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극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기자간담회에 초대를 받아 보고 왔다. 김희정은 그동안 자신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로만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이번 작품은 소설가 김애란의 단편을 각색했다.

교사인 남편이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제자와 함께 죽게 되자 상실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주인공 명지. 그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촌언니의 빈 아파트가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가서 한달 동안 거주한다.

하지만 장소를 멀리 옮겨도 남편에 대한 추억과 그에 딸려오는 그리움은 불쑥불쑥 그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한편, 같은 익사 사고로 단짝 친구 지용을 잃은 해수는 하나뿐인 동생을 잃고 몸의 절반이 마비된 지용의 누나 지은을 돕는다.

영화는 명지와 해수라는 두 가지 갈래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두 사람은 영화 끝까지 한 번도 만나지 않지만, 해수가 전해준 지은의 편지를 읽으며 명지는 비로소 분노와 원망의 감정으로 대했던 남편의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의 삶이 죽음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삶이 또 다른 삶으로 향했다는 것을.

원작 소설의 주요 배경인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는 영화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바뀐다. 폴란드는, 그곳에서 영화 공부를 했던 김희정 감독이 가장 잘 아는 곳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김애란 작가가 배경을 에딘버러로 설정한 이유는, 그곳이 ‘축제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깊은 상실의 아픔을 안은 채 우울 속에 침잠해 있는 주인공과 대비 효과를 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바꿈으로써 영화의 결이 많이 바뀐 것은 물론, 개인의 아픔을 넘어 사회적 아픔으로 주제가 확장되는 효과를 거두게 된 것 같다.

2차 대전의 비극적인 역사를 겪은 폴란드는 매년 8월 1일 바르샤바 봉기일이 되면, 도시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고, 이에 맞춰 시민들과 자동차 모두 멈춰 서서 1분 동안 침묵을 지키며 희생자를 추모한다고 한다. 이 기간에 맞춰 촬영을 진행한 덕분에 이 감동적인 장면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묘하게도 멈춰선 바르샤바 시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 이 장면과, 주인공 해수가 스케이트보드를 탄 채 홀로 광주 5.18 광장을 가로지르는 장면의 대비에서 오는 의미가 개인적으로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애초에 도경이 물에 빠진 제자를 구했다는 설정도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김희정 감독의 작품들에서 주로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개인에서 사회로 탐색의 영역이 넓어진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가 7년째 광주에 거주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 도시의 공기와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명지가 바르샤바에 도착한 첫날부터 발병한 원인 모를 피부병 증상은 극복하지 못한 슬픔이 신체 징후로 나타난 것의 상징으로 보인다. 이 피부병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낫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이것이 서서히 나으면서 주인공이 아픔에서 조금씩 풀려나는 것으로 진행될 줄 알았다(내가 상업적 내러티브에 너무 익숙해져 있나 보다.)

사실 가족(더구나 배우자)을 잃은 슬픔에서 어디 그리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명지가 거처하는 장소를 바꿔도 여전히 슬픔이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은, 한국의 침실과 바르샤바의 침실의 세트 디자인이 매우 유사한 것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명지의 물처럼 고요하고 정적인 장면들과, 출연 장면 대부분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해수의 동적인 장면들이 명확한 대조를 이루는 것도 흥미로운 장치인데, 이처럼 영화 안에서 대조와 혹은 반대로 유사성을 찾아보는 것도 관객으로서 재미있는 탐색이 될 것이다.

갑작스럽게 동생의 죽음을 겪었던 배우 박하선이 가족을 잃은 아픔을 섬세한 감정 연기로 잘 표현해냈다. 7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