주 검사 했다. 나아가 ‘잘 쓴’ 일기장은 교실 뒤에 전시를 했다. 일기는 이렇게 쓰는 거라는 칭찬과 함께.

내 일기장은 거의 매주 전시 대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전시 당함’을 즐겼다. 일기장을 예쁜 것으로 골랐고, 글씨를 또박또박 썼으며, 무엇보다 하루의 이야기를 쓰는 일에 매우 공을 들였다. 한글을 일찍 깨친 덕분에 책을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읽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내 일기장이 자주 전시 대상이 되면서 교내에서 글 잘 쓰는 아이로 소문이 났고, 백일장 대회에서 자주 수상을 했다. 달콤한 뿌듯함 속에서 막연하게나마 ‘글’이 내 ‘길’이라 여겼다.

그러나 중학교 때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하게 되면서 재능 없음에 절망했다. 서울은 거대했고 시골에서 고작 잘 쓰는 정도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그럼에도 일기는 빼먹지 않고 썼다.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무능에 대한 한탄, 요동치는 사춘기적 욕망과 자기절제 사이의 갈등, 죽음을 향한 매혹과 공포라는 양가감정, 부지불식간에 당한 성추행으로 인한 수치심, 부모님의 부부싸움과 가난에 대한 공포 등 내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내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사건이 발생했고, 내용의 진위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보는 앞에서 지난 내 역사의 기록물들을 모두 태웠다.

그 후로는 나만의 암호를 정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알아차리지 못 할 언어로. 문제는 훗날 나도 이해하지 못 할 괴상한 기호의 모음집이 되어 골치가 아팠지만, 어쨌든 나는 내내 ‘썼다’. 무엇이든, 어디서든.

그렇다면 어린 시절 쓴 일기의 전시에는 거부감이 없었던 내가 엄마의 행동에는 어째서 그런 상반된 반응을 보인 걸까? 단순히 사춘기라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편집’의 유무라 하겠다.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어릴 적 내 일기가 보여주고 싶다는 전제 하에 쓴 거라면 엄마가 본 나의 일기는 지나치게 적나라하고 보여주기 싫은 것들이 혼재된, 즉 나만 알고픈 추한(?) 비밀이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에.

30년도 더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시절 엄마가 엿본 내 일기는 굳이 없앨 필요까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심각한 이야기들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만, 아마 그 시절로 돌아가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해도 결과는 같은 것이다.

검열도 편집도 없이 드러난 것들은 맨 얼굴에 무릎 나온 추리닝과 보풀이 있는 티셔츠 차림으로 나갔다 첫 사랑과 마주치는 상황만큼 부끄러운 일이니까. 심지어 그 첫 사랑은 초라한 나와 달리 말쑥한 차림이라면 말해 뭣해.

마흔을 넘기고,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나는 스스로의 삶을 견디기 힘들어 어느덧 종이노트 대신 SNS에 비극의 기록을 담기 시작했고, ‘보여주기’가 목적인 그 공간에 편집과 보정을 거친 문장과 사진을 전시했다.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그러던 어느 날 그 일기들을 엮어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거기까지가 바로 아무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었을 내 이름에 ‘저자’ 라는 두 글자를 달게 된 배경이다. 또한 여전히 나는 쓰는 삶을 사는 중이다.

개인의 서사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를 보는 동안 지난 내 삶이 동시에 필름처럼 촤르륵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수필집을 한 권 냈을 뿐인 나를 세계적인 감독과 동기화 시키다니 비웃음을 살 일이겠지만,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파벨만스>를 보며 발견한 감독과 나의 공통점에 기쁘고 안도했다.

누구에게나 찌질하고 괴로웠던 과거는 있기 마련이고, 비극도 힘이 되며, 재능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만이 바로 ‘그 일’을 해낸다는 것이다. 보여주기의 방식은 판이하게 달라도, 영화 <파벨만스>는 얼마 전 본 ‘데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바빌론>과도 통하는 문장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영화 그 자체’라는 것이다.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파벨만스>의 주인공 ‘새미 파벨만’이 어떻게 영화에 빠지게 되었고, 영화가 일생의 업이 되기까지 어떤 유년을 통과했으며, 가족과 외부의 상황들이 새미에게 어떤 상처와 기쁨을 주었는지, 영화는 새미가 본격적인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걷기 시작하는 그 직전까지를 보여준다.

역사야말로 가장 큰 스포일러라고 했던가? 극 중 이름은 다르지만 어린 ‘새미’는 스필버그 자신이며, 그 소년이 바로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환상과 가슴 절절한 감동을 보여준, 나아가 누군가에게 영화의 길을 걷도록 부추긴 롤 모델이 된 영화의 산 증인이다.

누군가 그랬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의 신이라고. 나 또한 동감한다. 어린 새미는 영웅도 아니었고, 차별을 받았으며, 가족의 비극 앞에서 우리처럼 똑같이 절망했다. 지금의 감독을 만든 가장 큰 힘이 재능일까? 글쎄다. 재능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 맞지만, 재능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없다는 건 안다. 행복만이 삶에 좋은 자양분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단순히 찍는 것만으로는 영화가 되지 않는다.

 

영화는 빛과 어둠을 이용한 편집의 예술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빛과 어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둠이 없다면 빛은 빛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비극이 없는 기쁨은 완전한 감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내 삶의 빛나는 한 순간은 어디선가 조명을 비추어 준 덕분이고, 정작 그 조명이 선 자리는 어둡다.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영화 <파벨만스>를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전시 당한’ 일기장이다.

 

 

앞으로도 내가 일기를 꾸준히 써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들어가는 작품 리스트에도 첫 줄이 존재한다. 스필버그까지는 되지 못 할지라도 내겐 아직 쓰고픈 이야기가 많다.

영화 <파벨만스> 덕분에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은 ‘훌륭한 감독’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되었다. 첫 수필집을 마지막 리스트로 삼을 순 없다고, 앞으로도 비극에 매혹 당하고, 슬픔이 건네는 의미에 호기심을 거두지 않으며, 무엇보다 끝까지 일기를 쓰겠다고, 영화관을 나서며 결심했다.

 

마흔 여덟,

참으로 꿈꾸기 좋은 나이다.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스틸 컷= 파벨만스(Fabel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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