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멈추지 말고 달려요

스틸 컷=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컷= ‘드라이브 마이 카’

2021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드라이브 마이 카’가 지난 3월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까지 수상했다. 감독은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라 불리며 앞으로의 일본영화를 이끌어갈 거목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드라이브 마이 카’를 극찬하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향해 ‘집요하게, 끈기 있게, 결코 초조하지 않고, 착실하게’ 자신이 전달하려는 곳에 제대로 도달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전작 <아사코>에서 이미 거장의 분위기가 감지되었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드라이브 마이 카’로 이를 확실하게 증명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본인이 연출하는 영화의 각본과 각색을 직접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영화를 보면 대사와 대사의 여백까지도 촘촘하게 차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번‘드라이브 마이 카’의 경우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소설을 뛰어 넘는다는 평까지 듣고 있는데, 과연, 장편도 아닌 단편 소설을 가지고 러닝 타임 3시간의 영화를 만든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무라카미 하루키 팬 입장에서 보자면 감독이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단편 하나만으로 영화로 만든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르긴 해도 감독은 하루키의 소설을 죄다 읽었음에 틀림이 없다.

사진출처(thejapantimes)=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 2022 영국아카데미 시상식
사진출처(thejapantimes)=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 2022 영국아카데미 시상식

영화를 보며 떠올린 소설만 해도 원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 외에도 같은 단편집의 ‘셰에라자드’, ‘기노’ 등 두 편이 더 겹쳤고, 장편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태엽 감는 새’, ‘1Q84’ 가 보였다.

영화‘드라이브 마이 카’의 러닝 타임이 긴 것도 단순히 단편 하나를 각색한 영화가 아닌 하루키의 세계관과 공명한 감독의 해석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일상이 허물어지거나 루틴이 느슨해지는 것에 예민한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각본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코)’와 지난 20년간 완벽한 부부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오래 전 세 살 된 딸을 폐렴으로 잃었고, 남편에게 변함없는 애정과 영감을 건네주는 아내 오토는 사실 그간 많은 남자들과 외도를 거듭해왔다.

사진출처(일본 공식 트위터)= ‘드라이브 마이 카’ 제45회 일본아카데미 수상
사진출처(일본 공식 트위터)= ‘드라이브 마이 카’ 제45회 일본아카데미 수상

하지만 영화는 그들 부부가 딸을 잃은 상실감으로 처절하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부부의 공간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모습을 목격한 남편이 아내를 비난하거나 추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해야만 하는) 말을 꺼내지 못 한 채 어느 날 아내는 지주막하 출혈로 돌연 사망한다. 이제 ‘가후쿠’는 ‘혼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자신은 나이를 먹어가도 딸은 줄곧 세 살에 머무르고, 아내는 자신과 함께 늙어가는 일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는 영화가 아니다. 가후쿠(家福)와 오토(音), 둘의 이름을 합해 ‘행복한 가정의 소리’가 되는 부부는 그 한 축(오토, 音)이 사라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실제 가후쿠의 생활 패턴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나 그는 안다. 자신 안의 무언가가 크게 달라졌음을.

연출과 출연을 모두 자신이 맡아오던 안톤 체호프의 <바냐 삼촌> 속 바냐 역할을 그는 더 이상 ‘연기’하지 못 한다. 그의 오래된 빨간 수동기어 사브 차량의 카세트에서는 여전히 <바냐 삼촌>의 대사를 녹음한 아내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재생되고,

가후쿠는 대사를 모두 암기하고 있음에도 아내 ‘오토(音)'을 잃은 후로는 자신의 ‘소리(音)’로 연기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15년 동안 타인에게 운전대를 맡긴 일이 없던 사브의 운전대를 ‘미사키(미우라 토코)’라는 낯선 여성에게 넘기게 된다.

일련의 사건들은 가후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이다. 영화는 묻는다. 그렇다면 그 삶은 누구의 것인지, 삶의 주체는 누구이고, 내가 운전(드라이브)하지 않는 차는 누구의 것이며, 그 차를 운전(드라이브)하는 자가 그 차의 주인이 되는 것인지를.

drive라는 단어에는 ‘운전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태워주다’라는 뜻도 있다. 우린 저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고 또 살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살면서 살게 하고, 살게 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영화 말미에 마침내 다시 ‘바냐’를 연기할 수 있게 된 가후쿠가 등장한 연극 <바냐 삼촌>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고하게 보여준다.

스틸 컷=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컷= 드라이브 마이 카

“우리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에게는 살아가야 할 날들이 있어요. 이 모든 것을 견뎌야 해요…… 그리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겠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사는 동안) 멈추지 말고 춤을 추라고 했다. <바냐 삼촌> 속 ‘쏘냐’의 계속 살아야 한다는 대사와 같은 의미를 가진 문장이다.

차는 달려야 한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하건, 때론 누군가 나를 태워주거나, 내가 누군가를 태우건 간에 내가 탄 이상 달리는 차는 ‘마이 카(my car)’가 된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사건 앞에서 무력감에 절망해도 그 또한 나의 삶이 맞듯.

모든 여정과 누구의 삶에든 종착역은 있다. 그 종착역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곳이 ‘안식처’에 다름 아님을. 그러므로 멈추지 않고 달리는(사는)일은 그 자체로 이미 희망이자 위로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차창 밖의 풍경이 아름답게 스미는 순간이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사는 동안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에 행복할 것, 그 행복이 건네는 기운으로 고통의 순간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것,

그 여정 가운데 또 다른 행복이 반드시 존재함을 믿을 것.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삼촌을 싣고서 그렇게 전하고 있다.

포스터= ‘드라이브 마이 카’
포스터= ‘드라이브 마이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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