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주의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시인이자 소설가, 장정일을 기억하는가? 첫 번째 시집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고,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음란문서제조죄로 기소된 문제적 작가다. 작가 장정일의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는 섹스지만, 그것이 주제는 아니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력 비판의 수단으로 원초적이고 자유로운 성을 차용한 작가. 관습적인 이중 잣대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장정일식 비판의 무기가 비틀어지고 터부시되는 ‘섹스’이고,

가장 내밀하고 자유로워야 하는 개인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독자들에게 당신은 체제로부터 억압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우냐고 묻는 작가. 하지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한 1990년 대한민국은 그를 유죄 확정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작가 옌롄커의 동명소설이 원작이고, 최근 개봉된 영화이다. 1970년대 가상의 공산주의 국가가 배경이고, 내용 가늠이 안 되는 제목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멜로장르로, 익숙하지 않은 캐릭터와 설정들이 흥미로운, “찐한” 어른 영화다.

원작자 옌롄커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되는 대학교수이자 다수의 문학상 수상자이고, 영화를 만든 장철수 감독은 김기덕 감독과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를 같이 만들고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로 작품상을 비롯한 각종 영화제를 휩쓴 장본인이다. 2013년에는 김수현 주연의 [은말하게 위대하게]로 관객 695만 명을 들인 후,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사진출처(씨네21)= 장철수 감독
사진출처(씨네21)= 장철수 감독

그럼 중국의 거장이라 평가받는 원작 소설과 작품상, 감독상을 휩쓴 감독의 시너지가 만들어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어떤 영화일까? 소설은 2005년 발표 당시 중국 내에서 출판금지가 되고, 그 여파로 전세계 20여 개 국에서 출간된 작품이니 어느 방면일지 모르지만 파격적인 수위는 예상 가능하다.

이념과 사상이 철저히 대립되는 시대에 어린나이에 전쟁영웅이 된 ‘사단장’ [조성하 분], 그의 아내, ‘수련’ [지안 분], 그리고 사단장 사택 취사병 ‘무광’ [연우진 분]의 욕망으로 얽힌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수련과 무광은 출세 가능성이 전무한 비천한 출신이다. 출신 성분이 낮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은 입대해서 출세하는 게 유일한 세상. 그들에게 사단장은 출세 뿐만 아니라 생명줄을 쥐고 흔드는 신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수련’은 어려서 여군으로 입대해 주석어록을 완벽하게 암기하는 모습과 아름다운 외모로 사단장의 눈에 들어 결혼한다. 그렇게 신데렐라가 된다.

신분 상승에 성공한 신데렐라는 행복해야 하는데, 남편에게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다는 결핍은 자신의 삶을 공허감으로 채워간다. 생기가 없는 텅빈 존재가 돼가는 수련의 무표정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시골에서 내일이나 출세는 생각지도 않고 살아가는 ‘무광’에게 결혼과 함께 극적으로 찾아온 인생역전의 기회는 군입대. 그렇게 입대 후 목숨 걸고 출세를 하겠다고 아내와 혈서까지 쓰고 시작한 군생활에 최선을 다해 모범사병이 되고 사단장 눈에 든 비천한 존재, 무광에게 사단장과 사모는 말그대로 신이다.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전쟁영웅, 사단장 지위,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까지 모든 것을 가진 ‘사단장’은 사랑하는 여인을 소유해 가둬둘 순 있지만, 품을 수는 없는 몸이다. 전쟁터에서 박힌 총알 2개를 아내 대신  몸속에 품고 사는 그는 총상으로 수컷의 기능을 잃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의 결핍은 남성성이고, 남성성의 증거로 아이가 필요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의 마음을 포기하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정상적인” 가정의 이미지를 선택하는 남자의 고뇌와 번민은 그를 점점 더 권력욕과 승부욕에 집착하게 한다.

남성성을 잃은 권력자, 남편의 부하와 섹스 후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아”라고 하는 유부녀, 그리고 30일 간의 상사의 출장 기간 동안 사모를 누님이라 부르며 불륜을 저지른 대가로 부와 신분상승을 얻은 무광.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15년을 살아간 그들.

사단장은 아름다운 아내와 건강한 아들과 함께 더 높은 자리로 영전하고, 수련은 무광과의 시간으로 꽉찬 삶의 충만함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완벽하게 부러움을 받는 부부라는 이미지를 쓰고 살아가지만 텅빈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사는 시간은 행복이나 생명력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스틸컷

무광 역시 자신의 아내와 아이와 함께 큰 공장의 공장장으로 부와 영예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렇게 15년이 지난 후, 다시 수련을 찾아온 무광의 마음은 그리움이다.

사랑이라 믿게 된 여자,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그리워하며 살다 찾아온 무광을 수련은 만나주지 않는다. 무광이 다녀 간 후 수련은 외출했다가 '돌아오지 않는다'로 영화는 끝이 난다.

수련과 무광이 다시 만났을까? 아닐 것이다. 수련은 자신의 여성성을 일깨워준 무광에게 감사하며 아이를 15년간 키워냈고, 이제는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것이다.

무광과의 시간이 자기자신의 진면목을 보게 해줬고, 무광 전과 후로 다른 존재가 돼버린 수련에게 남편과의 결별할 수 있는 용기를 줬을 거다. 권력보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이자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영화 [인민을위해목부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위해목부하라] 스틸컷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노출 수위와 정사신의 비중은 최근 극장 개봉작 중에 단연 압도적인 작품이다.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관계가 아니고, 노골적으로 유혹하고 명령하고 협박해서 남편의 부하와 섹스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다가,

갑자기 밥을 해주고, 너의 아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겠다고 미친 듯이 부수는 수련이 퇴폐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반어적으로 쓰인 제목에서 암시하듯, 우리는 인민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야 행복한 존재'들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조차 각 개인의 결핍과 욕망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절실한지를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와 체제가 요구하는 인간상과 성공의 기준이 얼마나 허망하고 각 개인을 무너뜨리는지를 처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가 “좋은” 삶이라 평가하는 기준을 내면화 시킨 세 인물들의 공허한 삶의 모습이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뒤에서 텅비어버린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다.관객에게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묻는 작품이다.

포스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포스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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