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스틸 컷= 너에게 가는 길
스틸 컷= 너에게 가는 길

퀴어물이 많은 요즘 영화를 보면서…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정부 정책과 공무원들보다 문화예술이 감수성이 더 예민하고, 조금 더 포용적이니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가 틀린 거라고 당연한 걸 말하는 성소수자들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다큐지만, 그래도 극장에 오래 걸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 삼을 수 있을테니, 영화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아이의 커밍아웃 이후의 부모의 혼란스러움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히려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한 아들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어찌할 바 모르는 부모들의 힘겨운 노력과 자식들이 이겨내야 하는 현실을 알게 된 후 인권운동가가 돼가는 평범한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쿨한 엄마인 척 노력하려구요" "아이가 죽고 싶을 때 외롭고 힘들지 않게 제가 곁에 있어 주려구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서로에게 응원하고 위로하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현실도 보여준다.

<한결>이는 생물학적인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가슴을 혐오한다. 가슴이 끔찍해서 옷 갈아입을 때도 샤워할 때도 불을 끄고 살다가 몇 년 동안 몸에서 가슴과 자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다. 그 후 법적으로 #성별정정을 해야 하는데...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제거했음에도 사법부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18가지의 서류를 만들어내라고 요구한다. 그 중, 성인이 된 자식의 성별정정 신청서 중에서 친부모 동의서를 요구한다.

그 본인이 몇 살이든 상관없이 유교적인 사회에서 자식은 부모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법인 것이다. 최근에야 그 서류는 없어졌지만, 몇 년 전까지도 성인의 자율권을 인정해주지 않는 우리 의식의 미개함을 드러내는 지점이었다.

결국 한결이는 웃게 됐지만, 산 넘어 산인 삶이 남아있는데, 이제 겨우 출발한 셈이다. 예준이는 커밍아웃을 하고 캐나다 유학을 선택했지만, 한국에서 잠깐 만난 애인과 함께 지내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캐나다가 동성애자에게 호의적일 거라 생각했지만, 외로운 건 마찬가지,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온 예준이는 외로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끊임없이 믿어주고 응원해주려고 노력하는 부모님과 기댈 수 있는 애인이 있고, 둘의 양쪽 부모님께도 인사도 드리고 그 가정에서는 커플로도 인정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얼마나 많은 난관과 힘겨움 들이 산재해 있을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게이 커플이 아니어도 인생은 고단할 텐데 말이다. 캐나다의 퀴어 축제와 인천의 퀴어 축제의 분위기는 ‘파티와 지옥’만큼 차이가 크다.

어디든 반목과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은 경찰이 수십 명 같이 있어도 동성애단체 회원들이 얻어맞는 나라이다. 화면을 노려보면서 강박적이고 반복적으로 괴성을 질러대며 폭력적인 구호를 외치는 기독교단체의 외침은 말 그대로 폭력이고 두려움이었다.

상관없는 관객의 눈에도 두렵게 보이는데 성소수자 당사자들이나, 그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에게는 상상이상의 두려움일 것이리라. 우리는 언제쯤 그들에게 위협이 아닌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삶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자신의 몸과 인식하는 성이 차이가 있거나,

드러내는 순간 혐오의 대상이 되는 성향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두 배, 세배의 힘겨움일 것이다. 당연, 정상, 평범 같은 단어들이 폭력적이고 위협적이고, 무신경하게 들리고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거 같다.

과거에는 당연하고 정상적인 거라고 했던 많은 것들이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과거에는 머리카락은 부모님에 대한 효의 기본이라 지켜야했고, 결혼하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했다. 남자는 처첩을 거느릴 수 있었고, 여자의 질투는 칠거지악 중 하나였다.

"여자가 집을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냐?"고 소리치던 박영진의 개그도 세월이 바뀌어서 개그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재도 옳은 말일수도 있고, 돌아가고 싶은 시대정신일 수도 있다.

모두가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갖고 살아가는데, 나와 다른 기준과 생각을 가졌다고 타인의 삶과 생명과 안전을 훼손할 권리가 있을까? 미국에서 일어나는 유색인종 혐오에 대한 우려보다, 우리 곁에 사는 이웃들의 안전과 권리를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포스터= 너에게 가는 길
포스터= 너에게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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