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 김상민 기자] 뮤지컬 '잭 더 리퍼' 한국 공연을 시작 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잭 더 리퍼에 많은 배우들이 공연했지만 올해 공연은 기존 출연 배우들의 올스타라고 생각하는 배우들과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합세하여 새로운 잭 더 리퍼에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

‘잭 더 리퍼’는 실화에 바탕하고 있지만 이 뮤지컬은 단순한 실화의 귀결로 맺어지지는 않는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 1888년의 ‘화이트 채플’ 사건은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궁 속에 빠져있는 '미제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뮤지컬에는 허구적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더욱 더 많다. 다소 이질적이며 거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잭 더 리퍼’가 많은 인기를 얻게 된 데에도 그런 이유가 있을 듯하다.

 

매춘부만 노리는 잔인한 살인 수법 때문에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수사하려 하지만 런던타임즈 기자 ‘먼로’는 코카인 중독자인 앤더슨의 약점을 노린다. 결국 앤더슨은 먼로에게 특종기사를 제공하고 한 사건 기사 당 천 파운드를 받는 거래를 하게 된다.

며칠 지나지 않아 네 번째 살인이 일어나고 자신의 무능함에 폭발 직전인 앤더슨 앞에 범인을 알고 있다는 제보자가 나타난다. 그는 미국에서 온 외과의사 ‘다니엘’ 이다.

앤더슨과 먼로는 다니엘의 증언을 듣게 되고 얼마 후, 런던타임즈에 ‘잭 더 리퍼’ 의 예고살인 속보가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치닫는다. 급기야 앤더슨은 함정수사를 계획하게 되는데, 여기서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사건을 만나게 된다. 과연, 진짜 살인마는 누구인가?

 

하나의 살인 사건이 만들어 내는 상상력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그 자극은 더 주체할 수 없는 또 다른 상상들로 부풀어져 나아간다. ‘잭 더 리퍼’ 공연 내내 관객들은 비극으로 치닫는 미스터리와 애절한 뮤지컬 넘버들 사이에서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보랏빛 벨벳 수트를 입은 한 명의 살인마 잭이 있다. 여기서 그가 살인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잭’의 존재 이면에서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리고 그 뒤의 아픈 사연들이 뮤지컬을 더 격정적으로 몰아간다.

 

체코에서 만들어진 ‘잭 더 리퍼’가 한국에서 놀라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어쩌면 각각의 캐릭터들을 자신들 만의 것으로 소화해 낸 배우들의 매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공연에서는 ‘잭 더 리퍼’의 대표적 배우들이 다시 한 번 그 매력을 한 땀 한 땀 풀어내 놓는다.

특히 잭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신성우가 뮤지컬의 연출을 맡았다는 점도 기대감을 모으게 한다. 여기에 뛰어난 가창력으로 뮤지컬 무대에 도전하는 환희(다니엘 역)와 각종 연극 뮤지컬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스테파니(글로리아)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잭 더 리퍼’는 라이센스 뮤지컬이지만 한국 뮤지컬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원작과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원형 회전 무대와 앙상블들의 화려하면서도 색다른 안무들은 공연의 입체감과 역동성을 더해 준다.

모든 면에서 ‘잭 더 리퍼’는 원작인 체코의 뮤지컬과는 사뭇 다르다. 이렇게 재탄생 된 ‘잭 더 리퍼’는 2012년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 전회 기립 박수라는 놀라운 결과물을 내놓으며 극찬을 받기도 했다.

 

‘잭 더 리퍼’는 내용적인 구조가 매우 탄탄한 뮤지컬이다. 물론 이 뮤지컬이 사실에 근거했다는 점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은 서사의 강약 조절에는 보는 이들을 끌어당기는 분명한 저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관객들 중에는 이 공연을 여러 번 계속해서 본다는 잭 더 리퍼 ‘마니아’들이 상당히 많았다. ‘살인마’라는 소재는 어쩌면 극 장르에서는 다소 흔할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그 소재를 어떻게 꾸며내는 가에 따라 놀랍고 새로운 극의 변주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뮤지컬은 ‘살인’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단순한 ‘살인’ 이야기 이상의 치밀함이 가득하다. 마치 뮤지컬 판 ‘살인의 추억’ 같달까?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살인마 ‘잭’의 칼 솜씨 만큼이나 유려하고 매끄럽다.

 

남성듀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멤버인 환희는 데뷔 이래 처음 뮤지컬에 도전했다. 환희는 “연출님이 ‘가수들이 여기 와서 못하는 꼴은 못 본다’고 하시더라. 자다 깨면 연출님 얼굴이 생각날 정도로 부담이 컸다. 하지만 ‘두려워 말고 네 안에 있는 걸 끌어내라’는 말씀에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작품을 완성시키기까지 신성우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달이었다. 신성우는 “연출 제안을 수락하자마자 모든 활동을 중단한 뒤 이전 버전 대본들을 꺼내놓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동안 배우들이 잊고 있던 지점을 찾아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전 시즌과 비교해 큰 변화는 없다. 다만 캐릭터의 선명도를 높이고 각 인물간의 관계성을 강화했다는 게 신성우의 설명이다. 그는 “배역 간 균형을 맞추고 디테일을 끄집어냈다”며 “특히 잭과 다니엘 관계의 불분명한 부분을 정리해 관객들이 보다 명확하게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성우는 “짧은 기간 안에 이만큼 완성도 있는 공연을 올릴 수 있었던 건 국가대표급 배우들과 스태프들 덕분이다. 10주년을 맞아 관객들께 기쁨을 돌려주자는 제의에 흔쾌히 응해준 배우들께 고맙다”면서 “우리는 준비가 다 됐다. 이제 여러분이 극장에 오셔서 맘껏 즐기실 차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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